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3.07.29 16:00

7월 31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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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교회는 생명과 사랑이 약동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이 거룩한 몸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길 때 하느님께서는 한 인물을 뽑아 이상 있는 부분을 치유하고 교회라는 몸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섭리하신다. 이미 12세기에 하느님은 당신 교회의 부유함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병폐를 시정코자 아씨시의 겸손한 영혼 프란치스코를 택해 허물어져가는 내 교회를 수축하라.”고 하는 사명을 주시어 교회 안에 시들어가는 청빈정신을 쇄신시킨 바 있다.

즉 우리의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말구유에 가난한 모습으로 오시고 그분의 생애는 머리 둘 곳조차 없이 가난한 삶이었고 임종 때에는 단칸방도 없이 십자가의 못 세 개에 의지하고 임종하신 분이시다.

이분을 닮는 것이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태도여야함을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 수도자들을 통해 온 인류에게 각성시켜주신 것이다.

또한 16세기에는 당시 사상적으로 휴머니즘의 병폐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인간중심의 해방사조에 물들게 되자 하느님께서는 기사도 출신의 용감한 이냐시오 성인을 뽑아 교회정신을 바로잡고자 하셨다.

즉 그 당시 교회는 마르틴 루터의 영향을 받아 교황권위에 반대하고 교리를 변질시키는 프로테스탄트물결이 침투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회내의 악한 사례는,

-. 겸직제-사제 자신이 사목지역에 해당하는 교구나 작은 마을에 살지 않으면서도 그 교구나 본당에서 모아진 금전이나 각자의 부수입만을 챙기는 사례가 있었고,

-. 네포티즘(Nepotism: 연고자 임명)이라 하여 사목에 대한 사명감도 일할 의욕도 없는 사람을 단지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교회의 직무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고,

-. 시모니아(Simonia)라하여 성직을 매매하는 악폐가 있었고,

-. 세속화의 경향도 강하여 도덕관습의 부패가 심했다.

인문주의를 내세워 이교도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 문학에 나타나는 인간상을 예찬하고 관능적 유혹에 쉽게 떨어지곤 하였다.

이렇게 타락한 세태가 널리 퍼져 있었던 중에 하느님은 안으로부터의 교회개혁에 착수하도록 예수의 영신적 군단이라는 뜻의 예수회를 이냐시오 데 로욜라를 통해 준비시켰다.

이냐시오는 성지탈환을 지향하는 십자군정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려했던 전통적인 기사도 정신을 이어받고 처음에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왕가에 장가들겠다는 세속적인 출세욕에 불탔으나, 후에 이 세상 왕에 대한 이런 충성심은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었고, 왕가에 장가드는 꿈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신명을 다하는 삶으로 실현되었다.

그의 이름은 불을 의미하는 라틴어 이니스(Ignis)"에서 유래하고 전쟁터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고 회심하여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 이냐시오라는 이름으로 바꿔 그리스도께 불같은 사랑을 태우는 일꾼이 되고자 하였다.

부상당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생애성인열전을 읽고 영적인 식별과 회심이 일기 시작하여 세상의 명예와 부귀영화는 일시적인 일장춘몽에 불과하고 공허만이 남는 것이지만, 많은 성인들처럼 곧 도미니코 성인이나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이 그리스도께 봉사할 때 영원한 기쁨과 같은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냐시오는 그리스도를 위해 내적인 싸움을 하는 병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자신 안에 일어났다. 그 때 그는 성모님께 정결서원을 바쳤고 그 덕분에 그는 일생동안 정욕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냐시오는 카탈루냐 지방 몽세라트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려 고해성사를 통해 많은 죄를 고백하고 무릎에 성자를 안고 있는 몽세라트의 검은 성모상 앞에서 밤새껏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 성모상의 발아래 기사로써 차고 있던 칼을 바치고 몸에 걸치고 있던 화려한 의복을 벗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신은 순례자와 같이 초라한 옷을 입고 만레사의 작은 동굴에 들어가 영적체험을 하게 된다. 엄격한 고행을 통해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탁발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로부터 특은을 받고 이를 토대로 영신수련을 저술한다.

프랑스 파리대학에 가 신학과 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동료 6인과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교황과 교도권에 절대순명을 약속하는 제 4의 특별서원을 바치기로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서원하고 예수회라는 이름으로 인가를 받아 교회 안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수도회는 1545~1563년까지 트리덴틴 공의회에서도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은 교회역사에서 그 때 그때 교회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한 인물을 선택하여 교회내의 위를 극복하기위한 독특한 카리스마를 주어 수도회를 창설하도록 섭리하신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시대의 교회를 진단해보자.

1. 교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 교회는 생명 없는 건물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이 약동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체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우리는 그 지체들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배이신 마리아에 비유하여 자모이신 성교회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교회는 그 구성원인 신자들의 사랑의 대상이요, 교회가 만일 위기에 처하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바쳐 수호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옛 교부들은 교회 안팎의 적들에 대해 호교론을 폈고, 생명을 바쳐 수호하였다. (안티오키의 이냐시오, 아타나시오, 유스티노, 치릴로, 암브로시오, 힐라리오 등) 그리스도는 교회를 자신과 동일시하였다.(사도 9장 참조)

그러므로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함부로 비판하는 신학자가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을 때 교황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도 없고 교도권에 대한 순명정신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교회를 비판하고 교황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태도는 프로테스탄트개혁파의 사조와 같은 입장이 아닌까? 오늘날 이점이 교회 내에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바오로 6세 교황도 이 시대에는 호교론자는 적고 비판주의자들만 많다.”고 한탄하셨다.

2. 성의 문란

과거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멸망하게 된 원인은 바로 성의 문란 때문이었다. 동성연애를 소도미아(Sodomia)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 시대를 과거 어느 시대보다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의 문란이 가져오는 범죄는 살인죄이다. 다윗성왕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범하고 나서 그 범죄사실을 은폐하려다가 우리야를 위험한 전쟁터에 일부러 내보내어 죽게 하였다. 오늘날도 성의 문란은 어린 생명을 살해하는 낙태죄를 유발한다.

3.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한다면 진복팔단의 삶이요, 다시 압축하면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삼덕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복음삼덕의 서열에 있어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정결이 최우선 순위에 오르게 된 것은 이 시대의 정결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며 아울러 정결의 가치가 가장 기본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12세기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교회의 청빈정신을 바로잡으시고, 16세기에 로욜라 데 이냐시오 성인으로 순명정신을 바로잡으셨다면 오늘날 정결덕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하시리라 짐작할 수 있다.

휴머니즘의 그릇된 사조에 떠밀려 하느님을 뒷전으로 밀쳐버리고 인간끼리 잘 살아보려는 현대사조는 마치 루카15장의 탕자가 아버지 품을 간섭이라 생각하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아버지를 떠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중심의 그릇된 사조를 바로잡고 하느님 중심의 세상으로 환원하는 새로운 수도회를 하느님은 반드시 안배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한 인간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회개과정과 그를 통해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개혁하기 위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살펴보았다. 하느님이 선택하신 성인과 인류의 선각자는 마치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같다.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은 당대의 군중들에게 오해받고 무시당한 채 핍박받기가 일쑤이다. 프란치스코와 이냐시오는 당대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했고 박해받았고 예수회도 한 때 해산명령까지 받은 바 있다.

한 시대가 지나야 정당한 인물평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역사의 현장에는 이런 선각자들에 대해 항상 두 가지 태도가 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는 군중과 행동파 대원들과 같은 무리들, 또 한 편으로는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을 동정하는 마리아와 막달레나, 요한 사도 및 예루살렘 부인들과 같은 무리들.

전자는 뜻도 모르고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이요, 후자는 겸손한 영혼들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영혼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뜻도 모르고 부화뇌동하는 군중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이 정덕의 문란을 쇄신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느님을 유일한 창조주로 흠숭하는 하느님 중심의 세상을 만드는 가치관을 심을 새로운 수도단체가 빛을 발하는 그날이 오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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