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4.08.01 11:40

8월 1일-성 알퐁소 데 리구오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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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성 알퐁소 데 리구오리 주교

 

성체조배와 성모마리아의 영광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성인으로 하느님은 18세기의 식어가는 신앙을 다시 불붙이는 역할을 한 큰 성인을 준비하셨다.

1696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신심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성모신심이 두터웠다. 학교성적도 우수하여 17세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일찍이 변호사가 되었다. 전도유망한 이 청년은 정치가가 되려는 꿈을 키우고 있었고 신앙생활도 열심하여 매일미사에 참여하며 빈민을 돌보며 병자를 방문하곤 하였다.

소송사건을 맡으면 유능한 솜씨를 발휘하여 거의 승소로 이끌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소송사건을 맡게 되어 준비하던 중 중요한 서류를 미비하여 그만 패소하고 말았다. 이를 대단히 수치스럽게 생각한 그는 법정을 나오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틀 동안 단식하며 울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설득을 하여 방문을 열기는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돌변하였다. 그는 변호사직을 버리고 신앙의 길로만 나아갈 결심을 한 것이다. “이제야 세상을 알겠구나. 법정이여,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하고 10년간의 변호사직을 포기하였다.

어느날 불치병환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세상을 버리고 나를 따라라하는 음성을 듣게 된다. 그는 그 말씀을 따라 수도원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아들의 결심을 반대하였고 결혼상대를 소개시켜주면서 집요하게 아들이 수도자가 되려는 뜻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당으로 달려가 기사의 상징인 칼을 바치며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기로 서약하였다. 신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며 고행을 했고 틈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곤 하였다. 1726년 사제서품을 받고 타고난 웅변술로 정성껏 준비한 강론이 신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사방에서 명강론을 들으려 몰려들었다. 그의 책은 어렵고 학문적이지만, 그의 강론은 무식한 할머니도 알아듣기 쉽게 감동적이었다.

그는 어떤 사제회에 입회하여 사방을 다니며 묵상회를 열었다. 성모상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도하고 날로 그의 명성을 높아만 갔다.

얼마 후 학자들과 유지들이 그에게 수도원을 설립할 것을 권유하였다. 아직도 사제직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눈물로 이별하고 독실한 동료들과 더불어 한적한 곳에 들어가 구속주회(Redemptorist)라는 이름으로 엄격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련은 그런 은혜 중에도 가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 간에 그 회의 목적과 활동범위와 기타 활동방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 결과 알퐁소를 야심가 혹은 고집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사업은 정신이상자의 꿈 같은 것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성인은 그런 비난에 대꾸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탁하고 말없이 참아갔다. 그는 세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설교와 저술 교수직으로 전교하는 카리스마를 수행하였다. 그는 일생을 통해 많은 설교를 하고 허다한 신심서와 깊은 신학서적을 저술하였다. 특히 그는 윤리신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저술을 남겼고 오늘날 윤리신학의 대부격이 되었다.

성인은 고령에 달하여 큰 시련을 맞게 된다. 그는 성녀 아가다 대성전의 주교로 임명받았으나, 얼마 안가서 사임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종신 총장으로 뽑혔다. 그는 본래 원하지 않았으나 교황의 특별한 임명이기에 수락하였다. 그가 노년기에 관절염에 눈과 귀가 멀어 육신고통이 심하였다. 눈이 안보여 모든 직무를 젊은 수도자에게 맡기고 있을 때 이를 기화로 그가 회칙을 마음대로 수정하여 인가를 받게 되었고 회원 간에 분열이 일어나자 교황청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이를 반대하는 나폴리 왕국내의 알퐁소를 지지하는 보수파 수도자들을 제명시켰다. 그중에 알퐁소 성인도 끼어있었다. 자기가 세운 수도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 소식은 성인의 마음을 몹시 괴롭혔다. 그의 신병은 선종할 때까지 극도로 심하였다. 178781일 그가 91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는 조종이 울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유해에 친구하였다.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존경심은 오히려 죽은 뒤에 더 커갔다. 전에 수도회를 탈퇴하였던 수도자들은 4년 뒤에 다시 귀환하여 본래의 회칙대로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고 1839년 시성되고 1871년 비오 9세 교황으로부터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이 성인은 고통을 많이 당하신 분이다. 은총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삶으로 증거한 분이다. 그 고통의 십자가를 오히려 은총의 기회로 삼고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던 참 신앙인이었다.

고통이 없었던 성인이 있었던가? 지금은 주님을 위해 고통과 십자가를 지는 때요, 희생과 보속으로 하느님나라에 공로 쌓는 시기이다. 영광은 하느님 나라에 가서 상급으로 받을 것이요, 현세에서는 바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게 고통이 닥친다면 원망할 것이 아니요, 남의 영광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다. 촌음을 아껴 부지런히 공로 쌓아 하느님나라 은행 예금통장에 부지런히 저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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