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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축일은 성탄의 신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지상 성가정이 형성되었고 그 분은 천상 성가정 즉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성가정의 일원으로 지상 성가정을 건설하러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는 의도는 그 성가정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주님의 공생활이 시작될 때까지 그리고 그 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겪은 모든 인간적인 체험을 신자들로 하여금 인식케하여 그 성가정을 찬미하고 모범으로 삼아 따르게 하는데 있다. 오늘 본기도에서도, “성가정의 빛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 우리로 하여금 성가정의 덕행과 사랑을 본받음으로써 마침내 영원한 주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이 오늘날 교회를 위해서든 일반 시민사회를 위해서든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가정은 인간생명에 있어 호흡과도 같은 사랑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사랑을 배울 수 없기에 가정은 이런 의미에서 사랑의 학교이다. 또한 가정은 하느님을 배우는 가정교회이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라틴 아메리카 주교총회를 개최하는 자리에서 “가정사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십시오. 가정교회는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인식과 또한 생명과 인간 품위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라고 강조하셨다. 가정에 관하여 성서의 내용은 실로 풍부하다. 성서는 모든 가족관계 –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 가 사랑이라는 기본법에 근거하고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1독서인 집회서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제4계명과 연결시켜 그 계명을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뿐만 아니라 특히 종교적 이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아비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죄를 벗는 것이며 어미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오리는 것이다. 아비를 공경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구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어주시리라. 아비를 공경하는 사람은 오래 살 것이며,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어미를 평안케 한다.”(집회3,3-6) 결과적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셨고 이와 같은 사랑의 교류의 법을 거부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1차적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을 교회공동체적 가정의 차원으로 끌어 오린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골로 3,12-13) 사도 바오로는 가정을 사랑의 보다 높은 차원의 요구에 상응하게 끌어올리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새로운 계획에 일치시킴으로써 가정의 본성을 그리스도교화시킨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으로써’ 가정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계획과 항구히 일치하게 된다. 크리스찬적 정신은 오늘날 사회의 모든 위협 때문에 퇴폐하고 파탄지경에 이른 가정에 새로운 힘과 활기를 불어넣어주게 된다. 가정을 행복의 보금자리,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그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전례의 핵심이다. 오늘 복음이 그 절정이다. 핵심내용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잃어버린 아들 예수를 찾고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는 어머니 마리아의 상심에 찬 꾸지람에,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하는 예수님의 대답에 있다. 예수님은 성부와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관계를 맺고 잇다. 즉 그 분은 당신을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끌어 갈 성부의 뜻을 행해야만 한다. 이 놀랍고도 떼어버릴 수 없는 ‘의무’는 에수님의 생애 가운데 결정적인 순간들을 하나하나 역어나감으로서 마침내 그 분을 성부의 영광 안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성가정축일에 오늘 복음이 읽혀지는 이유는 가정의 중심이 하느님이 되어야 함을 제시하고자함에서이다. 우선 에수님 가족이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성도 하느님의 도시를 순례하는 것부터 하느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함을 깨우쳐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하고자 함이다. 에루살렘성전에서 에수님을 잃어버림은 나자렛가정의 평온한 생활에 청천벽력과 같은 파문이 되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어머니 마리아의 입을 통해 퍽이나 자제하며 표현되고 잇다. “얘야, 왜 우리를 이렇게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2,48) 이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네 가정에도 전혀 아무런 번민, 갈등, 실패, 질병, 환란이 없는 가정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 부딪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 대한 신뢰만이 그러한 고통을 덜어주며 원천적인 해결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답이 바로 이를 지적해준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질문은 ‘왜 나를 아버지집 밖에서 찾아 헤매느냐’하는 예수님의 책망어린 충고이다. 격정과 고뇌 중에는 이 말씀이 귀에 들리지도 않고 깨달을 수도 없다. 그러나 성모님이 보여주시듯이 “침묵 중에 마음 속에 간직하고 기다리는 중에’ 깨닫게 된다. 우리가 찾는 행복과 평화 문제의 해결책을 하느님밖에서 찾아 헤맬 때 에수님은 이 대답을 주신다. ‘해결의 실마리인 내가 아버지집에 있음을 모르느냐?’고.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 담겨있는 신비를 미쳐 깨닫지 못햇던 것같이 모든 인간세상에서도 인간존재 속에 신비가 들어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하느님의 빛에 비추어 자녀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지각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흔히 자녀들의 길은 부모들이 생각하거나 원하는 길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가정의 교훈은 무엇일까?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나자렛 순례중에 성가정이 주는 교훈을 말씀하신 바 있다. 첫째 침묵생활이다. 나자렛의 하늘왕자의 집은 진시황의 아방궁도 아니요, 백악관이나 청와대와도 비교가 안되는 아주 초라한 집이었다. 그 누구도 이 가정을 하늘왕자가 사는 집임을 알지 못하였고 드러나게 자신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요셉성인도 왕자의 양부로서 위세를 부린 일은 추호도 없었다. 고종황제의 부친 대원군의 위세나 동생이 대통령이라는 권세를 이용하여 온갖부정을 일삼았던 전 모씨의 횡포 등과도는 차원이 다르다. 요셉성인의 특징은 바로 침묵생활인 점이다. 성서에도 그 분은 한마디말씀도 나오지 않을만큼 묵묵히 자기의 사명인 성가정의 수호자역활을 충실히 할 뿐이다. 고시조중에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 것이 남의 말 내가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많으니 말많을르까하노라.” 고 했다.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 이유중에 많은 경우가 세치밖에 안되는 혀가 조장하는 것이다. 농아자는 이점에서 훨씬 죄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하겠다. 나자렛 성가정의 둘째 교훈은 노동의 신성함이다. 소년 에수는 창조주로서 피조물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며 봉사했고 목수 요셉 밑에서 노동을 기꺼이 수행했다. 요셉과 마라아도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겸손하게 해나갔다. 노동의 수고와 땀은 우리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고 원조의 불순명으로 저지른 죄를 순명으로 보속하도록 교훈한다. 가난할때 먹을 것이 없어 술지거미를 함께 먹으며 산 처를 조강지처라하며 조강지처를 버린 남편은 천벌을 받는다고 일털어 왔다. 톨스토이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모른다.”고 햇다. 땀흘려 수고한 대가로 번 돈이라야 값지게 아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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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8 B해연중 28주일(지혜7,7-11; 히브리4,12-13); 마르코10,17-30)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7 28주 성시간(금; 10월 20일: 에페 1,11-1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6 B해 연중 30주일(예레 31-7-9; 히브 5, 1-6;마르 10,46-5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5 11월 첫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 파티마 제 3의 비밀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4 11월 첫목요일 성시간(위령성월) - 자비의 때와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일 지원 ^^;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3 B해 연중 31주일(신명 6,2-6; 히브 7,27-38; 마르 12, 28-34) - 하느님 사랑의 첫 계명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2 B해 32주일(1열왕 17, 10-16; 히브 9, 24-28; 마르 12,38-4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1 B해 연중 33주일(다니 12,1-3; 히브 10,11-18; 마르 13,24-32; 평신도의 날)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10 B해 연중 34주일(그리스도왕 대축일)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9 12월 첫토요일 신심미사 강론과 묵상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8 대림 1주일 다해 강론(예레 33,14-16; 데살 3,12-4,2; 루가 21,25-36)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7 대림 1주일(예레 33,14-16; 데살 3,12-4,2; 루가 21,25-36)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6 12월 첫 목요일 성시간 - 12월 8일(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5 C해 대림 3주일(자선주일; 스바 3,14-17; 필립 4,4-7; 루가 3,10-1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 성가정 축일(집회3,3-14; 골3,12-21; 루가2,41-5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3 예수성탄대축일(성야미사)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2 성탄 새벽미사(루가 2, 15-20)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1 성탄 낮미사(요한 1, 1-1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300 1월 1일(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평화의 날)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2299 첫토요일 신심미사(1월):하늘의 문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 ... with english)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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