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09.03 09:44

2015-9-4-연중 22주 금(콜로1,15-20; 루카5,33-39)-9월 첫성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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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 금(콜로1,15-20; 루카5,33-39)-9월 첫성시간


 

오늘 말씀전례에서 1독서와 복음은 그리스도론에 관한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누구이시며, 무슨 일을 하러 오신 분인가?>>이다.

1독서 콜로사이서 1장에서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시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 분 안에서 그 분을 향하여 창조되었고,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고, 시작이요 마침이신 분이요, 죄로 인해 하느님과 불목하였던 인간을 당신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화해시키는 화목제물이 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이 그리스도론이다.

그분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그분이 하신 역할이 다 담겨 있는 함축적인 내용이다. 콜로사이서는 그리스도론을 주제로 하고 있다.

복음과 연관시켜 오늘 그리스도는 누구이시며, 무엇하러 오셨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복음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헌 가죽부대를 새 부대로 바꾸라고 하신다.

하느님은 6일 창조 때 다른 삼라만상은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셨다. 태양도 달도 땅도 하늘도 바다도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함께 모여서 우리를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의논하시고 정성을 다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다른 피조물에게는 주지 않으신 굉장한 선물을 주셨다. 당신 영을 부어주신 것이다.

이만큼 인간을 만드실 때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정성을 다해 빚어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비록 소재거리는 변변치 못한 흙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성삼위께서 끔직하게 정성을 쏟아 만들어주셨다.

모세가 하느님께, “백성들에게 주님을 소개할 때 누구라고 할까요?”하니까, 당신 자신을나는 나다!”(I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전화할 때, “나는 이름이 누구이고 주소는 어디이고 자녀인 아무개와 통화하고 싶습니다.”고 설명하는 엄마가 어디 있나? 전화에 대고, “나다, 엄마야!”하면 아이들은 즉시 알아듣는다. 아니, 첫 음성만 들어도 알아본다. 그런데, ‘하느님도 이렇게 인간을 빚어 만들어주시고 당신 영을 부어주신 인간이 당연히 첫마디 음성만 들어도 알아볼 줄 아시고 나다!”라고 말씀한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유식한 아들이라도 아빠 엄마를 몰라보는 자녀는 어리석은 자녀인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박사라도 자신을 빚어 만드신 하느님을 몰라본다면 그는 미련한 자요 어리석은 자이다.

그런데 사정은 어떤가? 하느님을 몰라보는 사람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을 거부하고 떠나간 인류를 찾아오신 것이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의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율법은 613개 조문으로서, 247조가 “000을 행하라는 적극적 계명이고, 365조문이 하지마라는 금령이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하느님의 명을 불순명하여 타락했으니 거룩함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구약은 신약을 준비하는 예비서요 신약의 그림자이다.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거룩함을 회복하라고 한시적으로 주신 법규이다. 하느님은 거룩함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안식일규정, 단식규정이나 손 씻는 예절 등을 마련하시어 지키도록 요구하셨다. 그런데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이 거룩함의 목적은 도외시한 채 수단을 목적화하여 백성들에게 강요하였다.

때가 차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갈라디아서4,4에서 말씀한다.

어떤 때인가?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여 율법을 백성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혹세무민하는 어두운 세상이 극에 달하였을 때, 하느님은 아드님을 보내시어 이를 바로잡으라고 사람이 되어 오시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신자들에게 영적인 신랑과 같은 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서 신랑을 맞는 잔치를 베푸는 것이 합당하다. 단식규정을 고집하며 신랑 앞에서 침울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제삿날 공부한다고 법석을 떤다는 속담이 있다.

잔칫날 단식한다고 법석을 떠는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목적과 수단을 구분 못하고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우매한 자들이다.

손씻는 예절을 규정한 것은 마음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안식일 규정은 하느님경배가 목적인 것이다.

단식은 절제와 희생으로 본성적인 탐욕을 억제하고 사욕편정을 다스리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들 율법규정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남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씻는 예절을 엄격히 주장하며 예수님일행을 트집잡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럽힌다고 지적하신다. 마음속에 있는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이라고 지적하신다.

그들이 외적인 율법준수로 거룩해졌느냐하면 오히려 형식화되어 내용 없는 악 표양만 보일 뿐이었다. 회칠한 무덤처럼, 속에는 썩은 송장이 들어있으면서도 겉은 회칠하여 번드르르해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5~7장에서 산상수훈에서 그리스도의 신권적 가르침을 선언하신다. “너희는 옛적에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패턴으로 입법자이신 예수님이 백성들을 향하여 권위 있는 말씀선포를 하신다.

예컨대, “살인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에게 성을 내지마라.’”

간음하지 마라라는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여인을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자는 이미 그 여인을 범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앙갚음 하지 마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여라라는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주어라.’”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한시적으로 주신 율법을 이제 새롭게 재해석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변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윤리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기에 그 수준에 맞게 하느님은 구약의 율법규정을 잠정적으로 주셨을 뿐이다.

어린아이에게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뺨마저 돌려대라라는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어린이들이 싸움이 왜 일어나는가?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니까 복수가 눈사람처럼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잠정적으로 동태복수법으로 같은 정도로만 복수하도록 요구하셨던 것이다. 그약시대는 도덕수준이 어린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 곧 신약시대가 오니 예수님을 통해서 그 율법의 본래의 의도를 이제 새롭게 밝혀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헌옷, 낡은 옷, 낡은 부대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들에게 새 옷과 새 포도주를 주시려하니 그들의 헌옷을 벗어버리고 낡은 부대를 버리고 새로운 부대를 마련하여야 새 포도주를 담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새 옷으로 오셨고, 새 포도주로 오셨기에, 저들의 낡은 사고방식, 낡은 가치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형식화된 신앙을 버리고 사랑의 새 계명을 실천하기 위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그리스도의 정배인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빚어 만드실 때 그렇게 성삼위께서 정성들여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외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의 희생을 치를 만큼 내 죄가 컸음을 뉘우치며 겟세마니에서 여전히 인류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아들의 희생을 지켜보시며 침묵 중에 네가 저들을 위해 대신 이 쓴 잔을 마셔야 되겠다!”고 호소하시는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도 헤아리며 성부께도 감사드리자.

우리 마음에 혹여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새 술을 담기에 부적합한 낡은 부대의 요소는 없는지 성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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