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0.04.25 14:29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3주일

조회 수 5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부활 제3주일

(사도 2,14.22-33; 1베드 1,17-21; 루카 24,13-35)

 

1. 성경을 설명해주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벌어진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의 부활신앙이 예수님 자신의 설명으로 인하여 더욱 증폭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에게 며칠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예언자(19)의 처형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하는 여인들의 말을 못 미더워하였다. 그러자 예수님 자신이 성경말씀을 들어 그들을 이해시키신 것이다. 여기서 그들을 이해시킨 것은 여느 예언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메시아 자신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서 뿐만 아니라 예언서와 그 밖의 다른 성경말씀(유다인들은 이를 그저 문서Schriften라고 부른다.)을 들어서 메시아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시는데, 이 셋(율법서, 예언서, 그 밖의 다른 성경말씀)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마치 동심원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설명해주신다. 성경에서 예언된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고통과 죽음은 인간에게 하느님이 보내는 최후통첩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의 모델이자 최종목적인 메시아가 몸소 그것(고통과 죽음)을 겪은 후 충만한 진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일찍이 예수님이 사두가이들에게 하느님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고 산 자들의 하느님이라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느님은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하느님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라고 계시하신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신 부활 해석이 부활 이전의 모든 사건들에 뒤늦게 소급시켜서 부활의 의미를 인위적이고 결과론적으로 침소봉대하는 연역적 기교라고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자기증명의 진위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라도 되는 듯이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최후만찬 때처럼 빵을(진정한 만나를) 축복해주시고 사라지신다. 이 사라짐은 교회에 남겨줄 당신의 말씀과 성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2. 1독서는 성령강림을 통해서 확신을 얻은 초기교회가 선포하는 부활에 대한 교리의 요체를 들려준다. 베드로는 다윗이 메시아의 주검을 하느님께서 저승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편(16,8-11)을 인용하며, 모여든 군중에게 주님의 부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다윗이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은 언젠가는 자신의 후손들 중에서 이 부활의 약속이 채워질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 약속은 교회 위에 성령의 내림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증명된다(33절 참조).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3. 2독서는 더 멀리 간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왜 이 고통의 바다와도 같은 세상, 죽음과 맞물린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믿지 않는 이들은 이 인간 세상 안에서 오로지 헛된”(18) 것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뽑힌 흠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값진 피로모두가 안식을 찾았기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죄에 물든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서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스스로를 봉헌하심으로써 만물의 의미가 되찾아졌다면, 구약성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아니 오히려 모든 창조행위가 이 세상의 헛된의미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이 구원 행위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578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7주일 운영자 2020.07.25
577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6주일 운영자 2020.07.25
576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5주일 운영자 2020.07.25
575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4주일 운영자 2020.07.25
574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3주일 운영자 2020.07.25
573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2주일 운영자 2020.07.25
572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운영자 2020.07.25
571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운영자 2020.06.06
570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성령강림대축일 운영자 2020.05.30
569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 운영자 2020.05.22
568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6주일 운영자 2020.05.15
567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5주일 운영자 2020.05.08
566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4주일 운영자 2020.05.03
»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3주일 운영자 2020.04.25
564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제2주일 운영자 2020.04.17
563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대축일 미사 운영자 2020.04.11
562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부활 성야 미사 운영자 2020.04.11
561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운영자 2020.04.04
560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서문 운영자 2020.03.28
559 주일, (대)축일 강론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사순 제 5주일 강론 운영자 2020.03.28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7 Next
/ 3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