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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분위기가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느껴지는데 오늘 사순 2주일의 복음은 속죄와 회개의 특성에 잘 맞지 않아 보이는 주님의 영광과 권능의 장면을 드러내주니 좀 뜻밖의 일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여정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설악산의 소청봉에 올라가 잠시 한숨 돌리며 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벌써 구름이 손에 잡히듯 가까이 느껴지고 때로 낮은 구름은 발 아래에 펼쳐지고 신선이 다 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황홀경에서 오늘 주님께서 눈부신 옷을 입고 영광에 싸여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나타나신 모습을 보고 베드로는 엉겁결에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아에게 드리겠습니다.”하고 황홀해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연상된다. 그런데 오늘 영광스런 변모의 참뜻은 무엇일까? 영광 중에 나타나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아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무엇이던가? “그들은 예수께서 머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죽음’으로 번역된 말의 희랍어 원문은 “Exodos”(출애굽, 대탈출)이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해방과 약속된 땅을 향한 출애굽의 모든 주제가 여기에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사순절의 의미도 죄와 죽음의 영어(囹圄)(노예)상태에서 부활이란 참된 “Exodos”(대탈출)를 시도하는 기간이란 점에서 일치한다. 즉 이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참뜻은 에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백성의 고달픈 여정이나 또는 당신의 희생을 끝마치게 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찬 여정을 중첩적으로 이해시키면서 우리도 죄의 종살이에서 참된 회개로서 진정한 해방을 맞으라는 사순절의 본래의분위기로 우리를 더 한층 고조시켜 주고 잇다. 사실상 루가복음사가는 이 예수님의 변모 이야기 다음에 곧 이어서 예수님께서 성도 예루살렘을 향해 오르시는 마지막 장도에 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루가 9,51) 중청봉을 거쳐 정상인 대청봉을 향해 떠나는 우리 등산 코스처럼 예수님의 파스카 여정 중 한 단계에서 파스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게 해주는 장면이다. 피곤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그 장면을 목격한 세 사도들의 눈에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doxa)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 드리워진 ‘구름’은 특별한 신적 현존을 상기시킨다. 계약의 방주(출애굽 40,35), 솔로몬의 성전(1열왕 8,10) 위에 떠 있던 구름과 같이 이는 결국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향해 행진하는 성도 예루살렘을 향한 장도에 많은 수난과 수모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분 위에 늘 변함없이 성부께서 “이는 내가 택한 아들”(35절0)이라는 신원확인이 미리부터 마치 도장찍어 확인시키듯 오늘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성부께 대한 신뢰는 갈바리아 십자가상에서도 변함없으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고 하셨지 않았는가! 사실 우리 신앙여정은 하느님과의 약속의 땅 영원한 행복의 나라에 이르기 위한 등산과 같은 것이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땅을 선물하시기로 약속하신다. 그 약속과 계약의 표지로 아브라함에게 소와 숫양의 제물을 쪼개어 맞추어 놓게 하고 하느님께서 연기 뿜는 가마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의 형상으로 그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시는 일종의 계약체결의식을 거행하신다. 말하자면 “세하늘과 새땅”을 약속하시는 하느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계약체결의 엄숙한 광경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세 제자에게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권고하시면서 과거의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상기시키시고 “새하늘과 새땅” 즉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에는 “Exodos”의 고난과 시련이 따르겠지만 이를 중재하는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십자가를 외면한채 사순절의 참뜻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필립비 인들에게 빠스카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면서,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는 마지막 변모의 기다림 속에 매일의 십자가를 달게 참아 지고 가야 한다는 격려의 말씀이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아직 약속된 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순례여정에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 그 약속된 땅의 찬란한 빛을 받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중청봉에 오르면 벌써 발아래 구름이 감돌고 신선이 다된 느낌으로 여기까지 오르노라고 흐른 땀방울도 잊은 채 환희와 감격에 차듯이, 우리네 인생 길은 그저 마냥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변모로서 보여 주신다. 우리 신앙인의 모든 생활은 사순절의 기다림과 앞당겨진 파스카의 기쁨이 신비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중청봉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 우리 앞에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에 덧붙여진 사회경제적인 십자가가 금년에도 우리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사순절의 고통과 시련이 크면 클수록 부활의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다같이 힘과 용기를 냅시다! 독자 여러분,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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