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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랑과 우리의 응답 사순절의 막바지에 이르러 하느님의 사랑이 최고조로 드러나는 시기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도 극도의 낮춤이신데 이시기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당신을 배반한 인류를 위해 수난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준비를 갖추신다. 돌아오는 주일은 성지주일이고 그 주간이 1년 중 가장 거룩한 주간인 성주간이다. 십자가사건은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점이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무감각하다면 목석이요, 감각이 없는 무생물이라 할만하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내 대신으로 십자가에 참혹하게 달려 계신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서도 감각이 없다면 이보다 더 무감각한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 중에 계신 주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이 사랑을 느끼기에는 하느님의 성총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하느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 우리 인간은 그 분께 방 한 칸 드리기에도 인색하여 그 분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33년간 우리 인간과 벗하여 사귀고자 좋은 말씀 좋은 모범으로 설득해 보았지만 인간은 끝내 그 분을 따돌려 왕따시키고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에게라도 임종 때에는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단칸방이 주어지는데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그 임종자리가 어디였는가? 십자가의 못 세 개에 의지하여 임종을 맞이하여야 했지 않았는가?. 모질도다, 인간이여 어찌 하느님께 그렇게도 인색하였단 말인가? 얼마나 배은망덕한 처사이며 명오가 어두운 우리 인간의 소행인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가끔 나의 잘못의 결과를 엉뚱하게 하느님께 전가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에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마저도 스승 예수님의 수난 전날 밤에는 부족한 인간의 나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밤의 베드로의 무엇보다 큰 죄는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부끄러워 한 죄였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자임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모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당신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주장하셨고 끝까지 항구하게 주님과 동행하셨다. 주님이 가시는 곳이면 골고타 십자가 아래까지도 따라가 당신 아들과 함께 초와 쓸개를 맛보고, 십자가상에서 괴로워하고 주님과 같이 숨을 거두리라고 용기있게 주님곁을 끝까지 따르셨다. 우리도 이 십자가길을 힘차게 따라가신 성모님과 같이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영광된 자리뿐만 아니라 주님이 편태맞아 쓰러진 곳에서도, 모욕채찍으로 낯을 들 수 없는 곳에서도, 십자가에서 죽는 고통의 숨막히는 순간에도, 그분 곁을 떠나지 않으며 이분이 변함 없는 나의 주님임을 주장하자. 그러할 때 주님도 장차 당신 아버지 앞에 서게 될 이 가련한 나를 위해 변호하여 주실 것이다. 사순절을 정리하면서 그 동안도 우리는 하느님의 이 큰 사랑을 모르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성찰하자.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무상으로 선물받은 매일 24시간의 시간들을 무엇에 사용했는지 성찰하자. 어차피 언젠가는 결산서를 그 분 앞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중간평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유년시절, 청년시절,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과거의 나날들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고 섬기도록 나에게 주신 신체의 능력과 감각과 정신능력을 나는 무엇에 사용하였는지? 나의 오관은 하느님이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고 내 육신쾌락을 위해 남용하지 않았는지? 하느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내게 주신 성사의 은혜를 감사하며 소중하게 성총 낭비 없이 사용하였는지? 건강과 체력 재능 재산 기타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기회를 하느님을 위해 적절히 사용하였는지? 등등을 성찰하며 내 인생의 중간평가를 내려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출생에는 서열이 있어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5막짜리 인생극이 때로는 3막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총결산의 날, 하느님께서 내게 향하여, “이제는 네 차례다. 네 결산서를 보고하라. 네게 맡겨준 모든 탈란트의 시말서를 제출하여라.”라고 하실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 미리 점검하자는 것이다. 일생의 모든 시간, 일분 일초도 빼놓지 않고 엄격하고도 정확하게 보고 드려야 할 그날에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다. 주님은 “네가 내 이름으로 수고하는 나의 제자에게 냉수 한 컵 떠준 것까지도 낱낱이 셈하여 갚아줄 것이다.”고 약속하셨으니 그날의 결산이 얼마나 정확할 것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성찰을 해보건대 주님의 결산 날을 두려움 없이 자신만만하게 나설 수 있는 자 우리 중에 누가 있을까? 그러니 이제 내 죄의 무거움을 통회하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구할 것이다. 하느님의 독생 성자께서 십자가상에 흘리신 귀한 피는 내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거룩한 몸에 편태와 무수한 매를 맞으심은 또한 내 탓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가 어찌 나와 무관한 것인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마음에 새기고 내게 주어진 나의 십자가를 저항 없이 받아들였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였다면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해왔든 그것은 시간낭비일뿐임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하늘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상빛만이 찬란히 빛나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내고 기적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십자가와는 무관한 자기 공로를 자랑하는 자에게 주님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를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하실 것이다. 원조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세의 귀양살이의 처참함을 실감하였지만, 아담의 후예들인 우리는 이 찬류세상에서 태어나 낙원의 참행복을 맛보지 못했음으로 이것에 대한 감각이 없어 착각에 빠져 될 수만 있으면 이승에 언제까지나 행복을 누리며 살려 하고 이 귀양살이를 영원한 거처로 착각하고 감옥을 제집으로 착각하고 있다. 참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현세의 가련함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그 동안 헛된것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송 하였음을 뉘우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주님이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혹자는 하느님께서 정의와 공평의 하느님이시라면 이럴 수가 있느냐?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불평하곤 한다. 왜냐하면 악을 일삼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판을 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고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악인들에게 이용당하고 억울하게 고통 당하고 불행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으니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질문처럼 들린다. 세상에는 너무도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세만이 있다면 참으로 하느님께 항의라도 할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현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보다 훨씬 중요한 내세 하느님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세에서 완전히 실현된다. 아니 오히려 현세에서 갚음을 받는 것보다 내세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현세는 길어야 70년 혹은 80년의 인생이지만 내세는 영원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내세에서 나의 공적에 대해 이자까지 후히 계산해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즉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게 채워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우리의 희생과 봉사에 대해 현세에서 갚음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주님은 “왼손이 한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권면하신다. 왜냐하면 현세에서 보상을 받게 되면 “너희는 세상에서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으니 천국에서 내가 줄 상이 없다.”고 주님은 대답하신다. 우리는 이 성시간을 통해 십자가의 신비에 나타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신비 안에 머물러 그분의 십자가는 곧 내가 져야 할 십자가임을 되새기고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에 달려계신 주님께 고개 숙여 감사하자. 또한 십자가의 못과 가시관, 늑방을 찌른 창과 온몸에 얼룩진 상처는 나의 죄로 촉범한 것임을 인정하고 성 베드로의 닭이 울 때 흘렸던 눈물과 함께 우리의 통회의 눈물로 우리 죄로 더럽혀진 주님 시신을 닦아 드리도록 하자. 인생에는 수많은 시험이 있다. 다른 모든 시험은 낙방해도 재시험이 있지만, 주님 앞에 가서 보게 될 시험은 딱 한번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한번의 기회를 놓치면 그만이다.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생일대의 최종시험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진복8단과 사랑의 새 계명의 채점표에 맞추어 매일 매일의 삶을 사전 점검하는 습관을 드리자. 주님은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외치셨다. 무엇에 대한 갈증인가? 므리바의 바윗물을 샘솟게 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한 번 마시게 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하신 주님께서 왜 ‘목마르다’고 하셨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베들레헴 말 구유간에 태어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고 나자렛의 30년간을 당신이 손수 빚어 만드신 조물 마리아와 요셉을 엄마 아빠라 부르면서 숨은 생활을 기꺼이 감내하시고 십자가의 단말마의 고통도 거절하지 않도록 했던 그 원동력은 바로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 때문이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네 영혼을 내게 다오” 라고 외치신다.그런데 우리의 무관심과 무딘 감정과 우리가 무심코 범하는 죄는 곧 그 분께 초와 쓸개를 드릴뿐이다. 주님께 우리 영혼을 드리는 길은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가 당하는 고독처럼 주님 때문에 뭇 백성들의 조소와 모욕을 당하며 사면초가의 신세가 되더라도 변치 않는 일편단심의 신앙이요, 또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하는 삶, 즉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사명을 제가 다 이루었습니다.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드립니다.”라는 철저한 아버지와의 일치된 삶을 통해서 일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겨드릴 때 우리 영혼은 비록 가난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이 몸이 주님 자비의 품에 안길 때 주홍 같은 나의 죄 눈같이 희어지고 진흙 같은 이 마음이 수정궁처럼 빛날 것이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Sia lodato Gesù Cristo, sempre sia lod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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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 주님 공현 대축일(이사60,1-6; 에페3,2-6; 마태2,1-1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1561 연중 2주일(이사 62,1-5; 고린1 12,4-11; 요한 2,1-1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1560 연중 3주일(루가 1,1-4; 4,14-21) - 하느님의 성령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1559 연중 4주일(사회복지주일)(예레 1,4-19; 1고린 12,31-13,13; 루가 4,21-30) - 사랑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1558 첫토요일 신심미사 - 2월(평화의 모후 복되신 마리아(이사 9,1-6; 루가 1,26-38)........ with english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0
1557 주님의 봉헌 축일(2월2일)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56 주님의 세례축일(이사42,1-7; 루가3,15-2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55 설 명절(舊正: 민수 6,22-27; 야고보 4,13-15; 루가 12,35-40)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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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 연중6주일(예레 17,5-8; 1고린 15,12-20; 루가6,17. 20-26)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52 C 해 연중 7주일(1사무 26,2-23; 1고린 15,45-49; 루가 6, 27-3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51 연중 8주일(집회 27,4-7; 1고린 15,54-58; 루가 6,39-45)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50 홀수해 3월 사순 절 첫 목요일 및 금요일 전교회 미사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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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7 C해 사순 2주일(창세 15,5-18; 필립 3,17-4,1; 루가 9,28-36)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46 C해 사순 3주일(출애 3,1-15; 1고린 10, 1-12; 루가 13,1-9)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545 C해 사순 4주일(여호수아 5,9-12; 2고린 5,17-21; 루가 15,1-3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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