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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4주일(여호수아 5,9-12; 2고린 5,17-21; 루가 15,1-32)

 

 

오늘 복음은 복음 중의 복음이요, 신약성서의 진수(眞髓)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부성적 사랑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이 비유의 중심은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용서를 표현하기에 앞서 죄인의 생활과 회개하는 과정을 뛰어난 심리묘사와 감동적인 표현으로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하느님이요 탕자는 죄인 또는 이방인이요, 형은 바리사이파 또는 유다인을 의미한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재산을 청구했다. 자기가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상속분은 아버지의 사후에나 분배되는 것이요, 아버지 생존시에는 아버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들은 당당하게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아버지께 요구한다. 아버지는 그가 장차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면서도 강압적으로 말리지 않으시고 아들이 청하는대로 재산을 나누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이토록 존중하시므로 이를 하느님의 무관심이나 방관으로 볼 것이 아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났다. 악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먼 고장으로 떠난 이유는 아버지 품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했고 아버지 슬하에 있었던 것을 간섭받는 부자유한 상태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품을 떠난 아들의 삶은 곧 무절제와 방종, 방탕한 생활로 이어진다. 그 기간은 오래 가지 못했고 곧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다. 돈이 있을 때는 그 많던 친구도 이제 돈이 떨어지니까 다 떠났고 이제는 빈털털이로 먹을 것조차 떨어져 하는 수 없이 돼지를 치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만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돼지는 가장 더러운 짐승이요, 돼지 치는 직업은 인간의 품위와 권위의 추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은 아들은 이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아들은 자기가 어떤 요구도 할 수 없도록 모든 권리를 상실했고 다만 품삯을 받는 천한 일꾼으로라도 받아주시기를 아버지의 자비에 청해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기가 아무 힘도 없다는 것을 속속들이 깊이 체험해 본 사람은 은총의 진가를 알게 된다. 그 때에야 인간은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간청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품군의 대우조차 지금의 그로서는 부러운 것이다. 악인의 집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의 집 문간에 있기 소원이로소이다”(시84,10)하는 심정이었다.

아들은 드디어 아버지 집을 향해 돌아간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무얼 하고 게실까? 집을 떠난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버지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문밖을 서성거리며 때로는 옥상에 올라가 몇 번이나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마침내 어느 날 초췌한 모습을 한 아들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자신의 품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아들을 만난 감동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고 아버지께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의 품위도 남의 눈치도 아랑곳 하지 않으신다. 논리나 당위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심연에서 끌어 오르는 열정의 표현이다. 그 무슨 힘도 막을 수 없는 부성적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로 작정한 대로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차마 저를 품군으로라도 써 주십시오라는 말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런 말은 아버지의 마음에 오히려 상처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고 당부하신다.

제일 좋은 옷으로 아들의 잃었던 품위를 되찾아 주고 가락지로 아들의 잃었던 신원을 회복시켜주고,

새신을 신겨 줌으로써 종의 신세로 추락되었던 아들을 자유인으로 회복시켜주어 그 동안의 더럽혀졌던 행실의 발자취를 정화시켜주신다.

이어서, 이 기쁨은 양 한 마리의 잔치로 부족하다. 큰 잔치에 쓰려고 준비해둔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서두르는 아버지는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고 하시며 성대한 잔치를 베푸신다.

한 편 밭에 나가 있던 큰 아들은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설득해 보지만 그는 아버지의 처사를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기조차 거부하고 그 아이라고 부르면서 아버지가 덮어 두었던 동생의 방탕생활의 베일을 잔인하게 폭로하면서 창녀들한테 빠져서 ... 아버지 재산을 다 날려버린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며 불평한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고 하시며 큰 아들의 손상될 수 없는 위치를 설명하신다.

즉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행복을 누려왔고 아버지의 남은 재산은 곧 그의 몫이니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큰아들의 이 불평은 실상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대한 몰이해요, 아들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품꾼으로 살아왔다는 것이고,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누려온 행복을 실감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서 작은 아들과 같은 우리 인간의 죄악의 형태와 큰아들과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충실한 자녀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범하기 쉬운 옹졸함과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가이 없이 깊고 넓은 사랑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로써 인간역사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장식되고 죄가 오히려 복된 탓이 되고 죄까지도 인간구원과 하느님의 영광에 도움이 된다는 신비로 인도된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탕자와 같이 죄로 인해 하느님을 등졌던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요청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류와 화해하시기 위해 화해의 중재자 그리스도를 파견하셨다.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무죄선언을 받게 되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아들로서의 품위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당한 수모를 벗겨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곧 우리 죄인이 죄의 종살이에서 실추된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회복시켜주신 오늘 복음의 아버지의 태도이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를 멀리 떠났던 죄의 종살이에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회개가 필요하고, 맏아들처럼 외적으로 아버지께 충성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아들에 대한 후한 처사에 불평하며 반항하고 아버지와 동생을 모두 거부하는 태도에서부터 아버지의 관대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와 같이 환영하는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지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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