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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오늘, 가난한 사람들과 지금 굶주린 사람들, 우는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반대로 부요한 사람들과 배부른 사람들과 지금 웃는 사람들, 칭찬받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선언하신다. 가난과 굶주림, 슬픔과 박해가 행복의 조건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난은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깨우쳐준다. 잠시 지나가는 세상의 나그네로 하느님께 예속된 힘없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해주는 스승이다. 수고하고 땀흘린 대가로 벌어온 한 끼니의 밥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비로소 내가 이렇게 살고있음이 오직 하느님의 은덕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또 밥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이들의 노고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요한 자, 배부른 자는 내가 벌어 내가 배부르게 먹는데 왼 간섭이냐 하며 이 세상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조물주 하느님에게 의탁하려 하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을 영원한 도성으로 착각하고 모래성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인생의 파도가 밀려오면 애써 쌓은 부와 쾌락의 탑은 병고와 죽음 앞에서 허무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름하여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던가. 나른한 봄볕에 잠시 졸음 중에 꾼 행복한 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찬에게는 참된 꿈이 있다. 이 꿈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진짜 행복이다. 그런데 이 천국꿈은 일장춘몽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헛된 꿈을 꾸는 입장에서 보면 진짜 행복이 헛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원조 아담이후 이 헛된 꿈 일장춘몽에 젖어 속고 또 속아 왔다. 부요와 현세적 쾌락이 참행복인 줄 속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늘 참행복의 선언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천국의 꿈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가 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한데 이 증인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천국의 참된 행복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선언한 바대로라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도 하느님은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라고 선언하신다. 현세의 행복이란 벌판에 자라난 덤불과 같다고 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싱싱하게 잎이 무성하고 행복의 열매를 주렁주렁 열게 되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현세적 일장춘몽에 도취되어 참행복의 꿈 즉 천국 영원한 진짜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가난과 굶주림, 슬픔, 모욕은 이 세상이 한 바탕 춘몽임을 깨닫게 해주는 자극제로서 우리 시야를 영원세상 천국을 향하게 해준다. 사탄이 아담 할아버지에게 놓아준 일장춘몽의 마취약이 오늘도 우리 이웃들을 헛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오늘 주님의 행복선언의 주사로 모두 이 허황된 봄꿈에서 깨어나자. 예수님은 오늘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시어 강론을 하시면서 천상의 참된 행복의 신비의 바구니를 열어 하나하나 펼쳐주신다. 일장춘몽에서 깨어나 천국 진짜꿈을 시작하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서 설교하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즉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향해 올라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신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이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내려가야 한다. 가난은 더 이상 단순한 빈곤의 행위가 아니라, 은총에 대한 인간들의 개방을 의미하며, 가난한 이는 하느님께 자신을 열고 구하며 청하는 자이다. 가난한 이는 하느님나라의 법을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며, 모든 형태의 가난한 이들, 지상에서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모두가 하느님의 축복의 대상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메시지는 훨씬 폭넓게 메아리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나라를 받아들임으로써 사랑과 봉사를 통해 형제들의 품위를 깨닫고 들어 높여줌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이끌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형제들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진정 가난한 자들이 되어야하며, 그리하여 다 함께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써 육체적 정신적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 얻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제 2독서에서는 역사를 통해 가장 심한 박해를 당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부께로부터 부활의 상급을 받으심으로서 진복팔단의 이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즉 사도 바울로가 증명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기”(1고린 15,20) 때문에 지금 가난한자, 우는자, 슬픔을 안고 있는자, 박해를 받는 자는 하느님으로부터 행복을 보장받은 자임을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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