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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성탄 미사는 성탄이 시작되는 밤 12시에 지내고, 아침 해뜰 무렵에 지내고, 그 다음에 해가 뜬 다음에 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의무이지만 세 번의 미사를 모두 드려야 한다는 의무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 번의 미사를 지낼 수 있도록 교회에서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 전야 미사는 원래 성탄 자정에 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전례 규칙이 바뀌어서 밤 10시부터 지낼 수 있도록 교회에서 허락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한밤중에 다니기도 무섭고 차 사고도 염려되고 하니까 너무 늦게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마 교회에서 그렇게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이렇게 밤 10시에 지내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를 많이 개정했는데, 예전의 전례가 훨씬 더 마음에 와 닿고 전례다운 맛이 났습니다. 요즈음은 성주간 예절이나 오랜 전통이 있는 대축일의 예절을 너무 쉽게 변경을 해놓으니까 별로 축일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전례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만 교회에서 하는 일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TV에서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생활을 방영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수도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베네딕도 수도회와 트라피스트 수도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왜관 공소의 전교 회장이었던 김숙성 가밀로 씨의 동생 김복대 레오나르도 수사님이 1926년 8월 15일에 덕원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첫서원을 했었는데, 그때 회장님과 함께 아버지도 다녀오셨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책과 성물들을 사오셔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수도회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때 내 나이 열한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그 이야기가 참 신비롭게 느껴져서 재미있게 들었을 뿐 아니라 수도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신부가 되기 전에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대구 유스티노 소신학교에 들어갔는데, 당시 형님들이 사업 관계로 일본에도 자주 다녀왔습니다. 한번은 일본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갔다가 팜플렛과 사진 같은 것을 사다 주었기 때문에 그 수도원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신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졸업 여행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신학생들이 서양의 원조로 간신히 공부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여행은 생각도 못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1939년 6월에 대신학교에서 삭발례를 받은 후에 아버지께 청했습니다.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일본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즉시 허락하시며 여비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하고 둘이서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일본 각지에 있는 교회 사업들을 견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내 목적지 중에 한 곳이 일본 북해도에 있는 트라피스트 남녀 수도회였습니다. 남자 수도원에서 이틀 밤 자고 여자 수도원에서 하룻밤 자면서 3일간 트라피스트 수도 생활을 참관했습니다. 그때 동경에서 공부하던 내 질녀도 같이 갔는데, 남자 수도원에는 응접실 외의 공간에는 여자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자 수도원에는 남자든 여자든 응접실까지만 허용이 되었습니다. 성당에도 제대 칸 옆으로 자리를 따로 정해 놓고 손님들은 그곳에서 미사 참례를 하게 하는 등 규칙이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TV에서 트라피스트 수도회 생활을 보니, 트라피스트 수도회도 규칙이나 생활 양식이 상당히 바뀐 것 같았습니다. 북해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갔을 때 그 수도회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까지 계속해서 기도하고 저녁 일곱 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금 미국의 오하이오주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여덟 시에 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곱 번 기도하고, 사이사이에 일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갔을 때 북해도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공동 침실이었고, 옷을 갈아입을 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튼을 쳐서 한 방에 십여 명씩 자도록 되어 있었는데, 오하이오주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개인 방이 주어졌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수 생활을 하듯이 산에 작은 암자를 지어 그곳에서 몇 달씩 살다 나오기도 하는 등 그 일이나 생활이 예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트라피스트 생활은 완전 침묵이었습니다. 북해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있을 때 마당에서 둘러보니 새 우는 소리하고 수도자들이 나무 가지치기하는 가위소리 정도만 들릴 뿐, 하루종일 있어도 사람 말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활이 무척 힘들고 어렵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나를 안내해 주던 부제님에게 수도원 생활이 참 좋게 느껴진다고 했더니 나에게도 수도원에 들어오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대구 교구 성직자로서 삭발례를 받았고 교구와 계약을 맺었는데, 하느님께서 성소를 바꾸도록 어떤 표적을 주신다면 하느님 뜻에 순명하겠지만 내 뜻으로 성소를 바꾸지는 못하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 센다이에 내려서 주교관에 들렀다가 도미니코회 소속인 주교님으로부터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신학교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 소신학교 교장신부님도 역시 도미니꼬 수도회 신부님인데 친절히 대해 주시면서 신학교에서 저녁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때 교장신부님이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성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천주성삼 신심은 종합신심으로 신심 중에 가장 고상한 신심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내가 천주성삼 신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이때부터입니다. 그 성녀의 전기가 출판되었다며 당신에게는 한 권뿐이니까 동경에 가거든 사서 읽어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내가 떠나올 때에는 교장신부님이 소신학생들을 전부 인솔하여 기차역까지 나와서 전송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상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 동경에 와서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에 대한 책을 사 보았는데, 그전에는 예수성심만 공경하는 줄 알았지, 천주성삼을 공경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성녀의 전기를 읽어보고서야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면서 천주성삼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는 그 생활이 가장 완전하고 고상한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에 동경 신학교 영성 지도 신부로 계시는 파리외방선교회 회원인 꼬샬 신부를 찾아가 뵈었습니다. 내가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왜관 본당 신부로 10년 계시다가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 주임 신부로 계시던 리샬 신부님이 꼬샬 신부님한테 소개장을 써서 나한테도 주시고 꼬샬 신부님께 우편으로도 부쳐둔 상태였으므로 신부님이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었습니다. 리샬 신부님 편지를 받고 내가 오면 여름방학 동안 신학생들 별장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주선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 왔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별장은 일본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했더니 그 신부님이 하루라도 대접을 하고 싶다고 당신을 따라가겠냐고 해서 기쁘게 신부님 뜻을 받아 들였습니다. 요코하마 해수욕장을 구경시켜 주시고 그 호텔에서 점심을 사주신 후, 친하게 지내시는 하세가와라는 화가가 순 일본식으로 설계해서 지은 성당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 주임 신부는 역시 파리외방선교회 회원으로 프랑스 신부님이셨는데, 그 분이 고안을 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려서 그림으로 교리를 가르치도록 해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그림 교리를 설명해 주시면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신심이 있지만, 초보 신심부터 점점 고상한 신심으로 올라가서 마지막에는 천주성삼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주 감명 깊게 들었는데, 그때부터 천주성삼을 공경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신심 생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대신학교에 와서 복음서를 읽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사실 소신학생 때는 철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짝꿍이랑 장난치고 놀기만 하니까 교장신부님이 내 짝은 급장 옆에 앉히고 부급장을 내 옆에 앉혔습니다. 그때 부급장이 바로 나보다 네 살이나 위인 안 마가리오였습니다. 그 친구가 보기에도 내가 너무 철없이 생활하는 것 같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너 천주 좀 사랑해라. 성소 좀 사랑해라.” 하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냐고 물어 보니까 그 대답은 안 해주었습니다. 사랑하면 심장으로 그 사랑을 느껴야 되는데 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성소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말이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며, 그 후로는 그 친구가 던져 준 말이 늘 내게 숙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신학교 졸업하고 대신학생이 되자, 앞으로 6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나면 사제가 될텐데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사목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전해야 되는데 예수님을 모르면서 뭘 가르치겠나 싶어서, 이제는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될 테니까 성서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시간 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고 하신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켜라.’ 하시니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명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도에도 부모의 육신을 돌보는 길과 부모의 마음을 받드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계명, 하느님의 계명을 받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서 내 영성 생활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그때부터는 신학교 규칙도 양심적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예수님 사랑이고,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라고 했지만 ‘아버지와 나’ 속에는 항상 사랑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곧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천주성삼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부가 된 날이 바로 1942년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바로 전날인 토요일이었는데, 나는 그날 내 사제 생활을 천주성삼께 조건 없이 봉헌하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 중 략 > 우리가 모든 선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 따르는 것이 우리의 포기이고, 순명이고, 인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에 따라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수도회 영성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수도회 영성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 영성이 우리 수도회 영성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영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구유에 누워 계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동정녀의 태를 빌려 인간 육신을 취하셨는데, 이것은 겸손이고, 순명이고, 인내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성부 품에서 만복을 누리시다가 이 세상에 오셔서 한평생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마태 8,20)고 하실 만큼 가난하게 사셨고, 돌아가실 때는 불과 대여섯 자밖에 안 되는 그 몸 하나도 누우실 장소가 없이 못 세 개에 박혀 공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시고, 죽기까지 순명하신 예수님을 천주성부께서는 당신 오른편에 앉게 하셔서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못다하신 일을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고 가셨으니 그 사업에 동참하고 도와드리기 위해,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만방에 가서 만민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라고 하신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고, 신앙 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또 다른 무슨 영성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수도회마다 특은을 주시는 만큼 각 수도회는 우열이 없습니다. 자기 수도회 영성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수도회가 다 같을 수 없고 시대에 따라서 수도회도 발전하고 변천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완전무결하신 예수님의 영성을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서 성인 성녀들이나 수도 단체들이 새로 설립되어 이루어 갔듯이 그 일부를 우리 수도회가 맡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밥에 있는 콩이 굵어 보인다고, 공연히 다른 수도회를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맙시다. 내 성소 네 성소 구별해서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우리 수도회 영성에 따라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자기 몫을 충실히 함으로써 봉헌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영성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쓰시고 싶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니까 너무 형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을 하도록 노력하면 그것이 바로 봉헌 생활이고 완덕 생활일 것입니다. 성부·성자·성령이 한 하느님으로서 먼저 계심도 후에 계심도 없고, 높고 낮은 구별도 없지만, 성부는 성부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시고, 성자는 성자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시고, 성령은 성령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시듯, 우리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완덕 생활이고 봉헌 생활입니다. 이것이 우리 수도회 영성이고, 이 시대에 천주성삼의 이름으로 특은을 주시면서 우리 수도회를 시작하도록 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 수도회의 “티 없으신 성모성심을 통하여 천주성삼께 영광”이라는 영성은, 인간으로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신 성모님의 성심을 본받아 만유 위에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봉헌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모님께서 천주성부의 지극히 겸손하신 따님으로서, 천주성자의 평생 동정이신 어머니로서, 천주성령의 지극히 정결하신 짝으로서 일하시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각자 위치에 따라 자기 본분을 다하고,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이룩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영성입니다. 아울러 성모님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삶을 본받아 천주성삼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오직 하느님 중심으로 살며, 나아가 인간의 죄로 상처 입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상하고 특히 이 시대의 교회의 쇄신과 생활 개선을 위해 기도와 희생의 배상 생활을 하는 수도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혼과 육신이 합하여 이루어져 있는데, 육신이 영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육신 안에 영혼을 가두어 영혼이 육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은 속화 정신입니다. 하느님을 배제한 채 인간 중심의 현세 생활에 치중하는 사상이 인류 속에 팽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순명의 덕과 정결의 덕을 잘 닦으며 우리의 현세 생활을 온전히 제사 바침으로써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받들며 “성모성심을 통하여 천주성삼께 영광”을 드리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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