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일(출애17,3-7; 로마5,1-25-8; 요한4,5-42)

by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posted Oct 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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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인 오늘 말씀전례에서는 물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사순절의 신비를 내포하고 있어 신학적 의미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물은 성령과 더불어 인간들을 그들의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 메시아적 선물이다. 사람의 몸도 70%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물은 지구전체와 인체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의 비조인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에제36,23과 25-26절에서 "네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리리니, 너희는 온갖 더러움에서 깨끗하여지고 나는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리라"고 하였다. 제1독서(출애17,3-7)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되었다.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리며 항의했을 때 모세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난 기적을 행하였다. 이와같이 물은 생명의 본질적 요소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광야는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 고갈되어버린 장소로서 물과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물이 없으면 죽고만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나시는 배경이 물을 소재로 하여 전개된다. 물의 상징적 의미를 영신적으로 무한히 발전시켜 그리스도와 하느님 자신이 이 지상의 생명체를 풍성히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심을 가르쳐 주신다. 그런데 이 물에 목마른 것은 인간편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목말라하시며 당신을 맞아 주시기를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듯이 그리스도와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오늘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계신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원조 야곱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야곱의 우물가에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 전체가 그리스도께로 모아지며 구원의 원천인 그리스도는 참다운 생명의 물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대화법은 매우 흥미롭다. 유다인이 사미리아 여인에게 물 한잔을 청함으로써 정작 생명의 물을 목말라하는 그 여인의 갈증을 풀어주시고자 하신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여인은 점차 마음을 열고 "선생님, 그물을 저에게도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청한다. 정오의 뙤약볕에 남의 눈길을 피해 물을 길으러 나온 이 여인의 윤리적 수치심이 감추어져 있는 대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인을 좀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주시며 은총의 문을 열어 주시고 그 녀의 비참한 도덕적 생활의 심연을 열어 치유해주시고자 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은 숨김 없는 말이다.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고 하신다. 윤리도덕가라면 교훈적인 장황한 훈계를 시작했겠지만, 그리스도는 단순한 윤리도덕가가 아니시다. 그녀의 양심에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마음 안에 뿌려진 양심의 근본을 작동시켜주면 근본이 가지를 바로 잡아갈 것이다. 샘솟는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지신을 가리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고 하셨고, 또한 이 물을 그리스도께서 지상사명을 다하시고 떠나실 때 풍성히 부어주실 성령의 선물을 암시하기도 한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7,37-38)고 하시며 샘솟는 생명의 샘터로 초대하신다. 그리스도와 사마리아여인의 대화는 더욱 진전되어 예배장소에 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으신다. 더 이상 하느님은 인간과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이방민족에게까지 찾아가신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가까이 다가와 계시고 직접 우리를 찾으시며 우리의 사랑을 목말라 하시는 분,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 영적으로 참되게 드리는 새로운 예배가 지금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이 순간에 시작되고 있다. 새로운 예배는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이루어지며, 그분 지신이 새로운 예배인 것이다. 사마리아인들 역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선언하심으로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지만, 그 구원은 유다인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즉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를 다 포용한다는 것을 설파하신다. 그리스도는 이어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음식을 권유하는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 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고 하셨다. 하느님의 일 그것은 영혼의 추수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리스도는 영혼의 수확기, 추수할 때가 다 되어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들판을 바라다 보시고 흐뭇해 하시는 심정일 것이다. 즉 추수하는 일, 곧 전교의 사명으로 마음 불이 타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35절) 곡식은 들판에서 우리의 낫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그 곡식이 병들고 좌절하고 실망의 늪에 쓰러져 있거나 방향감각을 잃고 자포자기에 빠져 진창에 뒹굴고 있는 영혼이라 할지라도 교회는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시듯이, 그들 마음 속에는 여전히 구원에 대한 갈증과 희망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마리아여인이 복음 선포자로 돌변했듯이 우리가 점화시킨 복음의 불은 사방으로 전파되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