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09.09 18:45

2015-9-10-연중 23주 목(콜로3,12-17; 루가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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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 목(콜로3,12-17; 루가6,27-38)

 

요한1서에는 영적성장의 단계를 어린아이의 단계와 청년의 단계, 그리고 어른의 단계로 구분합니다.(1요한2,12-14참조) 어린 아기는 우유와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여야하지 딱딱한 음식을 소화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른이나 소화할 수 있는 영적으로 딱딱한 음식이라 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에게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도 실천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정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약의 사랑의 극치요 자비의 법칙이며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구약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죄인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 신약의 정의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대속제사를 통해 사랑의 극치를 이루어 율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자선과 자비를 베푸는 것과 용서를 베푸는 것은 일종의 투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보다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투자함이 보다 실속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가 갚지 못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고 하니까요. 그것도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게 채워주신다고 하니 이자율도 두둑하게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되갚음을 받기를 원하고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외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더 선호하여야 현명한 것입니다. 그는 하늘 아버지께 받기위해서 미리 투자하는 지혜로운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킹은 흑백차별폐지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할 때 백인들이 자기 집에 폭발물을 매설하고 가족들을 연행하여 고문하고 할 때, 오늘 복음인 원수 사랑과 용서대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밤새워 십자가의 예수님과 씨름하던 끝에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과감하게 뛰쳐나가 백인들을 향하여,“우리는 당신들을 무조건 용서합니다. 당신들이 여전히 핍박하여도 우리는 당신들을 무조건 용서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가지 꿈을 갖고 있습니다.(I have a dream!) 언젠가는 흑백차별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찬 꿈을 갖고 있습니다!” 관중가운데는 회를 거듭할수록 백인들이 늘어갔고 마지막 워싱톤 광장의 마지막연설장에는 백인이 절반을 차지하였고 오늘날 백인들에게 더욱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꿈은 이루어져 흑인대통령이 나오기까지 이르렀고, 자비는 심판과 차별을 이긴다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입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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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중에는 꿀 송이처럼 단 말씀도 있다. “너희 목마른 사람들아,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값없이 물을 사서 마셔라.”혹은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는 말씀은 삶에 지친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처럼 소태같이 쓰고 피하고 싶은 말씀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말씀처럼 들린다.

유교에서는 원수관계를 맺지 마라. 좁은 길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는 말씀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원수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인간본성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총을 전제하여서만 가능한 그리스도교 윤리야말로 최고의 고등 종교라할 것이다.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 언니와 동생이 함께 수감되어 있다가 언니가 하도 잔인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옥사하였다. 그 광경을 다 지켜본 동생은 몸서리치며 치를 떨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독일로 주님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러 곳곳을 순회강연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성당에서 강연을 마치고 언제나처럼 성당 중앙에 서서 청중들과 허그 인사를 하던 중 5m 전방에 낯익은 남자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몸이 떨리며 언니를 수용소에서 고문한 살인범임을 기억하게 된다. “주님, 저는 저 남자만큼은 용서할 수 없어요.” 하니 주님이 그래도 하여야한다” “전 못합니다!” “너는 손만 내밀어라. 내가 해주마!” 하시자, 그 남자가 어느덧 자기 앞에 와 우뚝 서있다. 이 여인은 눈을 지긋이 감고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남자도 이 여인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청하였다. 둘은 부둥켜 안고 서로 뜨거운 화해의 허그인사를 하였다.

인간 본성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 아닌 외인들도 그 정도는 다 한다. 그러나 원수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안라면 불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은 보기 싫은 사람 안보면 그만이라고 피해버린다. 그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자연종교는 성총이 없으므로 원수 사랑이 불가능하므로 그러한 덕목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은총에 의한 종교이므로 원수 사랑을 강조한다.

수도생활도 은총으로만 가능한 생활이다. 인간본성으로는 무료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생활이다. 성총의 도움이 있어야만 기쁘고 행복한 생활이다.

위로가 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한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이므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품성이 원래 있었다. 이 하느님의 품성이 인간본성의 아담의 원죄성에 눌려 힘을 못쓰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내 뜻인 아담의 본성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 안에 들어가도록 노력하면 하느님의 성품을 본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뜻은 비교하고 판단하는 마음이며 조금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섭섭마귀에 사로잡혀 편 가르고 미워하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을 거역한 원수인 인간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시면서, “저들을 용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원수사랑은 신자와 비신자의 분기점이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으리라.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으리라.”고 하셨다. 나 자신이 심판받을 것이 많으므로 내가 하느님께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하겠고, 내거 하느님께 용서받을 것이 많기에 나도 남을 용서할 수 밖에 없다. 용서가 내 뜻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나는 기도하여야만 한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 기도는 형식적인 피상적 기도로는 불가능하다.

내면의 마음 밭을 갈아엎을 만큼 내 실존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만큼 내면의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야 한다. 내 뜻을 갈아엎고 하느님 뜻이 나를 온전히 차지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본성이 하느님의 심성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도 내 마음 밭을 깊이깊이 갈아엎어 하느님의 마음 밭으로 바꿔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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