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3.10.25 21:22

C해 연중 제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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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해 연중 제30주일(집회 35,15-22; 2디모 4,6-18; 루가 18,9-14)

 

이번 주일 독서의 주제는 가난하고 겸손한 자의 기도에 대해 하느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내용이다. 가난한 자들은 돈도 배경도 없기에 외면당하고, 이 서러움을 호소하기 위해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고 부르짖게 된다. 이들 억울한 자의 기도는 꼭 하늘에 전달되고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신다.

이들의 기도는 곧 구름에 다다른다.”고 하였다. 구름은 하느님의 신비적 현존을 가리킨다. 사실 유다인들은 사막과 광야에서 구름기둥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적 신비를 체험한 바 있다. 구름은 바로 그들의 인도자, 길잡이, 해방자였으며 하느님의 현존, 영광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여기 가난한 자의 기도 내용은 어떤 것인가? 자기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오늘 복음의 세리처럼,  ,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는 기도뿐이다.

반면에 바리사이는 자신의 의로움을 나열하며 하느님 앞에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우리가 아무리 선행을 한다하여도 하느님의 선에 비하면 그것은 태양 앞에 작은 호롱불이요,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될 것이다. 더구나 쥐꼬리만한 선행을 내세워 남은 나만큼 못하다고 업신여기고 비교하는 바리사이적 사고방식을 하느님은 비웃으신다.

엄마가 어느날 너무바빠서 마침 공휴일이라 쉬고있는 17살박이 딸한데 나 좀 도와주렴!”하고 아침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시켰다. 저녁식사때 얘야 수고했다. 고맙다!”하고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더니 30분 후에 종이쪽지를 들고오는데 읽어보니 청구서. 설거지 수고비-10,000; 빨래-10,000; 청소-5,000: 25,000

당황한 엄마는 30분을 고민하다가, “나도 청구서를 제시하리라.” 마음먹고 같은 방식으로 딸아이에게 청구서를 작성하여 디밀었다. “청구서-17년 동안 먹여준 식대-무료. 17년 동안 옷 사준 것-무료. 17년 동안 학교등록금과 용돈대준 것-무료. 17년 동안 하숙비-무료. 합계-0딸이 얼굴이 빨개지더니 엄마 죄송해요!”하고 사과하였다. 하느님 앞에 우리 인간은 그저 감사할 뿐,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신 하느님께 그냥 감사할 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제사로 내죄를 속량하시고 내대신 죽어주신 그 은혜는 측량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 우리가 무슨 청구서를 제시할 수 있는가?

사람이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후원해주었기 떄문이요, 하느님이 거저 베풀어주신 은총의 선물인 것이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기 자랑만 늘어놓을 뿐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니, 하느님이 할 일이 없으시다. 이 바리사이적 사고방식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안에도 팽배해 있다. 자신의 선행과 업적을 자랑할 뿐 하느님께 아무것도 기도할 내용이 없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부족함만 지적하면서 자기 자랑을 앞세우고 자신만을 들어 높이고 남의 잘못을 고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세리는 자기 잘못을 겸손하고 솔직하게 하느님께 고백하고 자비를 구한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내세울만한 어떤 것도 없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뿐이다.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구원은 오직 그분의 은총의 선물이지 자신의 선행의 결과가 아님을 이 세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느님의 이 용서와 자비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영혼의 소박하고 진솔한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 자세는 어떠해야할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신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 앞에 무력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하느님의 자비가 와 닿는다. “하느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들어 올리신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기도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자기 잘못을 시인하면 자백이 되어 판결을 받는 데 불리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오히려 죄를 솔직히 시인하여야만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고 하신다.

물방울 둘이서 서로 나눈 대화이다. 첫째 물방울이 나는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가서 땅을 내려다보며 즐기고 싶다고 하였고, 둘째 물방울은 나는 낮은 곳에 머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서 각각 주님께 자기소원을 기도하였다.

그런데 하느님이 첫 번째 물방울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풀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에 햇볕이 쨍쨍 내려쪼이자 곧 그 물방울은 증발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런데 얼마쯤 올라가니까 추워져서 움츠러들게 되었다. 추워서 옆에 있는 수증기 방울에게 나와 함께 합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증기 방울들도 춥다고 함께 모여왔다. 그러다보니 물방울이 무거워지게 되었고, 점점 더 추워져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어느덧 우박이 되어 무게에 못 이겨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데 옆의 바위에 떨어져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야!”하는 비명소리에 놀란 둘째 물방울이 얘야, 많이 다쳤니?”하고 인사하였다. 그런데 그물방울은 나뭇잎에 올라가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첫째 물방울이 너 어떻게 그 높은 나뭇잎에까지 올라갔냐?”하고 물으니 둘째 물방울이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자신은 낮은 곳만 찾아 땅속으로 스며들어가다가 큰 나무뿌리에 닿았다. 그런데 나무뿌리가 물방울아, 나 좀 도와줘. 지금 가물어서 물이 없어서 나무가 시들고 있단다. 네가 우리 속으로 들어올 수 없겠니?”하고 묻는 것이었다. 불쌍한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그래, 내가 도와줄께!”하고 나무뿌리 속으로 들어갔더니 나무뿌리는 줄기를 타고 위로 위로 올려 보냈다. 나무줄기는 나뭇잎이 물기가 없어 시들고 있으니까 나뭇잎으로 보내주었다. 그래서 둘째 물방울이 나뭇잎에 매달려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아래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얼음 우박이 되어 바위에 부딪쳐 박살이 나서 중상을 입은 첫째 물방울은 둘째 물방울을 부러워하며 나도 앞으로는 낮은 곳으로 내려 갈거야!“하고 결심하였다.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하느님이 높여주신다

오늘 제2독서(2디모)는 바오로 사도가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회고하는 내용이다. 인생은 마라톤경기와 같다. 조금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는 경기다. 믿음의 싸움, 믿음의 경주에는 방학도 은퇴도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중단 없이 뛰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 믿음의 경주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낌없이 하느님께 바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새로운 출발로 여기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승리의 월계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희망에 차있다.

자신이 법정에 섰을 때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어도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을 뜨겁게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독을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바오로 사도의 마지막 기도를 생각하며 우리의 마지막 기도가 어떠해야할지를 묵상하자.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디모4,7-8)

바오로사도가 받아쓰게될 월계관은 바오로사도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애타게 사모하는 열정을 갖고 달릴 길을 다 달린다면 정의의 월계관을 받아쓰게 될 것이다. 천국은 힘센 자의 소유라고 했다. 천국월계관을 받으려는 거룩한 욕심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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