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0.07.25 15:38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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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즈카 9,9-10; 로마 8,9.11-13; 마태 11,25-30)

 

복음은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1) 성부의 계시는 철부지들에게 주어졌다. 2) 그것은 성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어서, 성자가 성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성부를 알 수 없다. 3) 성자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갖고 성부와 성자의 계시를 배우라고 권고한다.

 

1. 철부지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계시.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주어진다. 예수님은 계시자로서 성부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한다. 예수님의 계시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이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하느님의 애초의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고, 누구보다도 더 나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계시가 미숙한 자들”(Unmündigen)에게 드러나게 하셨다. 율법학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이들은 경험이 없거나 일천한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또한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나 아파서의사가 필요한 사람들, 목자가 없어서 병들고 지친 양떼들과 동의어이다. 이 가난한 이들은 수만 가지의 이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다. 비록 박학다식한 사람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당신 계시의 수취인으로 일찌감치 낙점하셨다. “철부지들은 성자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통해서, 성자가 성부의 생각을 전달하는 중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드러내시는 분임을 더욱더 심오한 방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유일한 계시자. 성자만이 유일하게 성부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 결과 성자는 성부를 바닥까지 알고 있고, 성부도 또한 성자를 그렇게 알고 있다. 이 말은 곧 삼위일체의 신비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시 말해서 성자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서 성부와 성자의 뜻을 알려주시는 성령의 존재와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제2독서는 유려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내밀한 상호 관계를 통해서 놀라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자는 성부의 명령을 그저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성부를 드러내시는데, 오로지 자신이 선택한 이들에게만 드러내신다는 사실이다. 선택 받은 이들이 누구인지는 제2독서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3.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안식을 찾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초대되었다면, 오로지 그들만이 안식을 약속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안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설을 조심해야 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올 때 예수님은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짐은, 곧 그분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예수님께만 무겁고, 그것을 함께 지고 가는 이들에게는 결코 무겁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말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해결책은 예수님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고통의 무게에 대해서 한탄하지도 않고 불평을 하지도 않으며, 저항도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깜냥을 재보거나 남들의 고통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는 말은 너희들의 고통이 처음에는 무거울 터이지만 그 무게가 마지막에는 가벼워짐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1독서에서 겸손하신메시아께서 역시 겸손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제2독서에서 우리가 “(성부)하느님의 영그리스도의 영을 지닐 뿐만 아니라, 그 영에 따라 살도록 하라는 권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육으로 태어난 인간은 육신의 무게로 신음하겠지만,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들이 아니기때문이다. 육에 따라 살면 죽음밖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없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신 성령을 따라 살도록 초대되었다. 그 영을 따라 살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워주시는 약간의 멍에, 곧 그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지고 가는 멍에와 짐을 성령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안식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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