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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이 점점 깊어질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신비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상징성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로 상징화 되더니(사순3주일), 또 그분은 우리의 어둠을 밝혀주는 빛으로(4주일의 태생소경치유에 관한 이야기에서) 되었고, 오늘은 바야흐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서 라자로의 부활사건을 통해 부활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즉 주님은 먼 곳으로부터 점차 핵심에 가까워 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인생의 나약함과 덧없음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시35,10)라고 노래하고 있다. 우리의 사순절은 파스카 부활이라는 영생(永生)의 샘을 향해 힘차게 정진한다. 오늘 주일전례는 죽음의 체험을 통해 더욱 간절히 갈망하는 부활에 대한 찬미로 집중되고 있어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성취하실 부활을 예표하고 있다. 마치 아픈 뒤에 건강을 되찾듯이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새롭게 감격적인 기쁨을 누리게 되고, 우리를 위기와 곤궁에 몰아넣었던 고통의 순간까지도 소중하게 여기게 해준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다가오는 부활의 기쁨을 위해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제1독서의 에제키엘서는 마른 뼈들에 관한 환시내용의 결론부분이다. 마른 뼈들은 바빌론 귀양살이에 보내져 가까운 시일 내에 조국에 돌아올 희망이 완전히 말라버린 히브리인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오늘 전례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귀양살이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이 재건되리라는 것과 멀지 않아 조상들의 땅으로 되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돌려 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행위와 같은 것이다. 마른 뼈에 영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은 그 옛날 창조사업 때 생명의 영을 불어 넣어 주신 것과 같은 동작이다. "보내시는 당신 얼에 그들은 창조되어 누리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시103,30)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집단적 재건의 이 장면은 라자로의 부활로 예표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향하고 있다. 바오로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이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에제키엘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너희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리라."(에제37,14) 그런데 이미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느님의 성령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의 영신생명을 길러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신자들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생명의 능력 안에서 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하며 이것이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며 종말의 부활을 확증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죽음을 알리는 가족들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비통한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 죽음이 야기시키는 비극적인 내용과 실질적인 공포감을 느끼셨지만 또한 그 죽음이 마침내는 극복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그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시고자 하신다. 라자로의 병소식에 그리스도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무덤에서 돌을 치우라"는 말씀에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하며 의심을 품는 마르타의 대답에 그리스도는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확신시켜준다. 라자로의 부활의 기적은 곧 다가올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미리 상징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즉 라자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형이다. 오늘 복음의 정점은 마르타의 요구에 대한 그리스도의 장엄한 선포에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25-26절) 예수께서는 라자로를 부활시키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당신 스스로 부활하시고 또한 그 결과로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실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은 믿음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마르타에게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으신다. 마르타는 이때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이 믿음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안에 이미 부활을 현존케 한다. 마르타가 믿고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날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부활은 우리 삶 안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활은 죽음이라는 전 단계가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적은 죽음인 인생고(人生苦)와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여명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고 진짜 죽음인 영원한 영신적 죽음 곧 죄를 경계하고 피해야 함을 이 사순절에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날에 부활할 몸은 십자가의 세포로서 이루어질 것이고 부활때에 입을 만또는 십자가를 수놓아 짠 만또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수놓아 부활 때에 입을 만또를 짜도록하자. 사순절이 점점 깊어질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신비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상징성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로 상징화 되더니(사순3주일), 또 그분은 우리의 어둠을 밝혀주는 빛으로(4주일의 태생소경치유에 관한 이야기에서) 되었고, 오늘은 바야흐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서 라자로의 부활사건을 통해 부활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즉 주님은 먼 곳으로부터 점차 핵심에 가까워 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인생의 나약함과 덧없음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시35,10)라고 노래하고 있다. 우리의 사순절은 파스카 부활이라는 영생(永生)의 샘을 향해 힘차게 정진한다. 오늘 주일전례는 죽음의 체험을 통해 더욱 간절히 갈망하는 부활에 대한 찬미로 집중되고 있어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성취하실 부활을 예표하고 있다. 마치 아픈 뒤에 건강을 되찾듯이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새롭게 감격적인 기쁨을 누리게 되고, 우리를 위기와 곤궁에 몰아넣었던 고통의 순간까지도 소중하게 여기게 해준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다가오는 부활의 기쁨을 위해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제1독서의 에제키엘서는 마른 뼈들에 관한 환시내용의 결론부분이다. 마른 뼈들은 바빌론 귀양살이에 보내져 가까운 시일 내에 조국에 돌아올 희망이 완전히 말라버린 히브리인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오늘 전례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귀양살이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이 재건되리라는 것과 멀지 않아 조상들의 땅으로 되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돌려 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행위와 같은 것이다. 마른 뼈에 영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은 그 옛날 창조사업 때 생명의 영을 불어 넣어 주신 것과 같은 동작이다. "보내시는 당신 얼에 그들은 창조되어 누리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시103,30)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집단적 재건의 이 장면은 라자로의 부활로 예표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향하고 있다. 바오로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이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에제키엘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너희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리라."(에제37,14) 그런데 이미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느님의 성령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의 영신생명을 길러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신자들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생명의 능력 안에서 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하며 이것이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며 종말의 부활을 확증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죽음을 알리는 가족들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비통한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 죽음이 야기시키는 비극적인 내용과 실질적인 공포감을 느끼셨지만 또한 그 죽음이 마침내는 극복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그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시고자 하신다. 라자로의 병소식에 그리스도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무덤에서 돌을 치우라"는 말씀에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하며 의심을 품는 마르타의 대답에 그리스도는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확신시켜준다. 라자로의 부활의 기적은 곧 다가올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미리 상징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즉 라자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형이다. 오늘 복음의 정점은 마르타의 요구에 대한 그리스도의 장엄한 선포에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25-26절) 예수께서는 라자로를 부활시키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당신 스스로 부활하시고 또한 그 결과로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실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은 믿음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마르타에게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으신다. 마르타는 이때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이 믿음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안에 이미 부활을 현존케 한다. 마르타가 믿고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날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부활은 우리 삶 안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활은 죽음이라는 전 단계가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적은 죽음인 인생고(人生苦)와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여명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고 진짜 죽음인 영원한 영신적 죽음 곧 죄를 경계하고 피해야 함을 이 사순절에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날에 부활할 몸은 십자가의 세포로서 이루어질 것이고 부활때에 입을 만또는 십자가를 수놓아 짠 만또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수놓아 부활 때에 입을 만또를 짜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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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123 연중 22주일(예레20,7-9; 로마12,1-2; 마태16,21-27)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22 연중 18주일(이사55,1-3; 로마8,35-39; 마태14,13-2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21 연중 21주일(이사22,19-23; 로마11,33-36; 마태16,13-20)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20 연중20주일(이사58,1-7; 로마11,13-32; 마태15,21-2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9 연중19주일(열왕19,9-13; 로마9,1-5; 마태14,22-3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8 연중 제17주일(1열왕3,5-12; 로마8,29-30; 마태13,44-5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7 연중 16주일(농민주일: 지혜12,13-19; 로마8,26-27; 마태13,24-4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6 연중 15주일(이사55,10-11; 루마8,18-23; 마태13,1-1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5 마리아론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4 연중 14주일(이동축일: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대축일)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3 연중 13주일(교황주일: 열왕4,8-16; 로마6,3-11; 마태10,37-4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2 남북 통일기원미사(신명30,1m5; 에페4,29-5,2; 마태18,19-2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1 연중 11주일(출애19,2-6; 로마5,6-11; 마태9,36-10,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10 연중 제 10주일(호세6,3-6; 로마4,18-25; 마태9,9-1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9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신명8,2-16; 1고린10,16-17: 요한6,51-5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8 삼위일체 대축일(출애34,4-9; 2고린13,11-13; 요한3,16-18)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7 성령강림대축일(사도2,1-11; 1고린12,3-13; 요한20,19-2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6 부활7주일(예수승천 대축일: 사도1,1-11; 에페1,17-23; 마태28,16-20)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5 부활6주일(사도8,5-17; 1베드3,15-18; 요한14,15-2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104 2002년5월 첫성시간; 성모의 밤 강론(2002.5.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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