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3.10.07 09:50

2013-10-9- 27주 수(루가 11, 1-4)

조회 수 10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홀수해 27주 수(루가 11, 1-4)

 

오늘 복음에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주님의 제자들의 청에 주님은 가장 모범적이요 완전한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 하늘이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새로 탄생한 인간의 탄성이 아버지!”라는 호칭이다. 인간은 세례로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을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또한 이 지위는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는 지위이기도 하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하게 되려면 우리자신의 계속적인 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하느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 되어라.”(레위19,2) 하시며 성령을 통해 성화은총을 주신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지상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포기하고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고 천상왕국을 동경함으로써 하느님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이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는 사탄의 방해를 막아내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도 게쎄마니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였다. 또한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오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고 하셨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길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십자가를 진다함은 바로 내 뜻을 버리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하느님의 뜻이 내 뜻의 무덤위에 부활하는 것이다.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양식에는 육적인 양식과 영적인 양식이 있다. 영적인 양식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빵이요 영생의 묘약이다. 육적인 양식은 매일 그날의 양식만으로 충분하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야한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재물은 사람의 정신을 부추기어 눈멀게 하고 악에 떨어지게 한다. 하느님은 탐욕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간다면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라고 반문하신다.

주님께서는 착한 사람을 굶어죽게 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말라.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은 곁들여 주실 것이다.”(마태6,33)고 하셨다.

-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죄를 용서하시고 -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빚진 자들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힘으론느 도저히 갚을 수 없는 10,000 달란트라는 거액의 빚을 진 우리는 내 이웃의 100 데나리온이라는 작은 빚을 탕감해주어야 한다.

이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니 이러한 거래에 인색한 사람은 산수에 둔한 사람이다.

-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먼저 시인해야한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한다. 영혼은 날래나 육신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하느님께서 사탄으로부터 보호해주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밤, 낮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낮같이 밤에도 빛이 있는 것처럼 깨어 지내야한다. 항상 기도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일에 중단이 없어야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핵폭탄도 위협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는 기도로서 움직일 수 있다. 그러기에 아오스딩 성인도, “우리는 기도로서 강해지고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로서 마음이 약해지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

1독서는 요나서의 내용이다.

요나서는 411절로 끝나는 작은 예언서이다.

요나 예언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적국인 니네베(아시리아의 수도)일어나라. 가거라. 선포하여라.”(1,1-2; 3,1-2)라는 명을 받고 가기 싫어 타르시스(스페인으로 알려진 땅끝)로 도망가다가 마침 그방향으로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밑창에서 잠자다가 선원들이 깨우자 일어나 그들 중 누구의 탓인지 제비를 뽑자 요나가 뽑혀 자신이 바다에 제물로 던져지게 되어 바다 큰 물고기 배속에 3주야를 갇혀 있다가 하느님이 물고기로 하여금 육지에 뱉어내게 하여 다시 살게 되자, 요나에게 하느님은 또다시 같은 명령을 하신다. “일어나라, 가거라, 선포하여라.”는 명을 받고 요나는 마지못해 외치기를 니네베는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이면 망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니네베도시는 임금으로부터 모든 백성들, 짐승에 이르기까지 단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느님이 회개하는 니네베 백성들을 가엾어 징벌을 거두시고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것이 요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자신의 예언이 빗나간 것이 못마땅하고 원수의 나라 아시리아가 용서를 받고 구원받는 것이 속이 상했다. 그래서 투정하며 산위에 올라가 니네베 도시의 상황을 지켜보노라니 내려쪼이는 땡볕이 짜증이 나고 고통스러워하니까 하느님이 가엾어 아주까리 잎을 내게하여 그늘을 지원주시니 그것을 매우 기뻐한다.

그러나 곧 벌레가 쏠아 아주까리 잎이 시들어버리니 그만 또 요나는 짜증을 내고 하느님께 차라리 죽여 달라고 신경질을 낸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너는 아주까리 잎이 시들었다고 하여 짜증을 내느냐? 누가 아주까리를 심고 잎을 내었느냐? 그런데 아주까리 잎을 보고 기뻐하는 네가 니네베 도시의 앞뒤를 가릴 줄 모르는 12만 명이나 되는 내백성을 멸망하도록 내버려둘 수야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신다. 이것으로 요나 예언서는 미완성으로 트을 맺는다. 그 후 요나 예언자가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랐는지 알 수없다. 왠지 석연치 않은 점이 남는다.

우선, 요나 예언자가 하느님의 명에 불순명하여 타르시스, 야포로 도망가는 모습이 사명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다.

불순명하여 도망간 결과는 결국 배 밑창으로 내려가고 급기야는 고래배속 곧 위장 속 곧 똥통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불순명의 결과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래배속에서 3주야를 고생하다가 하느님의 은전으로 구원받았으면 하느님께 감사하고 겸손해져야 할텐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기뻐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요나의 자존심과 교만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지못해 니네베로 가서 외치는 소리도 아주 무성의하게 건성으로 “40일 후면 이도시가 멸망한다.”는 알량한 경고뿐이다.

오히려 니네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느님의 용설받고 구원받는 것이 못마땅하여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시고 처벌하려다가도 쉽게 뉘우치는 분인줄 알았습니다. 내 그럴 줄 알고 타르시스로 도망가려했던 것입니다.”하고 고백한다. 얼마나 밴댕이 속같이 속좁은 생각이던가! 아무리 이민족 원수나라 민족이라도 회개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게 되었으면 하느님과 함께 기뻐해야하는 것이 예언자로서의 사명이 아니던가! 여게서 속좁은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시기 질투심” “, !”의 모습을 발견할 있지 않을까?

하찮은 아주까리 잎이 그늘지워 준다고 아주 기분이 좋았다는데 정작 기뻐해야할 일이 고작 아주까리 그늘을 보고 기뻐해야했던가? 12만명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보고 하느님과 함께 더욱 기뻐해야할 일이 아니던가?

그런대 사도행전 9장에 베드로사도가 야포에 내려가 죽은 다비타를 살리고 10장에서 이방인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에게 세례를 베풀고 성령안수를 베풀므로써 이방인선교의 정당성을 교회권위로 선포하는 내용이 나온다. 요나의 속좁은 불순명의 장소 야포에서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선교의 포문을 열고 만백성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요나의 미완성 선교 교향곡이 베드로를 통해 완성을 보게 된다.

 

 

 

Who's Stephanus

profi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978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24-16주간-금-탈출29,1-17; 마태3,18-23 Stephanus 2015.07.23
97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23-16주간-목-예레2,1-13; 마태13,10-17 Stephanus 2015.07.22
97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21-16주간-화-(홀수해:탈출14,21-15,1); 마태12,46-50 Stephanus 2015.07.20
975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2-연중13주-목-창세22,1-19; 마태9,1-8 Stephanus 2015.07.01
974 주일, (대)축일 강론 2015-7-19-연중 16주일(예레23,1-6; 에페2,13-18;마르6,30-34) Stephanus 2015.07.15
97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18-15주-토-탈출12,37-42; 마태12,14-21 Stephanus 2015.07.15
97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16-15주-목-마태11,28-30 Stephanus 2015.07.14
971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15-연중15주-수-마태11,25-27 Stephanus 2015.07.14
970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14-15주간-화-탈출2,1-15; 마태11,20-24 Stephanus 2015.07.14
969 주일, (대)축일 강론 2015-7-12-연중 15주일(아모1,12-15; 에페1,3-14; 마르6,7-13 Stephanus 2015.07.11
968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7-1-13주간-수- 마태8,28-34 Stephanus 2015.06.30
96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9-연중10주간-화-2코린1,18-22; 마태5,13-16 Stephanus 2015.06.07
96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8-연중10주간-월-(마태5,1-12) Stephanus 2015.06.07
965 주일, (대)축일 강론 2015-6-7-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출애24,3-8; 히브9,11-15; 미르14,12-26) Stephanus 2015.06.05
964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5-연중 9주간 금- 마르12,35-37 Stephanus 2015.06.04
96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4-연중9주간-목-(마르12,28-34) Stephanus 2015.06.03
96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30-연중13주-화-마태8,23-27 Stephanus 2015.06.30
961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3-연중9주간-수-(마르12,18-27) Stephanus 2015.06.02
960 주일, (대)축일 강론 2015-6-28-교황주일 Stephanus 2015.06.27
959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6-27-12주-토-창세18,1-15; 마태8,5-17 Stephanus 2015.06.26
Board Pagination Prev 1 ...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 116 Next
/ 1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