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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아모8,4-12; 마태9,9-13-말씀의 기근시대

 

 

아모스 예언서는 8세기 북이스라엘의 가장 번성기였던 예로보암 2세때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의 창궐, 사치와 향락의 만연 등으로 하느님을 저버린 사회를 질타하기 위해 아모스 예언자를 보내 신랄하게 심판을 하며 경고하는 내용이다.

“빈곤한 이를 짓밟고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아” 하며 “너희의 축제를 슬픔으로, 너희의 노래를 애가로 바꾸리라. 그날이 온다. 내가 이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고 하며 말씀에 굶주리게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신다.

말씀에 굶주리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예수님 당시에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이 있었지만 백성들은 말씀에 굶주렸고, 예수님의 설교장소에 구름떼처럼 모여들며 배고픈 것도 잊은 채 말씀을 경청하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빵의 기적을 행하시고, 그것이 후에 성체성사의 예표가 된 것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어도 영신적으로 생명의 말씀이 고갈된 세상을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경고이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월요성경강의를 하고 있지만, 모여드는 분들이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대구 구미에서 2시간 이상 걸려 강의를 들으려 오는 분도 계시다. 말씀에 굶주린 시대,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로워 관절과 골수를 쪼개고 마음 속 숨은 비밀을 드러낸다.

말씀 안에 모든 인생문제의 해답이 다 들어있고, 말씀은 인생길의 방향타요, 나침반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요, 하느님의 말씀은 창조의 권능을 지니며, 구원의 말씀도 창조와 같은 권능을 지닌 말씀이다.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예수님의 능력이 임할 것이요, 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요, 먹어서 내 살과 피가 되어야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마태오라는 세리를 부르신다.

그가 즉시 따라나서자 주님은 그의 집에 식사초대에 기꺼이 응하시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다.

이를 흉보는 바리사이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의인을 구하러 오지 않고 죄인을 구하러 왔으며, 또한 의사로서 세상에 왔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 필요하다.”고 하신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요, 병든 자임을 시인하여야 한다.

................................

오늘복음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시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로 시작한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길을 걸어가시더라도 목적 없이 산책하시는 기분으로 걸으시는 것이 아니다. 마치 회사 사장이 자기 회사를 둘러볼 때 산책하는 마음으로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살피듯이, 창조주 하느님이 피조물을 둘러보실 때는 피조물이 있어야할 제자리에 있는가, 제가 할 일을 하고 있는가를 살피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12사도를 부르실 때 군중 가운데서 한꺼번에 열둘을 뽑으시지 않으시고 각기 따로따로 마음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피시고 적절한 때에 개별적으로 감꼭지가 말랑말랑해졌을 때 부르시는 것이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그리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 이미 그들의 마음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하시고 부르시자 곧 그들은 주님을 따라나섰던 것이다.

오늘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오는 지금 어떤 상황이었을까?

세관에서 돈을 세면서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하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세리들은 죄인의 대명사요 민족의 반역자처럼 멸시천대받는 직업이었다. 젊어 한 때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리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돈도 벌만큼 벌었는 지금,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앞에 왕따당하며 살아가는 자신이 이제는 회의가 일기 시작한다. “왜 나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돈이 내 삶의 목표인가?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라는 근본회의가 일어난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 많은 기적과 권위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예수라는 사람은 어떤 분일까? 그분을 만나 인생상담이라도 해볼까? 아니야, 그분이 나같은 사람을 상대나 해줄라고? 부질없는 생각이야!” 하고 넉두리 푸념을 하고 있는데,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다짜고짜, “나를 따라라!” 하시자 마태오는 그렇지 않아도 심란하던 차에 “아니 저분이 나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오시어 당신을 따르라니. 당신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에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하며 따라나선다. 너무도 영광스러운 초대에 마태오는 친구 세리들을 불러 만찬을 베풀고 주님을 초대한다. 손님들이라야 대부분이 세리요 죄인들인데 주님은 기쁘게 그 자리에 응하시고 즐겁고 기쁘게 만찬에 참석하시어 많은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사람의 아들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하시며, 어쩌면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며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말씀을 하신다. 감격한 마태오는 두터운 노트를 준비하여 그분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모두 기록해 나간다.

마태오의 인생역전 드라마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죄인이요 세리였던 그가 일약 예수님의 거룩한 사도가 될 줄이야!

그리고 신약성경 첫 페이지를 쓰게 될 줄이야!

나같은 죄인도 구원받았으니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마태오1장에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죄인 그것도 죄녀 4명을 언급한다. 시아버지와 관계를 한 타마르, 창녀 라합, 모압의 이방인 여인 룻, 다윗과 간음한 바쎄바...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어머니는 원죄 없으신 동정녀로 죄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분으로 소개한다.

그는 황송하여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맨 앞자리에 앉아 주옥같은 주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성껏 기록한다.

“아무개는 세금 얼마내고, 누구는 아직 미납액이 얼마고...”하며 회계장부 기록하던 그가, 이제는 하느님의 천상교향곡을 쓰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세금 안 낸 아무개 고얀놈!”하며 눈을 부라렸던 그가, 이제는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고 터무니 없는 말로 비난을 받으면 행복하다. 그들이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는 고상한 참된 행복선언의 말씀을 기록하게 될 줄이야!

“너 나를 세리라고 무시했지. 어디 두고 보자!” 하며 복수심에 불탔던 그가, “원수를 사랑하여라.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대라.” 하는 말씀을 기록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마태오는 이미 죄인이 아니었다.

한 푼이라도 더 악착같이 벌리라고 전전긍긍하였던 그에게, “지상에 재물을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으라. 지상에 쌓은 재물은 도둑이 훔쳐가고 좀이 슬고 녹이 슬지만, 하늘의 보배창고에는 도둑이 훔쳐갈 염려도 없고 좀이 슬거나 녹이 슬 염려도 없다.”고 하시니 눈이 번쩍 뜨이며 지난날 자신의 어리석은 삶에 가슴을 친다.

 

 

예수님은 오늘도 길을 나서신다. 영혼을 찾아서. 길을 잃고 헛된 것에 매어 허망한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실망과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찾아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은 의인을 구하러 오지 않고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하신다.

바오로사도는 로마서에서 “이 세상에 의인은 없도다. 하나도 없도다.” 하고 외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나? 헛된 것을 찾아 헤매며 방황하던 나였지 않았나?

그러다가 만족이 없을 때 실의와 낙심에 빠져 헤매던 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곁에 가까이 와서 요청하신다. “나를 따라라.” 라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자.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맹인으로 최초의 박사가 된 강영우 박사가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2학년때 축구공에 맞아 망막이 파열되어 두 눈을 실명하게 된다. 이 충격에 어머니도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신다. 갑자가 실명에다 고아가 된 4남매, 누나는 소녀가장이 되어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청계천 봉재공장에 새벽부터 나가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죽게된다.

맹인가장 강영우는 동생 둘을 각각 고아원에 보내고 자신은 맹아학교 다니게 된다. 자살유혹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숙명여대학생이 자원봉사를 왔다가 이 딱한 학생을 보고 가엾은 생각에 돌보다가 강영우 학생을 연세대에 입학시키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둘은 정이 들어 부모가 결사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신방을 차렸다. 연대 교육학과 차석으로 졸업한 강영우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유학길에 오른다. 낯선 땅 미국에 건너가 점자로 공부하는 본인의 수고도 수고이려니와, 맹인학생을 뒷바라지 하는 부인의 어려움은 얼마나 컸을가? 한번은 남편을 교실에 안내해주고 부인은 도서관에 가서 공부시간이 끝날 때까지 책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쌓인 피고가 덮쳐 엎어져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헐레벌떡 달려가니 남편이 밖에 서서 기다리다가 부인을 보고 버력 소리를 지르며 “어디서 뭘하고 있었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부인은 그 자리에 펄쩍 주저앉아 복바치는 설움에 흐느껴 한참을 울자니 남편이 다가와 부둥켜안고 같이 울다가 “우리 여기서 주저앉지 말자. 반드시 성공하자!”하며 다짐하고 일어섰다고 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에 도전하였다. 최초의 맹인박사 되던 날, 미국 부시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백악관 장애인 정책차관보로 발탁하여 은퇴할 때까지 그는 열심히 하느님을 전하며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강연을 수없이 하러 다녔다. 두 아들이 있어 맏아들은 하바드대학 의대를 나와 백악관 안과의사로 둘째아들은 최연소변호사로 두 며느리도 박사며느리를 얻었으니 한 가정에 5박사가 모여 사는 집이 되었다.

“눈먼 새의 노래”라는 그의 자서전적 하느님 찬양의 글을 남기고 그는 몇 년전 최장암으로 선종하면서 자신의 불구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고 시작과 끝을 온통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로 이어진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좌절의 늪에서 “하느님이 날 살리셨다.”고 하며 자신에게 행복을 넘치게 채워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강영우 박사.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하며 그의 부인도 자신의 힘들었던 인생을 돌아보며 피곤을 모르고 행복해 한다.

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쪽을 바라보라. 반드시 다른 쪽 문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우리는 한쪽 문이 닫히면 그만 실망하고 그 문만을 바라보며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쪽문이 반드시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강영우박사가 건강하였다면 그냥저냥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출세하며 제 잘난 멋에 그렇게 살다가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이 오히려 그에게 하느님을 알게 된 동기가 되었고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는 동기가 되었다. 고통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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