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3.03.27 20:16

부활성야미사(루가 24,1-12)

조회 수 71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인류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요 기쁨인 예수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과 각가정과 사회 온 인류 공동체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역사를 두 쪽으로 갈라놓으셨다. 그래서 예수님 오시기 전을 기원전(Before Christ)이라 하고, 예수님 오신 후를 기원후(Anno Domini)라고 칭한다. 즉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 오시기 전과 예수님이 오신 후의 시대로 역사를 갈라서 말 할 만큼 예수님은 세상의 역사와 세상의 모든 일의 중심이 되신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역사와 세상사의 중심이 되게 만들었는가? 예수님의 말로가 어제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났다면 한낱 조롱거리요 어리석은 한 사나이의 억울한 죽음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세상의 역사를 바꿔놓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은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예수부활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세상은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세상과 인생에 있어서 풀 수 없던 온갖 수수께끼가 다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인생에 가장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고통과 죽음 후의 문제 그리고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순박한 영혼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문제였다. 죽음이라는 공포의 대상 앞에 인생은 속수무책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같은 세상의 공포와 두려움을 새로운 삶에의 희망으로 바꿔놓았고 모순처럼 보이는 악의 세력의 득세에 죽음후의 공평한 하느님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의인들의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였으니 이제는 죽음도 고통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와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이 되었다.

세상은 실로 예수님의 부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망가지고 부서지고 파괴되었던 모든 요소들이 이제 제자리를 찾게 되었고 버려진 땅은 축복받은 땅이 되었고, 고난과 죽음도 은혜요 축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셨다. 십자가가 그 열쇠요, 부활이 그 해답인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모두 축복이요,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것은 모두 축복으로 변하였다. 저주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성혈이 축성하여 거룩한 구원의 열쇠가 되었고, 인류 최대의 공포의 대상이요 두려운 존재였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 체험 후에 죽음은 이제 새로운 삶에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 날에 육신이 부활할 것만이 아니라, 정신의 부활, 생활의 부활, 마음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할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실망할 때도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때가 새로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났다가 아버지의 고마움을 알고 새로 태어나듯이, 삶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닥치는 십자가를 보물단지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부활의 씨앗을 찾아 심자. 한 알의 씨앗이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내게 상처를 준 형제는 나에게 기도와 구원을 요청하는 간절한 싸인이니 속상해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주자. 나에게 절실하고 실감나는 기도제목을 선물한 그에게 감사하자. 섭섭한 것을 생각하면 밤잠을 자다가도 깨어나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기도해달라는 강력한 싸인이다.

신앙의 위대함은 현재의 상태를 뛰어넘는데 있다. 미움이 제자리에 멈춰 또아리를 틀게되면 독사가 또아리를 틀듯이 독버섯이 피어나게 된다. 미움이 사랑으로 껑충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늘 부활의 단계로 뛰어넘는 파스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도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의 상태에서 다음단계로 저 높은 곳을 향해 파스카 즉 뛰어넘어야 한다. 예수님이 당신의 부활로 세상모순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셨으니 이제는 세상이 절대로 불공평하지 않다. 우리가 모두 그분처럼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위대한 첫새벽을 늘 바라보며 희망찬 전진을 시도하자. 거기에 우리의 참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강생사건은 역사상 가장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하느님이 피조물인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을 수 없는 하느님이 십자가에서 수난하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은 더 놀라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죽으신지 사흘만에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가장 놀랄만한 사건이다. 오늘이 바로 사람이 되어 오신 그 하느님이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날이다.

이 사건을 놓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 드러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달려가 보았으나, 빈무덤이었으므로 깜짝 놀라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간 줄 알고 베드로와 요한사도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린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몰약으로 방부처리하려고 갔던 것이었다. 베드로와 사도 요한도 놀라서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 사도요한이 먼저 도착했으나 베드로에게 양보한다. 베드로는 들어가 보고나와 얼떨떨하여 서있다. 무덤 안에는 아마포가 한 쪽에 놓여있고, 한쪽에는 수의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들어가 보고나와 믿었다.”

콜롬보형사라면 이 정황을 보고 시신을 도적맞은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쉽게 할 것이다. 훔쳐가는 사람이 수의를 차분히 개켜놓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활의 개연성이 높아지는 데 아직도 결정적인 단서는 없다. 이는 믿음의 영역인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히브11,1)이라 했다. 이성의 차원에서 믿음의 단계로 넘어가는 파스카가 이루어져야한다.

예수부활의 첫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여인들이다. 천국은 사랑의 서열이다. 누가 예수님을 더 열렬히 사랑했느냐가 천국서열을 결정한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사도가 같이 달려가지만 요한이 먼저 도착하였다. 그것은 요한이 젊어서 혹은 달리기에 솜씨가 더 있어서라고 판단한다면 너무 싱거운 묵상이다. 요한의 별명이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였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어느 제자보다도 더 강렬하였기에 먼저 달려 도착했던 것이다.

수도자들의 삶은 부활의 빙거를 확신하는 자들의 행복한 삶이다. 남자들에 함께 모여 독신으로 한평생을 아쉬움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활의 삶이다.

또한 세상은 부귀영화를 행복의 기준이라 하며 욕심내어 서로 다투는데 수도자들은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삼덕을 서원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버리는 속에서 참 기쁨을 찾으니 이는 부활의 빙거가 아닐 수 없다. 오늘 2독서인 골로사이서에서 땅의 것을 버리고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라고 하신다. 땅의 것에서 하늘의 높은 곳의 가치로 넘어가는 파스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신자들의 40%정도가 부활사건을 믿지 못한다는 앙케트 조사가 있다. 단지 마음의 평화를 위해 교회에 나온다는 신자들이 많다. 그리스도교는 도덕종교가 아니라 부활사건이 믿음의 핵심이다. 베드로도 성령강림 후에(사도행전 2장) "예수 리는 이름 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이 없다"(사도4,12)고 선언하며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 것을 오히려 특권으로 여긴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오늘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부활신앙으로 재무장하는 한편, 현세에서 영생불사약을 찾는 어리석은 진시황의 후예들에게 참 영생불사약인 부활하신 에수님께 대한 믿음의 영생불사약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 수도자들의 사명이요, 부활의 삶을 살도록 새롭게 다짐하자. 

 

 

 

Who's Stephanus

profi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278 주일, (대)축일 강론 8월 8일-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 Stephanus 2014.08.08
277 주일, (대)축일 강론 8월 6일-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Stephanus 2014.08.05
276 주일, (대)축일 강론 8월 5일(성모 대성전:雪地殿 聖殿 축성기념) Stephanus 2014.08.04
275 주일, (대)축일 강론 2014-8-3-연중 18주일(이사55,1-3; 로마8,35-39; 마태14,13-21) Stephanus 2014.08.02
274 주일, (대)축일 강론 2014-8-2- 8월-첫 토요일 신심 미사 Stephanus 2014.08.01
273 주일, (대)축일 강론 8월 1일-성 알퐁소 데 리구오리 주교 Stephanus 2014.08.01
272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31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Stephanus 2014.07.30
271 주일, (대)축일 강론 2014-7-27-연중 제17주일 Stephanus 2014.07.25
270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6일-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 Stephanus 2014.07.25
269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5일 장 야고보 사도 축일 Stephanus 2014.07.25
268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3일-성녀 브리지타 기념 Stephanus 2014.07.23
267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 Stephanus 2014.07.20
266 주일, (대)축일 강론 2014-7-20-연중 16주일(농민주일: 지혜12,13-19; 로마8,26-27; 마태13,24-43) Stephanus 2014.07.19
265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16일-갈멜산의 동정 성모 기념 Stephanus 2014.07.15
264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15일-성 보나벤뚜라 주교학자 기념 Stephanus 2014.07.14
263 주일, (대)축일 강론 2014-7-13-연중 15주일(이사55,10-11; 로마8,18-23; 마태13,1-13) Stephanus 2014.07.13
262 주일, (대)축일 강론 2014-7-11-연중14주-금-마태10,16-23-성시간강론 Stephanus 2014.07.10
261 주일, (대)축일 강론 연중 14주일(이동축일: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대축일) Stephanus 2014.07.05
260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Stephanus 2014.07.04
259 주일, (대)축일 강론 2014-7-3-7월 3일-성토마스 사도축일 Stephanus 2014.07.02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37 Next
/ 3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