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5 12:08

예수부활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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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부활대축일 축제중의 축제인 빠스카 대축일은 그 의미가 참으로 넓고 심오하여 우리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신비이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한 대왕의 광채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라, 세상 어두움 사라졌다. 기뻐하라 자모신 성교회, 위대한 광명으로 꾸며진 성교회..." 예수부활의 찬란한 광채를 받아 꾸며진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성교회는 오늘 이 장엄한 신비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있다.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사도는 오늘 1독서를 통해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고 선언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영생을 얻느냐 멸망하느냐의 관건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부활사건을 접하는 세인물의 태도는 우리 신앙의 길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막달라여자 마리아는 새벽녘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가서 돌이 치워져있음을 본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생각한 첫 번째 해석은 누군가가 밤중에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곧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고 전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중 먼저 도착한 것은 베드로가 아닌 다른 제자 즉 요한이었다. 요한이 더 젊어서 빨리 도착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영신적인 깊은 의미를 음미해볼 수도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였고 그 사랑을 예수님의 신비 곧 부활신비에 대해 빈무덤의 정황을 살펴본 후 곧 믿게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요한의 순결하고 강렬한 사랑은 단숨에 무덤까지 달려가게 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두 제자의 무덤에 도착한 후의 태도에서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베드로는 먼저 무덤 안에 들어가서 수의가 흩어져 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음을 보았으나 그는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 즉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요한은 "빈무덤에 들어가보고 믿었다." 같은 정황을 보고도 전자들의 경우는 부활사건에 대한 믿음을 전혀 일으키지 못하였고 후자 즉 요한의 경우는 "보고 곧 믿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단지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로도, 수의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다는 사실로도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상상하듯이 누군가가 훔쳐갔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부활사건은 삼단논법이나 수학방정식이나 과학적 논증으로 해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막달라 여자가 "보았다"(blepein)는 시각과 베드로가 "본"(theorein)시각과 요한이 "본"(oran) 시각은 다른 것이다. 전자들은 육목으로 보았고 후자는 믿음의 눈 즉 영안(靈眼)으로 보았다. 요한으로 하여금 아직 예수님을 보지 않고서도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다 깊이 보고 믿게 해준 것은 마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의 투시력에 의해 요한만이 빈무덤과 개켜져 있던 수의에 감추어진 모든 사실의 의미를 이해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전세계 방방곡곡의 만민과 친밀히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믿음은 천상에 대한 확신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천상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다. 바오로사도는 제2독서(골로사이서)에서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게 장차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고 희망하도록 이끌어 준다. 영신의 부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에 죽고 천상적 가치관으로 거듭나느 것이 오늘 부활절에 우리가 이루어야할 과제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영안을 성장시키자. 그 비결은 주님께 대한 사랑을 키우는 것이다. 베드로의 부족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신 그리스도의 인내심을 우리도 본받아 믿음이 약한 사람을 쉽게 단죄하지 말자.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하였으면서도 인생선배요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순서를 양보한 요한의 겸손도 본받자. 복음나누기 주제 나느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육신부활에 대한 교리즉 사기지은(四奇之恩:상함이 없고, 빛나고, 빠르고, 관통하는 은혜)을 입게된다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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