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1.02.26 16:02

발타사르 강론집 (나해) 사순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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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창세 22,1-2.9.10-13.15-18; 로마 8,31-34; 마르 9,2-10)

 

1.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되기 전에 제1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장면이 먼저 봉독된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거룩한 변모 사건에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사람들을 위하여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성부의 뜻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제사는 하느님과의 계약관계에서 응당 절정에 해당하며, 이들은 이 희생을 이중적 희생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는 아들을 죽여서 하느님께 바치려고 칼을 빼어든 아버지의 희생이요, 다른 하나는 그 번제물의 희생에 동의한 아들의 희생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브라함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본보기(Vorausbild)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번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손에 칼을 들었을 때 이미 마음속으로부터 번제물을 바쳤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계약을 체결한 인간에게 당신의 희생을 따라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아들을 죽여서 바치라는 황당한 명령뿐만 아니라(인근 근동 국가들에서는 이런 관습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잔혹한 희생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죽여서 바치라고 한 바로 그 아들은 하느님께서 기적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하사하신 귀한 아들인 데다 그 아들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하느님은 정녕 모순적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이런 명령이 인간에게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아무튼 이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습니다.” 2독서는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사랑이시라는 진실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진짜 죽음의 길로 보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로써 우리에게 모든 것”(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로 이 황당해 보이는 역설을 풀어낸다. 아브라함은 이해하기 힘든 하느님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했지만, 이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음의 길로 자원하여 걸어간 성자의 순종과,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사하고자 하신 성부의 원의가 맞아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은 그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라(구약의 임마누엘”) 결정적으로 당신이 몸소 선택하신 우리 모두를위한 분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탁월한 것을 선사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진 것 모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우리 편이 되시었기에 우리를 거슬러 고발하는 모든 위협이 그 힘을 잃게 된다. 이제는 하느님 법정에서 우리를 고발할 자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희생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우리의 막강한 변호인이 되시어 우리를 고발하는 자들의 입을 봉하시기 때문이다.

 

3. 거룩한 변모.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타보르 산에서 거룩하게 변하신 아들의 얼굴에서 비치는 삼위일체의 사랑의 광채의 의미가 진정 설득력을 얻는다. 그것은 요가와 같은 동양 종교의 성찰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기몰두의 광채가 아니라 완벽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삼위일체의 진리의 빛이다. 그것은 성부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한것이 무엇이며, 새로운 이사악이 성부께 순종함으로써 얻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빛나는 구름이 서둘러 덮어버린 하느님의 신비는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에 질려 횡설수설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지만, 눈으로 본 것을 헛되이 발설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정연히 그리고 남김없이 설명될 것이다.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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