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5.04.01 21:23

2015-4-5-예수부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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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부활 대축일(성야미사)

 

이 밤은 참으로 위대한 밤이다. 교회전례로 보아서 일 년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밤이다. 예수성탄이 기쁜 것도 사순절이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 밤이 있기 때문이며,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그 의미를 가지며 인생은 그 삶의 보람을 찾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쳐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셨다. 삶과 죽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온갖 선과 악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온갖 수수께끼에 명쾌한 해답을 주셨다. 세상은 진정 죽음으로 끝장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현세적 영화를 누려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요, 죽음 저편에는 다른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예수부활은 증명해주었다.

예수부활 이전에는 죽음에 대해서 아주 어두웠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 죽음의 휘장을 걷어내시고 그 뒤에 나타난 하늘나라를 펼쳐 보이시니, 이제는 죽음에 관한 모든 수수께끼가 다 풀리게 되었고 인생의 모든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는 의문이 다 해결되게 되었다.

너무나 소망스럽고 복된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예수부활로 말미암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는 이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영원한 삶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부활로 다시 태어났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일그러지고 부서지고 파괴된 세상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재창조의 기쁨을 맞게 되었다. 버려진 땅은 축복받은 땅이 되었고 고통도 죽음도 은혜요 축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예수님은 참으로 세상을 죽음의 권세에서 건져내셨고 새 세상을 열어주셨다.

그런데 육체의 부활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신의 부활, 생활의 부활, 그리고 마음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할 때가 있고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새롭게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든 한번 죽어봐야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이 알거지가 된 후에야 새 인생을 시작했듯이.

어떤 형제가 자기 동료를 몹시 미워했다. 그 동료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자기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면박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형제는 복수심에 불탔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기도회에서 봉사자가 권면하기를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바로 자기에게 기도와 구원을 요청하는 간절한 싸인이니 속상해 하지 말고 그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주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망설이던 중 마침 그 동료가 직장에서 곤경에 처하여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위로하고 도움으로써 악을 선으로 갚았다고 한다.

믿음은 확신이다. 믿어도 어정쩡하게 믿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아무리 성당에 다녀도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갈등과 착각 속에서 고민에 싸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만을 중요시한다.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축복의 기준을 두고 산다.

부활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나날이 체험해야할 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개선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신앙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이 부활신앙인 것이다.

주님부활절이 백번 다시 돌아온다 해도 자신이 부활체험을 하지 못하면 우리 신앙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당신 부활의 세계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이 초대에 응답하여 먼저 믿고 그리고 우리도 부활한 삶, 즉 악습과 현세적 미몽에서 깨어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다짐하자.


예수부활대축일(낮미사)

 

축제 중의 축제인 빠스카 대축일은 그 의미가 참으로 넓고 심오하여 우리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신비이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한 대왕의 광채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라, 세상 어두움 사라졌다. 기뻐하라 자모신 성교회, 위대한 광명으로 꾸며진 성교회...”

예수부활의 찬란한 광채를 받아 꾸며진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성교회는 오늘 이 장엄한 신비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있다.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사도는 오늘 1독서를 통해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고 선언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영생을 얻느냐 멸망하느냐의 관건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부활사건을 접하는 세인물의 태도는 우리 신앙의 길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새벽녘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가서 돌이 치워져있음을 본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생각한 첫 번째 해석은 누군가가 밤중에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곧 사도들에게 달려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고 전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무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 중 먼저 도착한 것은 베드로가 아닌 다른 제자 즉 요한이었다. 요한이 더 젊어서 빨리 도착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영신적인 깊은 의미를 음미해볼 수도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였고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신비 곧 부활신비에 대해 빈 무덤의 정황을 살펴본 후 곧 믿게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요한의 순결하고 강렬한 사랑은 단숨에 무덤까지 달려가게 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두 제자의 무덤에 도착한 후의 태도에서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베드로는 먼저 무덤 안에 들어가서 수의가 흩어져 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음을 보았으나 그는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 즉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단지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로도, 수의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다는 사실로도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상상하듯이 누군가가 훔쳐갔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부활사건은 삼단논법이나 수학방정식이나 과학적 논증으로 해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전 세계 방방곡곡의 만민과 친밀히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믿음은 천상에 대한 확신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천상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다. 바오로사도는 제2독서(골로사이서)에서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게 장차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고 희망하도록 이끌어 준다.

영신의 부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에 죽고 천상적 가치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오늘 부활절에 우리가 이루어야할 과제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영안을 성장시키자. 그 비결은 주님께 대한 사랑을 키우는 것이다.

베드로의 부족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신 그리스도의 인내심을 우리도 본받아 믿음이 약한 사람을 쉽게 단죄하지 말자.

 

<<묵상>>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연속적인 일련의 과정이다.

어느 하나가 없이는 다른 것도 일어나지 않는 계기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십자가가 구원의 열쇠가 되었다고 하여 이 사건은 필연적인 사건이었나 하고 질문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십자가사건은 가장 하느님이 원하지 않으셨던 사건이었다.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기에 어떤 방법으로건 구원의 방법을 찾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정작 원하셨던 것은 아드님을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셨을 때 비록 이스라엘이 예언자들을 배척하고 죽이고 하였어도 설마 내 아들이야 알아주겠지!”하고 보내셨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수난도 없었을 것이고 죽음도 없었을 것이요 따라서 부활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가정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이 없는 구원은 부활체를 입고 주님나라에 들어갈 우리의 처지보다 못하지 않았겠나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역설적이지만 “Felix culpa! 오 복된 탓이여!”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메시아를 거역한 죄로 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초래하였고 그 죽음이 부활을 가져왔고 우리도 장차 그렇게 부활할 것이니 에덴동산에서의 원조의 행복보다 더 나은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린 꼬마 둘이서 해변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다. 반작반작 빛나는 조개를 발견하고 동시에 잡았다. 힘센 아이가 힘껏 잡아당기니 약한 아이가 놓쳐버리고 주저앉아 운다. 울다가 일어나 반대편으로 가서 다른 조개를 찾는데, 햇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진주였다. 아까는 조개 껍질가지고 둘이 쟁탈전이 벌어졌었는데, 이번엔 진주인 것이다. 얼른 집어서 호주머니에 감추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손수건으로 곱게 싸서 닦고 또 닦고 아무리 보아도 황홀하다. 가슴이 울렁거려 보고 또 보고.... 엄마에게 자랑하고 학교 가서는 친구들에게 진주이야기를 수도 없이 한다. 우리 신앙의 진주는 예수님의 부활이다. 어느 종교도 갖지 못한 진주가 부활이다. 빈 껍질 가지고 자랑하는 저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진주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랑할 마음이 절로나지 않는가? 진주를 집은 아이는 조개껍질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바오로사도는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세상 것 땅에 있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저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라고 말한다. 부활이라는 진주를 찾았으니 조개껍질 같은 시시한 세상 것을 찾지 말라는 말씀이다.

어느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번 명절에는 딸네 집에 가시나요? 하머니 대답이 난 그런 시시한덴 안가! 내가 갈 곳은 오직 한 곳 아버집만이 내관심사야!” 하고 대답한다. 우리에게 이런 확신이 있다면 진주를 찾은 아이처럼 결코 잠잠할 수가 없다.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병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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