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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의 핵심내용을 제시하신다.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구약의 온갖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신약의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체가 이 두 가지 사랑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단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학자의 떠보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시고 가장 본질적인 하느님 사랑을 첫째 계명으로 지적하시면서 모세의 율법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신명6,4-5)는 계명을 그대로 수용하시면서 그리스도 자신의 생활을 통해 몸소 성부께 대한 철저한 순명행위로 실천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증거하셨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거행위를 오늘 영성체송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시고, 하느님밭의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도다"(에페5,2)고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사랑의 첫째계명을 천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계명을 내려주신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은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심으로 두 계명을 하나로 묶어주신다. 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다음의 3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잇다. 첫째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의 개념이 단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확대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전자는 후자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만일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을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상 대로 지으셨고 인간을 위하여 당신외아들까지 희생제물로 삼으시기까지 마다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해주셨으니 우리가 하느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웃을 또한 사랑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셋째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은 보통 우리 이웃형제들과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4,20-21)라고. 따라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형식은 두 가지이지만 실질은 하나임을 깨우쳐준다. 오늘 1독서에서 이미 하느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외국인, 고아, 과부)에 대한 사랑을 강력한 어조로 강조하시며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을 이웃사랑으로 표현할 것을 역설하신다. 그러나 여기서 혼동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 사랑의 질서에 있어서 이웃사랑을 앞세워 하느님 사랑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웃사랑이 하느님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하느님사랑이 이웃사랑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음을 인간화하여 이웃사랑을 빙자하여 하느님사랑을 소홀히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유다스가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위를 지켜보다가 "이향유를 팔았다면 300데나리온을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라고 투덜거렸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이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신다(요한12,3-8). 하느님 사랑을 앞세워 이웃사랑을 소홀히 하는 비뚤어진 경건주의도 경계해야하지만 이웃사랑을 앞세워 하느님사랑을 등한시하거나 복음을 변질시키는 유다스적인 본말이 전도된 사랑의 왜곡행위도 경계해야한다. 사랑의 질서와 조화된 사랑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사랑의 절정에서 배워야 한다. 십자가의 세로대는 그리스도의 성부께 대한 수직적 사랑의 표현이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위해 바친 사랑의 증거행위요, 십자가의 가로대는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을 파견하시어 희생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한 그 지극한 사랑의 표현으로 양팔을 벌려 인류를 형제로 당신 품에 안으시는 사랑의 절정이다. 그리스도의 천주사랑과 이웃사랑의 질서와 조화를 통한 일치된 사랑만이 하느님께 대한 수직적 사랑과 이웃에 대한 수평적 사랑을 십자가 안에 하나로 묶어준다.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이 균형있게 만날 때만이 십자가(+)효과(플러스효과) 즉 생산적인 증식효과를 낼 수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을 변혁시키고 사랑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플러스)효과를 가는 곳마다 일으켜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랑의 학교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천주사랑과 이웃사랑을 일치시키는 비법을 배워 세상 안에 사랑실천의 누룩이 되어 세상을 하느님 사랑으로 부풀어오르게 하자. 복음나누기 주제 우리는 가끔 하느님사랑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큼 열심한이들 중에 이웃사랑에 대해 소홀한 경우를 보게된다. 사랑실천의 경험담을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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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12월 23일-루카1,57-66 Stephanus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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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12월 24일-루카1,67-79 Stephanus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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