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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예수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이 아기로 태어나신 신비 앞에 경탄하며 모여 있다. 이 신비를 바라보며 만일 우리가 스스로 커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높아지려고 떼를 쓰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성체성사의 잔치상에 초대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고 준비없이 참석한 것과 같은 것이다. 모든 아기의 출산은 주위사람들에 기쁨을 준다. 특히 그어머니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 태어난 아기가 주는 기쁨은 남다르다. "그의 어깨에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의 통치는 영원무궁할 것이며 정의가 꽃피는 그의 성대에 영원히 평화넘치리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선언한다. 이 아기는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평화, 정의와 구원이란 엄청난 대사가 구유에 누워있는 연약하고 무기력하고 가난한 갓난 아기의 양어깨에 메어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인간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세상은 상식으로 권력가인 체사레아의 아우구스또 왕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심어주리라고 생각했다. 왕 자신도 평화의 구원자요 군주로 자랑하였다. 강한자 군대를 거느린자 명령권자만이 타인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고 구원을 가져다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인간의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완전히 뒤엎으셨다. "하느님은 세상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어리석은 자는 선택하셨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자를 선택하신"(1고린1,27) 것이다. 지금 구유에 누워계신 이 가난한 어린 아기보다 더 약한 자를 누가 보았는가? 하느님은 이러한 징표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통해 이 신비를 드러내신다. 돈과 권력과 힘이 진정한 기쁨과 평화와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하느님께서 오늘 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신비에서 드러내준다. 주님은 언젠가 이 오묘한 신비에 대해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렇습니다. 아버지, 지혜롭다는 자들과 권세있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신비를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에게 나타내보이시니 감사합니다"고 찬미 드린 바 있다. 아기 예수님 앞에서 이 역설적 신비 앞에서 잠시 머물러 무의식 중에 우리 의식속에 자라난 힘과 권력과 황금의 잣대를 부수고 침묵속에 가난과 연약함의 위대성을 묵상하자. 이분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연약한 자를 이해하시기 위해 스스로 연약한 자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육화를 통해 우리 인간본성을 취하셨듯이,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성 대레오교황은, "오, 크리스찬들이여, 당신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신적 본성에 참여하고 있는 당신은, 무가치한 행동으로서 과거의 비천한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하고 각성시켰다. 또한 하느님의 육화는 하느님의 당신백성에 대한 사랑의 최대표현이다. 하느님은 성탄을 통해 우리 인류와 혼인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생명과 사랑의 깊은 잔치로 초대하신다. 하느님의 육화의 신비에 참여한 인물들은 누구인가? 마리아와 요셉과 목동들이다. 마리아가 동정의 몸으로 잉태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신비이며 아들 예수에 대한 놀라운 신비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음"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과연 무슨 일이 그 아들에게 일어날 것인지 하느님은 그를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인지 등에 대한 모든 장래의 일에 대해서도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마리아의 겸허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성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성려으로 잉태하였다는 전대미문의 사실을 신앙으로 받아들였으니 성요셉의 겸덕과 믿음도 경탄할만하다. 이제 우리는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모으자. 고사리와 같이 작고 예쁜 손은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셨던 손이다. 지금은 고사리와 같이 나약한 모습으로 피조물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계신다. 아기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자. 이 시선은 우주를 꿰뚫고 인간의 마음과 골수를 투시하시는 천리안으로서 지금은 천진난만하고 청초하게 사랑 가득히 머금고 나의 시선을 기다리고 계시다. 아기 예수의 입을 바라보자. 이 입은 참된 행복의 길과 진리를 토해내실 입이며 불의를 질타하시는 정의의 포문이 되실 것이다. 지금은 다만 봄눈도 녹여낼 사랑의 미소가 넘치고 있다. 온 세상을 입혀주고 먹여주시는 우주의 주재께서 지금은 벌거숭이가 되어 보드라운 살을 드러내고 피조물의 도움을 기다리고 계시다. 이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분노와 복수심으로 들끓던 우리의 마음이 봄눈 녹듯 녹아버리고 미움과 질시의 시선으로 이웃과 불목하던 우리의 마음을 평화의 대화의 장으로 인도할 것이다. 오늘 예수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기쁨과 평화이니 분노와 불목과 안좋았던 과거의 언짢은 기억들을 모두 연기처럼 날려버리고 이웃과 화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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