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8 08:51

사순 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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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일(1역대36,14-23;에페2,4-10;요한3,14-21) 오늘 전례는 입당송에서 환희와 기쁨의 주일처럼 표현해주는 한편, 실상 중심 테마는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1독서의 성서저자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역사적인 모든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이유를 유다백성들이 예언자들의 권고를 듣지 않았을뿐더러 그들의 하느님 야훼의 비탄에 찬 간절한 호소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당신계약에 충실하신 야훼께서는 고레스의 해방칙령(BC528)을 통해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을 보여주신다. 그 칙령으로 바빌론 유배가 끝난다.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2역대36,23) 오늘 전례가 환희를 표현하는 이유는 이 마지막행위 즉 고레스의 해방칙령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를 은근히 기쁨에로 초대한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 자리에 앉게 하여주셨습니다."(4-6) 이와 같이 여기서 부활의 환희를 미리 보여주는 것은 사순절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높이 들리심은 구원의 열쇠가 됨과 동시에 걸림돌도 된다. 즉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문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각자의 선택이 중요하다. 즉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절하느냐를 선택해야하는 것이다. 요한3,16은 "하느님께서 이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여 주셨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외아들까지 희생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이다. 이분이 광야의 구리뱀으로 상징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하느님의 우리게 대한 사랑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다. 당신 독생성자를 희생제물로 내어놓으실만큼 우리를 사랑해주셨다. 바오로사도는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아들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르고 사셨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르고 사실만큼 소중한 존재로 하느님께서 인정해주신 것이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가히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 일컬을만하지 않는가? 어떤 부모도 남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희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바로 이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에서 기인한다. 이 고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요,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생명까지도 거절하는 것이요, 빛으로 오신 분을 거부하고 암흑을 스스로 찾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인간의 마음 깊숙이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 즉 빛이 우리의 이중성, 계산성 비열함을 노출시키기 때문에 갖는 그 빛에 대한 증오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행실이 드러날까봐 겁이 나서 빛을 멀리하는 것, 즉 심판을 피하기 위해 빛을 멀리하는 것 그 자체가 오히려 더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빛을 멀리한다는 것은 어두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조차 갖지 않고 어둠에 파묻혀 살고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주님은 마태오 6,23에서,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항상 단죄를 받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십자가상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1요한4,16)을 믿지 않고 더 나아가 그의 마음을 파고드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은혜로운 이 사순시기에 하느님의 이토록 크신 사랑을 깊이 묵상해야한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하고 왜 선행을 베풀어야하고 왜 용서해야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실로 불행한 인간이다. 오늘은 기쁨을 묵상하는 주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지만 불원간에 그분의 부활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실수에는 아픈 매도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휠씬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처지를 다시 한번 성찰해보고 하느님의 자비에 늘 푸른 기대를 걸고 부활을 향한 희망찬 전진을 계속해나가자. 복음나누기 주제 광야의 구리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하느님의 우리게대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신비는 성체신비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체조배를 통해서 느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서로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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