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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舊正: 민수 6,22-27; 야고보 4,13-15; 루가 12,35-40) 우리민족 고유의 대표적인 명절은 설과 추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사고를 지닌 이성적 동물로 뿌리를 찾게 마련이다. 조상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내가 어디서 왔는가?를 찾고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원조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알고 감사드리는 날이다. 서양에서 성탄절이 태양신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을 기해 참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축일을 제정하였듯이 민족고유풍속인 설날 우리는 우리 생명의 뿌리이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우리 선조들께도 감사하기로 하자. 그러므로 봉헌 예절 때 분향하며 선조들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자비의 품에 그분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도록 기도하자. 조상들을 기리고 성묘를 가고 제사드리는 것은 생시에 못다한 효도를 하고자 하는 아쉬움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더 이상 효도할 길이 없는가? 있다. 연도를 바쳐드리고 미사를 봉헌해드리고... 하는 것은 생시에 부모님께 좋은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좋은 옷을 사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도인 것이다. 그리고 외지에 나아가 살다가 부모형제들을 찾아온 형제자매들은 이런 뜻깊은 명절에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베풀고 효도하는 명절이 되기 바란다. 평소에 부모님을 모시지 않던 자녀들은 부모님을 늘 모시고 사는 형제들에게 자신들이 못하는 효도를 대신하는 형제들에게 감사의 정을 나누며 마음을 위로하는 훈훈한 온정이 오고가는 명절이 되기 바란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처럼 함께 모여 덕담을 나누며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본받도록 후손들에게 훈계하고 일가친척들에게 효제(孝悌)와 예절을 교육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주님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고 하며 이스라엘백성에게 축복해주는 자에게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겠다고 하신다.그러니 우리도 우리 이웃을 축복해 주자.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실 것이다. 제2독서에서는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니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주시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고 깨우쳐 준다. 한편 오늘복음에서는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주인을 기다리는 종은 항상 깨어있다가 주인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상기시켜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깨어있으며 주인을 기다리는 자세로 살아야 하고 이런일 저런일을 게획할 때 우리는 잠깐 있다가 사라져갈 안개와 같은 존재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항상 준비하고 깨어 사는 길은 정의롭게 사는 길이요, 선행과 공로를 많이 쌓는 길이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본당공동체안에서 서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복을 빌어주어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 봉헌 축일(봉헌생활의 날: 2월2일: 말라 3,1-4; 루가 2,22-40) 오늘은 주님의 봉헌 축일이다. 에수성탄이 지나 40일만에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예수님을 율법규정에 따라 성전에 봉헌하셨다. 이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맏이로 난 것은 모두 하느님의 것으로 성별되어 하느님께 당연히 봉헌하였던 율법규정에 연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또한 성모 마리아의 정결예식을 치루는 날이라는 뜻에서 성모 취결례(取潔禮)라고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나 성모님이나 죄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분들이기에 정결에식이 필요없는 분들이지만, 율법규정에 따라 성전에 봉헌되시고 취결례를 받으셨다. 또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장성하여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청해 받기까지 하셨다. 세례의 의미는 원죄와 본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뜻인데 예수님은 사실상 원본죄가 전혀 없는 분이기에 세례를 받을 필요조차 없는 분이요, 그뿐만 아니라 당신 스스로 세례성사를 세우신 분이 아닌가? 여기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겸손한 표양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메온 예언자와 안나 에언자는 예수님을 만민의 빛으로 증언하고 찬양한다. "이교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되시는 구원이십니다."고 환호하며,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시메온 예언자는 기쁨에 찬 환호성을 올린다. 주님은 만민의 빛으로 오시고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을 비추실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은 이 분을 반대할 것이요 주님은 이 때문에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이다. 오늘 교회는 촛불행렬을 하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1년동안 사용할 초를 축성한다. 빛의 행렬을 행함은 천상 행복의 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이웃과 함께 그리스도의 등불을 들고 때로 시련과 고통을 당할 때 함께 서로 서로 격려하며 빛을 밝혀주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목적지인 하느님나라까지 이르도록 함께 행진하여가자는 의표가 담겨있다. 또한 제대 위에 타고 있는 초처럼 자신을 불태워 이웃을 밝혀주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심기 위해 살신성인하려는 삶의 결심을 봉헌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오늘은 보다 철저한 봉헌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자들의 날이기도 하다. 수도자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적 욕구인 정욕과 재물에 대한 소유욕과 자기 뜻을 펼쳐보려는 의지를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못박고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복음삼덕을 서원하고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아직 가보지 못해 알 수 없는 하느님나라가 참으로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수도자들이 독신으로 가진 것 없이 살면서도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과 하느님나라가 있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를 닮는 삶 그 길은 오늘 시메온 예언자의 예언처럼 세상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되는 삶이 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어머니처럼 고통을 감수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즉 예수님 곁에서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라는 예언처럼 당신성심에 이 한 칼날이 꽂히는 고통을 받게 되신 성모님과 같은 고통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전례에서 시므온과 안나 예언자는, 낳으신지 40일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신 온세상의 빛이신 메시아를 만나뵙고 일생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오던 바로 그분을 만난 기쁨에 감격에 젖는다. 그분은 제1독서에 말씀하듯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특사요, 하느님의 행차길을 닦을 분으로 대장간의 불길같이 빨래터의 잿물같이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 온 인류를 깨끗하게 정화하실 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하고 푸대접하고 반대 받는 표적으로 삼았다. 어머니 마리아는 이로 인해 당신 성심에 이 한 칼날이 박히는 고통을 겪으셔야 했다. 한편,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려야하는 우리 모든 신앙인의 자세를 표상한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다려온 시므온에게 성령께서는 메시아를 볼 수 있게 되리라는 약속을 실현시켜주셨고, 한평생을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왔던 안나도 메시아를 만나 뵈옵는 축복을 누리게 해 주셨다. 매 주일, 또는 매일 미사에 나아와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고 여러 가지 본당활동에 봉사하고 신심단체에서 수고하시는 여러분에게도 하느님께서는 장차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뵙는 감격을 틀림없이 허락하실 것이다. 또한 여러분의 가정이 성가정이 되고 여러분의 가정이 수도성소의 못자리가 되어 주님과 같이 봉헌된 삶을 사는 수도자를 싹틔우는 온상이 되도록 노력하자. 수도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처럼 예수님을 위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녀나 집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으로서 100배의 상급을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또한 자녀를 수도성소를 바친 부모님이 받을 상급은, 이 세상 그 어떤 귀한 선물을 주님께 봉헌한 사람보다 더 큰 상급을 장차 주님께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보다 더 큰 예물이 어디 있겠는가? 예물이 크기에 그에 대한 상급도 클 것은 당연하다. 축성생활의 날에 수도성소에 대해 강조하는 이 호소는 옆의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각자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으로 들어주시기 바란다. 복음나누기 주제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촛불은 자신을 녹여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힙니다. 남을 비추기 위해서는 내가 몸을 살라 희생하여야합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나서 느낀 기쁨을 서로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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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예수부활대축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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