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5.06.20 14:56

2015-6-21-B해 12주일-욥38,1-11; 2고린5,14-17; 마르4,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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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2주일-38,1-11; 2고린5,14-17; 마르4,38-41

 

인간은 때로 예상치 못한 재난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한다.

오늘 제 1독서의 욥처럼 정직하고 흠 없이 살아왔는데 사탄의 시기 질투로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자녀들을 잃고 자신도 피부병에 걸려 밤에 도 잠을 잘 수 없어 잿더미 위에서 새금파리로 부스럼을 긁으며 원망하는데 더구나 아내마저 저주하고 떠나버리고 친구들이 찾아와 욥이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빈정대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고 충고를 한다.

욥은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하느님께 항변을 한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내가 주님 앞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하며 항의한다.

욥의 이 질문은 가끔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의문이요 항의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수수께끼처럼 일어나는 질문이, “왜 선한 의인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소위 의인의 고통에 관한 의문이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은 욥이 항의조로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하신다. “누가 바다를 만들었느냐? 시련의 바다 속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 그 바다를 누가 만들었느냐?”고 질문하신다.

도대체 누가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누가 그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느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요 주인이며 완성자이심을 의미한다.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인생의 주인공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요 우리를 세상의 헛됨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만들어주는 방향타가 된다.

사탄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고 세상의 쾌락에로 이끌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괴롭힌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험한 파도가 밀려들자 겁에 질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살려달라 외치듯이, 우리도 이런 시련을 당하여 주님께 SOS를 보낸다면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파도를 조용히 잠재우실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바다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배에 태우고 사는 믿음은 우리에게 아무리 풍랑이 거세게 몰아쳐도 두려움을 이겨낼 확신을 갖게 해준다.

고통 중에 위로가 되는 말씀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련이 크고 힘들다 여겨질 때, “주님께서 나의 믿음을 이렇게 크게 보시고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하시고 이런 큰 고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고 위로를 삼으면 약이 될 것이다.

고통은 그 맛이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인생사의 주관자가 분명 하느님이시라면 그분 손 안에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다 좌우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통 주에 있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풍랑에 시달릴 때 주님은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신다. 그것은 침묵 중에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의미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 주님을 그분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며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하고 우리 마음을 고조시킨다.

주님은 우리를 시련과 고통의 풍랑 속에 던져놓고 관심 없이 코골며 잠을 주무시거나 고소하다고 구경거리로 삼고 수수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분이다.

다만 주님은 당신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가 한 때 불결한 생각이 마음을 괴롭혀 이를 물리치려고 괴로워할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하니 주님은 괴로워하는 네 마음 속에 너와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어느 성인의 묵시 중에 주님께서 성인 자신의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보여주시더란다. 그런데 즐겁고 순탄한 여정 중에는 두 사람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는데,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성인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곁에 걸어가시던 예수님 발자국만 보였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더니, “네가 힘들어 할 때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인생에는 많은 물음이 제기된다. 그러나 인생의 주관자이신 분이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많은 질문은 사라질 것이고, “왜요?”라는 질문이 어느덧 그러면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합니까?”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성모님께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주소서.”라고 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사건은 없다. 길가에 난 질경이도 때로는 좋은 약재로 쓰이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인생사의 힘들고 어려운 사건 안에 고요히 주무시는 듯 침묵하시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께 SOS를 보내자. “주님 보고만 계시렵니까? 저희를 구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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