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02.20 20:05

6주간-금- 야고2,14-26; 마르8,34-9,1- 성시간

조회 수 78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주간-- 야고2,14-26; 마르8,34-9,1

 

그리스도교의 신비는 십자가의 신비이다.

어제 복음에 이어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수난예고에 뒤이어 십자가의 신비를 가르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고 하신다.

어제 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곧 수난을 예고하신 바 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안됩니다.”하고 우정어린 만류를 하자, 예수님은 그래, 생각해 주니 고맙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온통 파라독스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 복음에서도 여전하시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친절하게 내 제자가 되려고 한다니 고맙다. 네 짐을 내가 져줄 테니 너는 빈손으로 따라오너라.”고 격려와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1-자기를 버릴 것

2-제 십자가를 질 것

3-에수님을 따라올 것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되는 길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3가지 조건은 왜 필요한가?

1-자기를 버려야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 본성을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비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자기본성은 삼구 중에 육신에 해당한다.

2-다음으로 제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요구하신다. 내 십자가를 거절하고 남의 십자가를 저줄 수 없다. 사실 뭐니뭐니해도 내 십자가가 가장 가벼운 십자가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십자가를 안배하셨다. 이 진리는 믿어도 좋은 진리요, 정신건강에도 좋은 인생관이다. 그렇지 않을 때 남의 십자가만 두리번거리며 방황한다면 입에서 나오느니 불평과 한숨뿐이요,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

3- 다음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와 동행하여야함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수난을 예고하시고 그 길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그러면 그 길이 마냥 험난하기만 한 길인가?

아니다. “내 멍에는 달고 내짐은 가볍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이어서 예수님은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어제 베드로에게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고 책망하셨듯이 하느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구별되고 영원생명과 육신생명이 구별된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육신생명을 살리려는 사람은 영혼생명을 잃을 것이며 그리스도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육신생명을 희생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예수님은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고 하신다.

이 구절은 성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사로잡았던 말씀이다.

세상에는 영생의 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온 세상을 거머쥐려고 바둥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영혼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온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린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80평생의 잠시 지나가는 세상에 모래성을 쌓는 인간은 바닷물이 한번 밀어닥쳤다가 썰고 지나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4-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고 하신다.

신앙은 증거하여야 한다. 순교자라는 말은 증거자(martyr)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형리들 앞에서 피로써 증거한 증인들이 순교자들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단칼에 목을 잘리우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매순간 자아포기를 하며 자신과 싸우고 십자가상의 그분께 합당치 않은 애착을 느낄 때마다 자신에게 죽는 것보다 차라리 쉬운 일일 것이다.

이 모두는 본성적으로 쓴 맛 밖에 느끼지 못하고, 죽도록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에 성실하다면 영적으로 누리는 위로와 감미로움은 비할 데 없이 큰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하든지, 영생의 행복을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하여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큰 십자가를 주신다.

그러므로 가장 많이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가장 큰 은총으로 채워진다.

가장 훌륭한 지식은 고통을 달게 받을 줄 아는 것이며, 가장 큰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

 

------------------------------------

 

요셉회 첫서원미사강론(2014-2-21) 

1독서(창세12,1-4); 2독서(골로3,1-4); 복음(마르10,23-31)

 

수도생활은 천국의 삶을 미리 현세에서부터 앞당겨 사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생활은 삼중치명의 삶이다. 즉 인간의 기본적인 3가지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이기에.

복음삼덕이 그것이다.-

정결-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청빈으로 소유욕을 십자가에.

순명으로 자기의지 실현욕구를 십자가에.

수도생활은 비움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를 비우는 것은 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해서다.

원조 아담과 하와가 무절제한 탐욕으로 사욕편정에 흘러 죄를 범하고 죄는 죽음을 초래하였다.

수도자는 원조의 불순명을 배상하기 위해 3가지 기본욕망을 십자가에 못박고 현세에서는 죽고 천국에서 다시 태어나는 삶이다.

불교는 비움 자체를 목적으로 하나, 그리스도교의 비움은 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불완전한 것을 비우고 완전한 것으로 채우기 위함이요, 세상적인 허망한 것을 비우고 영원불변하는 천국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수도생활은 천국의 삶을 미리 앞당겨 실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원은 천국분원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이 주인이시고 지상 것에 대한 소유권은 누구에게도 없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지상 것에 미련을 갖는다면 미련한 행위이다.

수도자는 하느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사는 삶이다. 하느님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나 자신을 원하신다. 그분은 나의 신랑이기에 신부인 나를 원하신다. 정배의 관계이므로. 신부가 만일 일에만 관심을 쏟고 신랑에게 무관심한다면 신랑인 그리스도는 섭섭해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감실에서 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감실 앞에 찾아와도 신랑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기 생각에 골돌하여 분심하다 나간다면 신랑은 얼마나 서운해 하실까?

신랑인 주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일도 같이하고 싶어 하시고, 식사도 같이 하고 싶어 하시고, 걸음도 같이 걷고 싶어 하시고....

내가 주님과 함께 일을 하면 주님이 하신 일이 된다. 주님의 싸인이 들어가 하늘 아버지께 봉헌된다. 얼마나 영예로운 일의 성과인가?

수도자는 복 덩어리이다. 하느님이 창세기 12장에서 너는 복이다. 너는 복의 통로다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 수도자들에게 해당한다. 내가 성소를 받음으로써 내 가족이 모두 복을 받게 된다.

골로사이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저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라고 권면한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곤색 수도복은 내가 세상에 대해 죽었음을 의미하는 옷이요, 머리에 쓴 수건은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 세상죄인들을 대신하여 울음 우는 눈물수건이다.

복음에서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하니 예수님은 나 때문에 혹은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100배의 상급을 받을 것이요,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고 하신다. 100배의 상급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부탁하신다. “너는 나만을 사랑하여라.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져 주겠다.”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자!

세상은 오색현란한 옷을 줄줄이 걸어놓고 아침마다 날씨와 온도에 따라 무슨 옷을 입어야할지 고민한다. 우리는 그런 고민 안해도 되니 감사하자. 단색의 단조로운 옷 한 벌로 부족을 모르고 사는 우리 삶은 얼마나 행복하며, 단벌옷이라고 비웃는 사람없고 오히려 현란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하니, 이 모든 것이 우리 신랑인 예수님의 후광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던 시절에도 세상에는 굶는 사람이 있었어도 수도자는 굶는 일이 없었으니 이 또한 모든 부의 원천인 예수님을 신랑으로 둔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또 수도자는 국제신사다. 까다로운 세관도 수도복이면 무사통과할만큼 신용등급 1등이다. 로마와 인도까지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으니 왼만한 회사사장 부럽지 않다. 본당에 가면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모두 내 부모요 자매요 형제들이다. 이것이 100배의 상급이다.

오늘 주님은 두 분의 수도자에게 첫 서원의 예식을 교회 앞에서 거행하도록 허락하셨다. 유기서원은 종신서원을 목표로 한 의지의 표명이요 본질적으로는 같다. 유기서원기간만 채우고 수도생활을 졸업하겠다고 마음 먹고 서원하는 사람은 없다. 주님과의 영적혼배가 어찌 일정기간만의 약속일 수 있겠는가? 변치않는 결심으로 태양이 도는데 따라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주님 따라 돌아가는 주바라기 수도자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자. 주님은 오늘 간절하게 우리에게 부탁하신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너를 영원 전부터 나의 정배로 선택하였다. 나만을 사랑해다오.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책임질께.”

, 우리 모두 응답합시다. “제가 주님만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제가 당신이 주신 그 사랑으로 당신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Who's Stephanus

profi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1983 주일, (대)축일 강론 8-14-막시밀리안 꼴베 신부-기념 Stephanus 2015.08.13
198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주간-월-야고3,13-18; 마르9,14-29 Stephanus 2014.02.23
1981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주간 화-야고4,1-10; 마르9,33-37 Stephanus 2014.02.24
1980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13일-성헨리코 성왕 기념 Stephanus 2013.07.11
1979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13일-성헨리코 성왕 기념 Stephanus 2015.07.13
1978 주일, (대)축일 강론 7월-은총의 어머니, 중개자이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Stephanus 2016.07.03
1977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6일(마리아 고레띠 동정순교자(1890-1902) Stephanus 2013.07.03
197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 6일(마리아 고레띠 동정순교자(1890-1902) Stephanus 2015.07.05
1975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Stephanus 2014.07.04
1974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Stephanus 2015.07.04
197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 4일 -첫 토요일-성모신심미사--은총의 어머니요 중개자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Stephanus 2015.07.03
1972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3일-성토마스 사도축일(에페2,19-22; 요한20,24-29) Stephanus 2015.07.02
1971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3일-성토마스 사도축일 Stephanus 2013.07.02
1970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31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Stephanus 2013.07.29
1969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31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Stephanus 2014.07.30
1968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 Stephanus 2013.07.28
196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 Stephanus 2014.07.28
1966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 Stephanus 2015.07.28
1965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7월 26일-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 Stephanus 2013.07.25
1964 주일, (대)축일 강론 7월 26일-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 Stephanus 2014.07.25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18 Next
/ 11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