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0주일(호세6,3-6; 로마4,18-25; 마태9,9-13)

by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posted Oct 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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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제1독서와 복음은 내용상으로도 서로 통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를 호세아 6,6에서 취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마태9,13)고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 있어서는 오직 외적으로만 하느님께 바치는 전례의식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 특히 그 이웃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을 때 더더욱 그렇다.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있던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타락에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며 하느님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고자 시도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다만 일시적인 것일뿐 아침해를 넘기지 못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참된 예배의 의미를 되새겨주신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6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동물을 잡아 희생제물을 바치는 외적인 제사의식 대신에 사랑과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신다. 온통 외적인 형식주의 전례의식을 공박하고 있는 오늘의 화답송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으니, 너를 제사 때문에 꾸짖음이 아니로라. 누리와 그 안에 찬 것이 내것이니, 굶주려도 너에게는 말하지 않으리라. 찬미의 제사를 하느님께 바치라. 지존께 네 서원을 채워드리라. 너 나를 부르는 곤궁한 날에 나는 너를 구하고 너는 내게 영광을 돌리리라."(시편49,14-15)함으로써 1독서에서의 하느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밝히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랐을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잔치상을 마련하여 자신의 기쁨과 감사의 정을 표하고자 하였다. 잔치에 초대된 예수님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트집을 잡았다. 그당시 세리들은 죄인의 대명사였고 유다인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천민처럼 왕따당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들과 어울리시면서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풍습의 형식주의와 하느님 앞에서의 특권의식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려버리신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2-13절)고 당신의 혁명적인 입장을 밝히신다. 예수님의 이 혁신적인 말씀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으신다. 자칭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느님을 찾지도 않을 것이며 하느님도 그 사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자신의 힘만을 믿고 살아가는 그들은 사실은 무신론자와 다름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12절)고 하신다. 예수님에 의해 치유를 받은 모든 육체적 병자들만이(나병환자, 소경 앉은뱅이, 중풍환자 등)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 즉 영신적 병자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록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예수님 앞에 내세울만한 공로가 없다 하더라도 그분이 우리에게 쏟아주시는 보다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로써 충분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신뢰하며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파스칼이라는 철학자는 "세상에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부류의 사람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진짜 죄인이요, 둘째부류의 사람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다"고 말한 바 있다. 제물보다는 자선을 우선시하시는 하느님의 의도는 사랑과 용서 그리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참된 예배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세우고자 하시는 교회는 선한 사람들과 완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느님께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주심에 대해 감사하며 찬미하는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그러기에 바오로사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들일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와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라고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팔삭동이같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제2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신덕을 지닌 아브라함이니까 그 절망적인 상태롤 극복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엄청난 일을 행하셨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이다. 복음나누기 주제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웃을 단죄하는지 성찰해보고 이웃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일어난 변화에 대해 체험한 바를 함께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