주일, (대)축일 강론
2003.08.28 13:27

연중 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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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일(신명4,1-8; 야고1,17-27; 마르7,1-23) 법에는 신정법과 인정법이 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하느님의 법 즉 신정법을 지켜야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 행복을 누리리라는 말씀이다. 법이라하면 의례껏 먼저 떠오르는 것이 딱딱한 규칙, 금령, 재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없을 수 없고 공동체가 있는 곳에 규칙이 없을 수 없다. 또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켜라.” 하셨듯이 법은 단순히 금령만이 아니라 적극적 사랑의 계명도 그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아니 법의 근본목적은 바로 이 적극적 사랑의 실천을 통해 소극적 규정인 법조문을 뛰어 넘어 입법자이신 하느님의 입법취지인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실천하는데 있는 것이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이 제정하신 법이기에 한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못한다”고 경고하시고 하느님의 계명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고 하시며 그러할 때 다른 민족들이 너희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라 지칭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신정법의 근본취지를 망각한 채 몇 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그들 조상들이 전통관습으로 전해오는 인정법을 신정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손씻는 예법이나 잔과 그릇을 씻는 세세하고 까다로운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강요하면서 그들 마음 속에는 온갖 추악한 것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정곡을 찔러 양심의 문을 두드리신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칭 하느님의 선민으로서 특권을 누리고자 했을 뿐, 하느님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해야 할 사명은 소홀히 하고 이방민족을 천대하였다. 이는 만민의 하느님을 자기 민족 만의 하느님으로 족쇄를 채우려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특권의식이 낳은 병폐를 시정하시고자 하신다. 셋째로, 하느님의 계명은 그저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러니 그저 듣기만하여 자기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동정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고 책망하셨다. 오늘의 전례에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같은 충고를 하신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바리사이적 생활방식을 청산하고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신다. 1917년 파티마에서도 성모님은 “너희들이 먼저 생활개선하라”고 요구하셨다. 교회의 종탑은 늘어만 가지만 사회는 그렇게 밝아지기는커녕 더욱 암담해져가는 현실 앞에 이 하느님의 권고는 오늘도 더 실감나게 우리 귀에 들려온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바로 가톨릭국가에서 발생하였고, 낙태와 자살, 마약사범, AIDS, 성폭력 등 온갖 현대 죄악이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성행하고 있는 현실도 현대판 바리사이적 신앙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자.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지적하시며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오기를 기대하신다. 우리 신앙생활을 통해 제2의 그리스도가 되기로 결심하자. 복음나누기 주제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도 “신앙따로 생활따로의 따로국밥신앙” 질책하십니다. 우리의 생활을 반성해보고 나눔의 시간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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