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6.02.10 14:09

2016-2-11-재의 수요일 다음 목(루카9,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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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다음 목(루카9,22-25)

 

 

오늘 복음은 우리 귀에 너무 익은 말씀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 직전에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삶”을 따라오라는 요청도 무시무시하여 모두가 피할 터인데, 더구나 그러기위한 조건이 “자신을 버려야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매력 없는 고난의 길을 누가 걷기를 원할까?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 심지어는 그분을 전적으로 따르기 위해 삶을 통째로 바치는 성직자 수도자도 세상에는 많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내 멍에는 달고 내짐은 가볍다”고 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만 있으면 십자가는 달고 매력적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살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눈앞이 캄캄했던 주님의 말씀에서 십자가 뒤에 있는 부활이 여명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예고 때 펄쩍 뛰며 “안 됩니다.” 고 만류하였다가 주님으로부터 호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맞은 적이 있다. 처음 베드로의 귀에는 수난과 십자가의 말씀만 들렸고, 부활의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 성령을 받은 후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고 주님을 위해 십자가지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고 특권이라 자랑하였다.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길에 쓰러질 수도 있다. 예수님도 세 번씩 넘어지셨지 않는가?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몇 번 넘어졌는가를 헤아리시며 감점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때마다 가산점수를 주신다. 넘어졌을 때 눈앞이 안보이고 문이 닫혔으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그러면 다른 쪽에 틀림없이 다른 문이 열려있을 것이다.

헬렌켈러가 “행복의 문이 한쪽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려있음을 바라보십시오.” 하였다.

뉴만 추기경이 노후에 성무일도가 유일한 즐거움이었는데, 실명이 되어 앞이 안보이자 잠시 실망이 들었으나, 묵주기도로서 전보다 더 큰 행복을 찾았다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짐을 지듯이 짊어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짐은 목적지에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지고 간 끝에서 자신이 매달리기 위함이다.

베드로가 신자들의 만류로 박해를 피해 피신하라고 종용하자, 베드로는 비아 아피아로 피신하는 길이었다. 예수님이 저만큼에 걸어오고 계신다. 베드로는, “Quovadis Domine?”(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이, “네가 버린 십자가를 내가 다시 지러 로마로 들어간다!” 베드로는 다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버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라오느라 수고하였다고 예수님이 우리 십자가를 대신 져주시는 것도 아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달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우러러 존경하지 않는다. 죄인이 달리는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죄인이 달리는 형틀이 십자가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선 이상 이 세상에서는 죄인 취급받기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오로도 말년에 “나는 죄인 중에 괴수”(1티모테오1,15)라고 서슴없이 말하였다. 예수님과 닮은 꼴일수록 천국에서는 더 큰 상이 내릴 것이다.

사순시기는 악마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극기의 보루를 치는 시기이다.

악마는 지금 우리를 향해 비상이 걸렸다. 악마는 게으른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집중 공격한다. 게으른 사람은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지만, 잘 사는 영혼은 악마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교회에 유익을 주며 많은 영혼을 마귀손아귀에서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사순절에 교회가 재계와 보속의 생활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마귀들에게 총공격을 개시하고, 마귀 손에서 많은 영혼을 되찾아가므로 마귀들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비상이 걸렸다. 우리는 잠을 자도 마귀는 잠도 안잔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주님을 닮은 사람이다. 십자가를 주님처럼 지는 죄인을 가장 무서워한다. 십자가, 수모와 모욕, 죄인으로서 자신을 인정하는 겸손....을 마귀는 두려워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내가 십자가를 지다보면 나중에는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간다(준주성범). 보상을 바라고 지는 십자가로 얻는 금메달은 순수하지 못하다. 그냥 주님이 좋아서 지는 십자가라야 24K 순금메달이 될 것이다.

“이번 사순절이 악마에게 선전포고하여 지난날에 마귀에게 빼앗겼던 성읍을 되찾는 극기의 보루를 치고 승리하게 하소서.”

................................

사순절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월요일 복음에서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부자청년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버리라고 권면하셨다. 화요일 복음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관계 즉 혈연과 지연까지 다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어제 재의 수요일에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통해 자기를 끊으라는 요청을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수도자는 복음삼덕을 서원하고 사는 삶이며, 이는 청빈서원을 통해 재산을 버리는 훈련이요, 정결서원을 통해 가족과 혈연을 끊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보편적 사랑을 위함이요, 순명서원을 통해 자기자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함이다. 앞의 예수님의 제자되는 길의 끝자락에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

스승이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제자의 길에도 그러한 길이 놓여있다는 말씀이다. 복음삼덕의 길은 곧 십자가의 못 세 개에 자신의 물욕과 성욕, 자기의지실현욕구를 못 박고 죽는 길이다. 그런데 그 끝자락에는 사흘 만에 부활한다는 희망이 있다.

청빈으로 물욕의 죽음의 하루가 지나고, 정결로 성욕의 죽음의 하루가 지나고, 순명으로 자유의지의 죽음의 하루가 지나 사흘째 되는 날에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게 된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다. 성삼일의 축제가 교회전례의 정점이요 절정인 까닭은 원조 아담이 범한 자기의지의 남용으로 인해 받게된 보속인 죽음을 이기기 위해 자기의지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신비가 성삼일안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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