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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젠례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역설같지만 아무도 사랑 때문에 울어보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그 길이 순탄하고 편안하고 즐거우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1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대예언자이지만 그의 생애는 고난과 박해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그자신도 자기는 하느님의 꼬임에 넘어가 신세를 망쳤다고 신세타령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무거운 짐만이 아니다. 예수님도 성모님도 성인성녀들도 한결같이 피눈물나는 고난의 길을 걸어갔지만 자신을 불행하다고 비관하지 않았다. 오늘의 복음은 지난 주일의 복음과 그 분위기가 대조를 이룬다. 지난주일에는 베드로가 주님을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여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고 기쁨에 넘쳤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와 이를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대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는 호된 책망이 내리는 우울하고 충격적인 분위기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위와 같은 상반된 분위기의 내용이 나란히 서술되며 대조를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 자체가 지닌 고난-축복이라는 대립적인 실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복음내용은 그리스도의 수난예고와 베드로의 만류로 이어진다. 그리스도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냐, 내고통을 생각해주니 고맙다!고 칭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되게 책망을 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의 책망은 가혹한 것인가? 광야에서 40일 엄재수난때 사탄도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유혹한 바가 있다. 현세적 빵과 권세와 명예욕으로 예수를 유혹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무산시킬 공산이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베드로의 만류는 하느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는 사탄의 음모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책망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당할 십자가의 엄청난 수난과 제자들이 또한 그 길을 따라야함을 미리 예방주사로 맞춰 면역성을 키워주시기 위한 교육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닥쳐올 십자가를 단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서 미리 마련하신 계획에 그리스도 자신이 스스로 자원으로 따르실 것을 예고하신다. 제자들의 태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사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고 제자들도 스승의 고난의 길을 따라 걸어야함을 제시한다. 벗을 위하여 자기자신을 잃는 것이 형제들 마음속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자신을 되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는 복음의 선행적 실습자로서 그리스도의 예형이다. 그는 인간고통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예언적 소명을 저버리고 싶어 몸부림 쳤다. 그런데 고통속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컸다. 그의 마음속에 이 사랑의 불이 타올라 예레미야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게 된다.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 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예레20,7-9)고 고백한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모든 신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타락한 본능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매일매일 바쳐야하는 정신적 예물,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야함을 제시한다. 고통이 닥칠 때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이 석쇠판 위에서 이글이글 타며 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느님께서 드시기에 합당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 이쪽저쪽 고루고루 익도록 기왕이면 아까움 없이 통째로 내어 맡기는 것이 완전한 번제물이 되는 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내가 주님 앞에 올려질 번제물이 되기에 몸을 사리고 움츠러들 때 나의 제물은 설익은 생선같이 하느님이 받으시기에 합당치 못한 제물로 남아있고 만다. 나를 통째로 하느님께 바쳐 이쪽저쪽 고루고루 번제물로 익어서 하느님이 드시기에 맛있는 제물이 되도록 전번제로 내어드리자. 복음나누기 주제 가족들에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신앙의 길에 방해가 된 적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오늘 주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는 말씀을 되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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