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6.02.14 20:27

2016-2-15-사순1주 월(레위19,1-18; 마태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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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1주 월(레위19,1-18; 마태25,31-46) 

 

오늘 복음에서 최후의 심판광경이 소개된다.

사람이 받게되는 심판은 두 번 있다. 즉 죽으면 곧 받게 되는 사심판과 예수님의 지상재림 후 이 세상 마지막 날에 받게되는 공심판이다. 심판관은 백보좌 심판대에 앉아계신 예수님이시다.

사심판의 경우에, 중간영역이 있어서 장차 천국에 갈 영혼들이 머무는 상층부(연단받는 장소)가 있어서 아직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미흡한 영혼들을 연단하는 장소(연옥)가 있어서 단련을 받게 된다. 그 다음으로 천국생활에 대해 교육을 받는 “교육 받는 낙원”이 있다.

그리고는 1층천 2층천 3층천으로 구분하여 판결받고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하층부에는 지옥 갈 영혼들을 악으로 여물도록 익히는 곳이 있고 정도에 따라 1층 지옥 2층 지옥 3층 지옥으로 구분하여 판결한다. 대개 적그리스도들은 3층 지옥으로 떨어진다.

마지막 날에 백보좌 심판대에서 받게되는 공심판은 묵시록 20장11절~14절 이하의 장면이다. 죽은 이들 모두가 심판대에 서게 되고 바다가 죽은 이들을 토해놓고 죽음과 저승(영계의 중간영역)도 죽은 이들을 다 내놓고 저마다 행위에 대한 심판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이기에 땅과 하늘도 없어지고, 죽음과 저승(중간영역 심판대)도 사라지고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신천지)만이 남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와 불못(무저갱, 지옥)으로 영원히 갈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마태25,31-46)은 바로 이 최후의 심판(백보좌 심판:묵시20,11-14)의 광경인 것이다.

 

 

그러면 최후의 심판대(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행위심판)

여기서 의인은 양에 비유된다. 양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온유하며 누구에게 해를 입어도 저항하지 않고 견디기 때문이다.

한편 죄인들을 염소에게 비유하신다. 염소는 변덕스럽고 자만심과 호전성이 있는 것이 그 특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은 각자가 행한 업적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겨울나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봄이 되면 살아있는 나무는 새순을 틔우고 잎을 내지만, 죽은 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와같이 의인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사랑의 싹을 틔우고 선행의 잎과 열매를 맺지만, 악인은 마치 죽은 나무 가지처럼 사랑과 선행의 잎과 열매를 맺지 않고 자기 자신에만 머물러있다.

예수님은 의인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고 하신다. “받아라”고 선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너를 위해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라는 뜻이다. 곧“이것들은 네가 생기기 전부터 너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것이다.”는 뜻이다.

그런데 악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원래 그들도 예수님 곁에서 아버지께서 준비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예정되었으나, 그들이 선행을 거절했기에 악마와 졸도들을 가두기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즉 지옥불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악마를 위해 준비된 곳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나라를 스스로 거부하고 악마의 소굴로 자신들이 스스로 찾아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행한 것이 곧 당신께 한 것이요, 행하지 않은 것이 곧 당신께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굶주리는 개를 보아도 동정심을 느끼는 그들이 헐벗은 이웃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주님을 외면한 그들의 소행을 질타하신다.

주님 심판대전에서 받게되는 첫 번째 질문은 “네가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다가 왔느냐?”라는 것이란다.

신앙은 선행으로 열매 맺어야만 한다. 열매 없는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주인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듯이, 사랑의 실천이 없는 영혼은 열매를 기대하신 농부이신 아버지께 실망과 노여움을 살뿐이다. 사랑은 신앙의 열매요 모든 덕행의 결실이다.

이것이 1독서인 레위기 19장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 되어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요 실천방안이다.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는 것이 곧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모든 덕행의 종합이요 열매가 애덕이듯이 하느님의 거룩함의 실체는 곧 사랑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사랑하여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여라.”고 하였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사랑으로 행하는 행위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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