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3.07.28 20:38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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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일 성녀 마르타 기념

 

마르타와 마리아는 오빠 라자로와 더불어 베타니아에 살고 있던 부자였다. 그 집은 예수님이 즐겨 찾으시어 제자들과 집회를 갖곤 하던 넓은 집이었다.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유숙할만한 적당한 장소가 아직도 보존되어 있고 정원에 겨자나무가 있고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확인할 수 있다. 이집은 주님이 자주 전교길에 들르셨던 집이고 라자로는 주님의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만의 대변자처럼 선전하는 해방신학이론은 이점에서도 근거가 없다. 예수님은 만인의 보편적 구세주이시지 파벌을 조성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켜 혁명을 일으키려는 분이 아니다.

마르타라는 여인은 매우 바지런하고 바쁜 극성파 여인의 이미지를 풍긴다.

동생 마리아가 빗나가서 바로잡아주기 위해 애태우며 주님께 하소연하기를 여러번 시도해보지만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동생의 회두를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마침내 마리아가 주님을 뵙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데 어느날 주님이 그 집을 방문하신 것이다. 마르타는 여느때처럼 주님의 식사준비를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꼼짝 않고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만을 듣고 있다. 그러자 마르타는 심통이 나서 주님께 불평을 한다. 마리아에게 좀 자기를 거들어달라고 충고해 달라고 졸라댄다. 자기가 직접 말을 해도 될 터인데 공연히 주님을 괴롭힌다. 동생이 방황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 주님 발치에서 얌전히 말씀에 취해 듣고 있는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 극성파 여성인 마르타는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동생을 시샘한다. 전 같으면 오히려 기특해서 대견스럽게 여기고 칭찬해 줄 일인데 자기 혼자 음식준비에 분주하고 동생은 예수님 앞에서 말씀만 듣고 있으니 시기 질투가 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성소길에도 형제들 간에 새로 입회한 아우가 참으로 대견스럽고 기쁘게 느껴지지만, 일단 입회하여 함께 소임을 하다보면 비교가 되고 잘하는 것은 질투가 나고 못하는 것은 부에가 나고 나보다 일을 덜 하는 것 같아서 불평을 하곤 한다.

마르타의 열성과 신덕은 칭찬할만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인간의 마음은 불완전하기에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오빠 라자로가 죽게되자, 마르타가 주님께 곧 오셔서 살려달라고 청한 바 있으나,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에야 주님이 오신 것이다. 그러자 마르타는 또 뾰로통하여 주님께 불평을 터뜨린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마르타의 고용원도 아닌데 귀찮게 성화를 부린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마르타의 극성에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으신다. 오히려 무관심한 것보다는 더 없이 대견스러워하시며 마르타의 신덕을 키워주시도록 유도하신다.

마르타는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고 신앙고백을 하자, 주님은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확신시켜주신다.

그러나 마르타는 그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마지막날에 부활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께서 자주 당신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기에 막연하게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들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사뭇 다르다. 들어서 아는 신앙은 <<‘하더라!’신앙>>이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단언하신다. 즉 주님은 남들이 하는 일반적인 신앙고백이 아니라 더 나가서 마르타 자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 즉 주님께 대한 메시아성을 고백하도록 유도하신다. 메시아에 대한 믿음만이 영생의 길임을 깨우쳐주신다.

마지막 날에 부활하리라는 것만을 들어 알고 있다는 마르타의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너는 이것을 믿느냐?”고 신덕을 키워주신다. 그러자 마르타는 곧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유사한 완전한 신앙고백으로 깊여진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마르타의 이고백은 주님께서 죽은지 나흘되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동기가 되어 장차올 부활의 예표를 군중 앞에서 보여주게 된다.

마르타의 조바심과 총총걸음으로 주님 앞에서 애걸복걸하는 태도를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무관심하고 미지근하여 줄테면 주고 말테면 마시오하는식의 신앙태도에 비하면 휠씬 뜨거운 신앙자세가 아닌가?

주님은 마르타의 분주한 태도를 한 때 충고하시어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지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마리아의 몫을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충고하셨지만, 그의 열성과 주님께 대한 사랑은 높이 평가하신다. 우리의 미지근한 신앙에 성녀 마르타의 전구를 청하여 뜨거운 신앙으로 불을 당겨주시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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