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12.15 20:34

2015-12-16-대림3주간-수-이사45,6-25; 루카7,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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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3주간-수-이사45,6-25; 루카7,18-23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왠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질문을 여쭙도록 파견하고 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으러 보냈으니 말이다.

처음에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는 확신에 차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 저기 오신다. 나는 저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고, 저분은 점점 커지셔야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고 선포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의심을 품는 것일까?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으므로 정치적 메시아로서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다윗과 같은 군주로서 이스라엘의 부국강병을 회복시키는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른바 제왕적 메시아관이다.

물론 영신적인 메시아적 측면, 즉 섬기는 자로서의 겸손한 메시아로서의 성격도 지녀야하겠지만 그 당신에는 로마의 압제에 짓눌려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비참상을 아시는 하느님이라면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아관이 더욱 크게 기대되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시는 일을 보니 정치적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고 오직 병자치유와 마귀를 쫓아내고 죄인들과 어울리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시는 것만 행하시니 요한의 기대에는 너무 못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저분이 메시아가 맞는가? 아니면 다른 분을 더 기다려야 되는가?”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파견하여 여쭈어보게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맞다,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너희가 본대로 가서 전하여라. 그런데,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경고하신다.

무슨 말인가 하면, “너희가 생각하는 메시아관이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메시아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왔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서가 아니라, 겸손하게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이점에 실족하지 말아야 구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오셔서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죄인들과 어울려 그들을 회개로 이끌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박한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일이지, 정치적 메시아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경제적 부강을 약속하는 제왕적 메시아관은 잘못된 것임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착각에 빠지는 것은 곧 실족하는 것이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구령길에 위험하다는 경고이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 보다 큰 사람은 없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도 그보다 더 크다고 일침을 놓으신다.

올바른 메시아관을 지녀야만 천국의 작은 영혼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이렇게 올바른 메시아관에 입각한 신앙을 가르치고 섬기는 자세를 본보기로 실천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할 때다.

돈 보스코 성인이 1870년대 이태리의 정치적 통일론에 모두가 혈안이 되어있을 때, 성인은 오직 불우청소년들 교육시키는 데만 관심을 갖자 동료사제들이 비웃고 박해하고 모함하며 왕따시켜 고통을 많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뜻은 정치적 통일보다 청소년 구령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하였기에 온갖 모욕천대 멸시를 다 감수하며 그 일을 계속한 결과 오늘날의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매사에 기도로써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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