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6.02.18 11:23

2016-2-19-사순1주 금(에제18,21-28; 마태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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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1주 금(에제18,21-28; 마태5,20-26)

 

 

율법은 불완전하였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그 불완전함을 더욱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율법의 정신을 규명한다는 구실로 쓸데없는 세밀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노예적으로 율법의 문자에만 얽매이게 하여 백성들을 괴롭혀왔다.

그들은 율법에 금하고 있는 내용은 철저히 지키되 금하지 않은 내용은 무엇이나 해도 좋다는 논리를 폈다.

실로 그들은 파리는 건재내고 낙타는 삼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그리스도는 이 폐단을 시정해주시고자 하신다.

즉 유다인들의 모세율법에는 외부적인 범죄, 살인, 약탈, 상해, 구타 등을 금지했을 뿐 사람 마음속의 분노나 미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음의 죄, 양심의 죄를 더 중요시했다.

분노는 3단계로 일어난다. 첫째, 단순한 내적인 분노(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

둘째로, 멸시(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

셋째로, 매도(자기 형제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

이 3단계의 죄에 대해서 첫째의 경우는 지방재판에 해당하고,

둘째단계는 예루살렘 최고의회에 회부하고,

셋째단계는 지옥불에 던져진다고 하였다.

또한 분노 중에는 죄가 안 되는 소위 의노가 있다. 하느님의 거룩한 진노이다.

예수님도 때로 진노하셨다. 예컨대 성전 뜰에서 상인들의 장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진노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디아3,1에서, 야고보사도는 야고보2,20에서 거룩한 분노를 발한 적이 있다.

우리의 죄는 생각으로도, 말과 행위로도 이루어진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도, 말로도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살인에 대한 의사, 증오심에 찬 말, 악담 등은 행위로 짓는 죄 못지 않게 큰 죄가 된다.

하느님은 마음의 죄인 분노를 버리고 사랑의 덕으로 대치하셨다.

하느님은 이웃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의 재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하느님께 대하여는 제물보다 사랑과 자비가 더 큰 가치가 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사랑이 재물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미사전례에서도 이 계명을 기념하기 위해 영성체 직전에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 “누가 너를 고발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도중이란 이 세상을 말한다. 이 세상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가 나그네이며, 서로가 이해로써 결합되어 있는 이웃인 것이다.

재판관은 하느님이며 하느님의 재판은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형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자, 특히 영원한 벌을 집행하는 악마를 나타낸다. 감옥은 징벌을 받는 장소를 뜻한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나오지 못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날은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그 장소는 연옥을 말한다. 기워 갚아야할 보속거리가 남아있는 영혼을 위한 천국 대기소가 연옥인 것이다.

그날은 잘 준비된 영혼에게는 상급 받는 날이요, 준비 안 된 영혼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날이다.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냉수 한 컵 떠준 것까지도 낱낱이 갚아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천국은행에 적금을 많이 부어놓는 길은 애덕의 설천이다.

주님은 마태25,31-46에서 심판의 기준을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하셨다.

천국은 공로에 의한 상급으로 주어지는 곳이다.

율법주의적으로 금령만 위반하지 않고 죄만 피하면 가는 곳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행과 공덕을 쌓아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천국좌석도 다양하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고 하셨다. 1등석, 2ㅡ등석, 3등석....

등급이 다양하다. 선공을 부지런히 쌓아 촌음을 아껴 노력하여야 한다. 유한한 시간을 한가하게 허송하지 말고 한 시간도 낭비함이 없이 공로 쌓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용서와 화해의 사례:

1- 넬슨 만델라…인종차별의 벽 ‘용서와 화해’ 로 넘어

27년에 걸친 수감 생활 끝에 1990년 출옥해 4년 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에 오른 인물. 그 자리도 5년의 임기만을 마치고 후배이자 동지인 타보 움베키에게 잇게 한 뒤 세계의 분쟁지역을 다니며 용서와 화해를 전하고 다니는 인물. 그가 바로 넬슨 만델라다.
그는 백인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분노를 몸에 새기며 살았으면서도 감옥에서 출옥한 그날부터 용서와 화해의 사도로 변신했다. 과거사에 사로잡히지 않는 용기, 뼈속 깊이 새겨진 고통과 수난을 보상받지 않겠다는 결단, 그리고 남아공을 넘어 인류가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비전을 잃지 않는 그의 지도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1948년에 총선거에서 승리한 백인들의 정당 국민당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차별법을 제정한다. 이 법이 제정된 후 남아공 정부는 조직적으로 흑인들을 차별했다.
아파르트헤이트법은 피부색과 언어, 신체로 인간을 구분하고 흑인들의 시민권까지 박탈했다. 전체인구의 70%인 흑인은 국토의 13% 안에 갇혀 지냈다.

1960년대 들어 국제연합이 남아공의 인권탄압을 비판하고 영국연방은 남아공을 연방에서 제명시켰다. 남아공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운동가들의 활동을 금지했고, 만델라와 그의 친구 여덟 명은 유명한 리보니아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에 수감된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만델라의 석방운동이 세계각처에서 일어났다. 당시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보타는 85년 국회연설에서 "만델라의 석방은 그 자신에게 달렸다"고 했다.
보타의 뒤를 이어 89년 드 클락이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이미 세계가 남아공 백인정부의 인종차별정책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클락은 만델라와 대화를 시작했다. 공산당 외의 30여개 인종차별 반대단체들을 인정했고 마침내 만델라를 석방시키기에 이른다.
27년만에 햇빛을 본 만델라의 제일성은 화해였다. 인종차별을 끝내라. 정치범들을 전원 석방하라. 만델라의 화해 주장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만델라는 백인정권의 수장인 드 클락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해서 과도기의 혼란을 막고 용서와 화해를 기조로 한 새 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그 공로로 1993년 만델라는 드 클락과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다음해에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 순간 그의 눈은 화해자 예수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도 5년의 임기만을 마치고 후배이자 동지인 타보 움베키에게 잇게 한 뒤 세계의 분쟁지역을 다니며 용서와 화해를 전하고 다니는 인물. 그가 바로 넬슨 만델라다. 

 

사례-2-마르틴 루터 킹 목사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1960년대 미국 흑백 인종차별을 반대하여 연설을 하기 시작하자, 백인들이 그의 집을 습격하고 폭발물을 매설하고 가족들을 연행하여 고문을 가하고 하자, 하루는 킹목사가 성경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을 읽으며 십자가 앞에서 주님께 항의하였다. “주님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내 집에 폭발물을 매설하고 내 가족을 고문하는 저들을 용서하라고요?” 하며 일주일간 엎디어 부르짖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비몽사몽간에 떠오른 생각이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용기가 났다. 일어나 연설장에서 백인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을 무조건 용서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리가족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용서합니다.”

흑인들은 루터킹 목사가 백인들에게 매수당했다고 오해하고 반발하였다. 그러나 킹 목사는 흑인들을 설득하였다.

복수의 연쇄고리는 끝이 없을 것이고 또 다른 복수를 불러일으켜 악순환은 계속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용서합시다. 그러면 저들도 우리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설득하며, “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I have a dream.) 인종차별 없는 그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하고 힘차게 웅변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청중들 중에는 백인들의 숫자가 늘어갔고, 마지막 연설장인 워싱턴 광장에는 백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백인들이 절반의 숫자에 달하였다. 그날 흉탄에 쓰러졌지만, 오늘날 흑인 킹목사를 백인들이 더 존경하고 큰 도시의 주요 도로명이 “마르틴 루터 킹 도로”라고 부르는 도로가 많다.

용서는 무기력해보여도 상대방을 설득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고, 오늘날 흑백차별은 사라졌고 루터킹 사후 50년 만에 흑인대통령이 나오기까지 이르렀다.

십자가의 무기력한 예수님의 용서가 인류의 구세주로 만들었듯이...

 

사례3-손양원 목사의 원수사랑 실천

손양원 목사(1902~1950)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만 5년의 감옥 생활을 하다 광복이 되어서야 출옥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1948년 10월 여수·순천사건이 발생하여 당시 순천에 있던 두 아들이 반란군인 공산분자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계엄군에 의하여 살해범이 체포되었지만 그에 대한 구명 요구를 통해 그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민족의 비극인 6.25가 발발하고 여수 지역에서 퇴각을 준비 중이던 공산군에 의해 전향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총살당하고 말았다. 그때는 수도 서울이 탈환되던 1950년 9월28일 새벽 그의 나이 49세였다.

하느님께 감사의 글

1- 아들 둘을 순교자로 선택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2-나같은 혈통에서 순교자를 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3-3남3녀 중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4-예수님 믿고 전교하다가 순교하게 해주신 것 감사.

5-두 아들 총살한 원수를 내 아들로 삼고 사랑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6-미국 유학가려다가 오히려 더 좋은 천국가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7-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도무지 감사하기는커녕 원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절절이 감사하는 이분의 신앙심이 놀랍다.

 

-. 용서와 사랑은 가능한가?

 

1고린 13장의 사랑(agape)은 우리 인간에게 가능한가?

사랑은 오래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앙심을 품지 않고,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바라고 견디어 냅니다.”

사랑명사이므로 주체이다. 누구? 하느님 자신이다. 하느님이 내 안에서 궁전 삼으시고 사랑이신 분사랑을 실천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도 “나는 날마다 죽어가노라”고 하였다. 무엇이 죽는가? 선악과의 범죄한 연약한 인간(사울-큰자)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바오로(작은자)가 부활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거듭난 바오로의 삶은 누가 누가 작아지느냐의 경쟁하는 자이고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는 자세와 같다.

예수님은 이러한 실정을 아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3,3)고 하셨다.

 

-. 아우슈비츠 수용송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여성에게 기자가 물었다.“독일인을 복수하고 싶지 않은가?”

근의 답은, “복수심으로 내 삶을 파멸시키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

복수심과 분노는 독약이다. 복수심을 안고 사는 사람은 독약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과 같다. 해독약은 곧 용서와 화해이다.

 

복수의 정의 속에는 사랑이 없고 헤푼 사랑과 용서에는 사랑은 있어도 정의가 없다.

정의 없는 사랑은 진실을 왜곡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진실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정의와 사랑은 서로 만나지 않는 한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니다.

참회가 가해자의 양심이라면 용서는 피해자의 양심이다. 정의와 사랑은 마주만나 입맞춤하여야 양쪽이 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용서의 전제

1-조건이 없어야 한다. 다만 용서가 상대방의 범죄사실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2-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승리하였듯이.-따라서 용서하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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