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3.03.27 20:06

성금요일(이사62,13-12; 히브4,14-16; 요한1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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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이사62,13-12; 히브4,14-16; 요한18,1-42)

 

성금요일을 우리는 Good Friday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 가장 슬퍼해야할 날이 왜 좋은 날이라고 할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의 죄가 면제되거나 그 범죄행위가 잘했다고 칭찬받을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피의 대가를 자기들이 받겠다고 호언장담한 결과로 2000년 동안 나라 잃은 백성으로 온갖 서러움을 당하고 지금도 그들의 영신적인 구심점인 예루살렘성전을 이슬람교도들에게 빼앗긴 채 통곡의 벽에 매달려 그 옛날의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회복시켜주시기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 처형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또 다른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고집스럽게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3시간 동안 단말마와 같은 고통을 받고 신음하시다가 운명하신다. 인간의 잔인성이 극에 달하여 창조주를 나무에 매달아 죽인 것이다.

십자나무는 창조주의 피를 흥건히 묻히고 죄송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괴로워하고 있다. 선악과의 불행한 죄악이 나무에서 비롯되었으니 예수님은 나무에서 구원을 성취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물든 나무는 이미 원죄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었다.

예수님의 지존하신 손과 발에 박아대는 망치와 쇠못도 창조주의 곱디고운 손과 발에 상처를 내는 죄송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몸부림친다.

하늘의 해도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모습을 감추니, 사방은 어둠으로 덮이고 말았다. 동산의 새들과 짐승들, 온갖 피조물이 창조주의 잔혹한 죽음을 숨죽이고 지켜보면서 불안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먼 옛날 이분의 손길로 손수 빚은 창조의 작품 중에 가장 걸작품이라고 만족해 하셨던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계시는 우리의 창조주요 구세주께서 십자가상에서 외치시는 가상 7언을 음미해보자.

1.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그분을 살해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나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쯤이야 당연히 용서해야할 것이 아닌가? 오늘 나는 나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의 명단을 불러가며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용서의 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도 죽으셨지만, 내가 미워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셨기 때문이다.

2. <<,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리라.>>

우편강도의 회개와 의탁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는 최초의 행운아가 되었다. 예수님의 자비에 비하면 우리의 죄는 화롯불에 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하여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이다. 용기를 내자.

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우리를 대표해서 서있는 요한 사도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넘겨주시니 이제부터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는 이제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다시 형성하시기를 원하신다.

4.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추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 죽음, 질병, 9.11 테러와 같은 갖가지 형태의 엄청난 재난 등,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 앞에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는 이 때 성경 시편 22편을 찾아 읽으며,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을 받아들이자.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찬란한 빛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로 하여금 죄인의 고독을 철저히 체험시키셨다. 이절규는 우리 인간이 죄의 상태에서 부르짖는 절규인 것이다.

5. <<, 목마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머리인 예수님이 지체들의 죄로 인해 불구가 되었을 때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갈증은 당신의 우리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죽음보다 강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을 탄식하시는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6. <<내가 다 이루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올린 승리의 개가요, 아버지께서 맡긴 사명을 다 이루셨음을 외치시는 예수님의 함성은 어느 때보다도 힘차시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예수님처럼 마지막 날에 그 사명을 다 이루었음을 힘차게 외치도록 매순간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정성을 다하자.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Father, into your hands, I commend my spirit!)>>

예수님의 죽음의 고통 속에서 외치는 이 마지막 절규는 아버지와의 깊은 사랑의 일치를 표현한다. 우리도 고통에 처할 때, 십자가상 죽음의 극도의 고통 중에 계시는 주님과 더욱 깊은 사랑의 일치를 이루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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