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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2주일(1사무3,3-19; 1고린6,13-20; 요한1,35-42) 오늘 말씀 전례의 주제는 주님의 부르심(성소)과 응답(따름)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 만남이 이루어진다. 전반부는 세례자 요한이 주선한 그의 두 제자 안드레아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요, 후반부는 안드레아가 주선한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두 가지의 만남의 공통점은 어떤 식으로든 그 만남을 이미 체험한 사람의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복음사가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격스런 만남의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때는 네시쯤이었다"(39절). 이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전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은 당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이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고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에 대해 질투하거나 언짢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보내준다. 여기서 세례자 요한의 겸손이 드러난다. 더욱이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한다"(요한3,30)고 말한 바 있다. 예수님과 안드레아와의 대화내용도 흥미롭다. 예수님은 안드레아에게,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신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첫제자인 안드레아에게만 하신 질문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제자들, 즉 오늘의 우리에게도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동기와 목적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확인하라는 뜻이다.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묻는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이 순서일터인데, 안드레아는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의 집을 방문하려한다. 또한 이라는 동사는 절친한 친구간에 서로 번갈아 가면서 머무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단지 잠만 자기 위해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의 삶에의 투신을 의미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그 줄기에 대한 비유에서 박진감있게 표현된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말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15,4-5). "묵는다"는 말의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최후만찬때 예수님께서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6,56)고 하신 말씀의 내안에서 산다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묵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온전히 파악하고 안식할 뿐만 아니라 생명공동체적 체험을 한다는 의미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안드레아의 질문을 해석한다면, "선생님, 우리도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당신이 누구신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의 신비에 참여시켜주십시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안드레아가 가서 확인한 예수님의 거처는 어떤 것이었을까? 으리으리한 고대광실 궁궐이나 호화저택이었을까? 안드레아가 형인 시몬에게 달려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하고 흥분할만큼 매력을 주었던 것은 예수님의 어느 면이었을까? 분명 예수님이 머무시던 곳은 갈대잎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움막집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냥 비만 피할 수 있는 임시 움막일 수도 있다. 그러면 무엇이 안드레아를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듯이 일정한 주소가 없이 하늘을 지붕삼아 땅을 발판삼아 어느 곳에도 집착함이 없이 생활하셨다. 안드레아는 이미 세자요한 밑에서 참된 행복의 길을 알았고 예수님에게서 그 모델을 발견하고 하느님나라에 관한 복된 소식을 밤새 감동깊게 듣고는 안드레아와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계획, 생활습관을 모두 버리고 어디로 가게될지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인도에 맡기는 모험을 전제로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길은 인간적으로 바라게되는 항상 아름답고 평탄한 그런 길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떼를 칠 임무를 맡기시면서,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아브라함과 모세, 사무엘, 사도들 그리고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그 부르심에 따르는데는 용기와 모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기 위해서는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극복해야한다. 이 장애물 중에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심하게 느끼는 끈질긴 유혹은 음행과 간음의 욕망이다. 이러한 유혹은 사랑과 헌신적 봉사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 2독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음행을 물리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하고 권면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따르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끝까지 항구하게 따르기만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선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우리 각자는 다 하느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신앙의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1독서의 사무엘처럼,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나이다" 또는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는 자세가 가장 모범적인 순종의 자세이다. 그 뒤의 결과는 하느님께서 가장 아름답게 맺어주실 것이다. 복음나누기 주제 우리가 신자가 되기까지에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경험담을 서로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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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163 부활 6주일(청소년주일, 생명의날) 이스테파노신부 2003.05.21
162 부활 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5.16
161 부활 4주일(성소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30
160 부활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30
159 부활 2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23
158 예수부활대축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5
157 성지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5
156 사순 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2
155 사순 4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28
154 사순 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19
153 사순 제2주일 이 스테파노신부 2003.03.15
152 사순 1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05
151 연중 8주일 강론 이스테파노신부 2003.02.26
150 연중 7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2.11
149 연중 6주일 이스테파노신부 강론 2003.02.11
148 B해 연중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강론 2003.02.11
147 설 명절; 주님 봉헌 축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1.29
146 연중 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1.29
» 연중2주일(1사무3,3-19; 1고린6,13-20; 요한1,35-42) 이스테파노신부 2003.01.15
144 B해: 주님의 세례 축일(이사야 42,1-7; 사도 10,34-38; 마르 1,7-11) 이스테파노신부 200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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