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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3주일(교황주일:열왕상19,16-21; 갈라5,1-18; 루가9,51-62)

 

 

가톨릭교회는 성베드로사도 축일인 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정해 교황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전세계 모든 교회 신자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각별한 지향으로 기도한다. 교황주일을 맞아 교황직의 필요성과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교황과 일치되어야 할 이유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12사도를 택하신 후 특별히 베드로사도를 으뜸으로 삼아 “내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21,17)고 분부하셨고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시면서  네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있을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있을 것이다 (마태16,19)고 하시며 죄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가톨릭교회는 이 같은 성서의 기록과 교회의 전승을 바탕으로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로마의 주교인 교황을 중심으로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교황은 세속의 통치자들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황직은 하느님백성전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사랑과 봉사로 표현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생명을 내어 바치면서까지 인류를 사랑하셨듯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교황은 바로 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위한 봉사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 (servus servorum Dei)이라고 지칭한다.

혹자는 가톨릭 교회의 교황의 존재를 구시대의 유물이니 독재를 한다느니 비판을 하지만 근거없는 비판이다. 왜냐하면 교황의 존재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즉 어느 단체나 대표가 있게 마련인데 가톨릭교회만큼 큰 단체가 어디있나? 10억이 넘는 거대한 단체에 대표가 없을 수 없지 않는가? 교회에 통솔자가 없다면 장군없는 군대나 선장없는 배와 같고, 목자없는 양떼요 머리없는 사람처럼 되고 말 것이다.

또한 교황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지옥의 문도 이를 처이기지 못할 것이다. 고 하셨듯이 그리스도께서 위로부터 직접 내려주신 권한이다. 이를 베드로의 수위권(首位權)이라 한다.

또한 교회분열을 막기 위해서도 보이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교회안에서 이러한 베드로의 수위권을 행사한 사실은 사도행전에 잘 드러나고 있다.

1). 베드로가 사도들 중 최초로 기적을 행하였고(사도3장)

2).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후 유다군중에게 최초로 설교한 이도 베드로이다.

3). 외교인을 최초로 개종시킨 사도도 베드로이다.

4).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도 베드로가 수위권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수여된 교회 통치권은 반드시 그 후계자인 로마 주교 즉 교황에게 계승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로마가 말하였다. 사건은 끝이 났다 (Roma locuta, causa finita est)고 하였다.

요한복음 17장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이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하고 교회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

교회일치는 구심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구심점이 교황이다.

그런데 이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은 봉사 받으러 오지 않고 봉사하러 왔다 고 하셨듯이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의 권위를 행사한다.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은 도덕과 신앙에 관하여 논란이 있을 때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교황권위로서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최후의 보루이다.

교황도 개인적으로는 우리와 같이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교황좌에서 공적으로 선언하는 결정은 오류가 없도록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 이것이 교황의 무류지권이다.

성서해석논쟁도 교황이 최종판결을 내린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의 성서해석 자유권에 의해 교회분열과 교회혼란이 야기되고 있음을 보고 있는 우리는 다시금 교황권의 무류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함께 타고 있는 구원의 방주의 선장은 다름아니라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시다. 선장이 이끄는 대로 이 구원의 배를 타고 순종하면 구원의 하늘나라 문에 안전하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황의 항해 도중에 이단의 암초나 악의 세력의 풍랑이나 역풍을 막아내고 안전한 구원의 길로 이끌어가도록 선장인 교황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교황의 손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교황은 결코 우리와 무관한 분이 아니요, 영신의 아버지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시다.

오늘도 80세의 고령으로 베드로 사도의 264대 후계자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헌신적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역대 교황 중 유례없이 전세계 80여개국을 사목방문하시면서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누구보다도 희생정신이 투철하신 현교황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자.

 

 

오늘 복음은 교황주일에 걸맞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구약과 신약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예언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그를 따르기 전에 먼저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을 허락하고 있는 반면에(1열왕19,20),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시는 사람들에게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금하신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루가9,61-62)고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왜 그런가?

첫째 부르시는 분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시고 엘리야보다 훨씬 위대한 분이시기 때문이요, 둘째로 예수님의 행차길이 이제 수난하시고 하늘에 오르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종말론적 긴박성을 강조하여 머뭇거리거나 세속과 하느님의 영역의 양편에 어중간하게 서있을 수 없으니 양단간에 결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제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저마다 자기 일을 내세우거나 조건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학설이나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의 선포자로서의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인 한 인격체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동고동락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삶은 어떠하셨나?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이다.

새에게서 둥지와 여우에게 있어서 굴은 처자식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직자 수도자들은 독신생활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참 자유, 즉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 없는 독신생활을 미리부터 앞당겨 체험하는 것이요, 천국생활의 예표를 이 세상에서부터 보여주는 삶인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저기에 묵으며, 안정된 정착지가 없이 하늘나라의 소식이 필요한 곳에 언제든 달려갈 5분대기조와 같은 삶이었다. 그것은 이세상이 그분의 정착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 아버지집이 영원한 고향이기에 이 세상은 정거장에 불과한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하와를 거짓말로 유혹하여 하느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죄로 이끌었던 사탄은 우리 또한 이 세상이 전부인양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고 계시다. 예루살렘은 천국의 상징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천국)을 향한“길을 가시다가”어떤 이들을 만나 대화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세상이 걷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고 하셨듯이 길 잃고 방황하는 인류에게 천국을 향한 바른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며 나선 사람들 중 식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거나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등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고 단언하신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향락이나 인연에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롯의 아내가 소돔성을 떠나가다가 두고 온 재물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듯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주인의 명령만을 기다리며 한 쪽 발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말(馬)처럼, 완전군장하고 출동명령을 기다리는 5분대기조 병사처럼 즉시 새로운 부르심과 소명에 따라 나설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굴속의 여우나 하늘의 새처럼 따스하고 보드라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쉴 수만은 없다.

하느님은 인간의 계획을 사정없이 흩어놓으시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 엮어놓은 보금자리를 헝클어 놓으시기도 하신다. 왜냐하면 자기애착에서 떠나 하느님의 계획에 온전히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과거생활을 청산하는데는 내적자유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오로사도는 2독서에서,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갈라5,13)라고 말씀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서 자기중심적인 과거생활을 청산한자만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를 수 있는 것이다.

교황주일인 오늘 세계교회를 위해 예수님의 지상대리자로서 불철주야 노심초사하시는 교황님께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잘 돌보고 보편교회를 주님 뜻대로 인도하기위해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교황의 협력자로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인 사제들을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길을 모범으로 따르도록 은총을 빌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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