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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것은 인류역사의 중심사건이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 위에 그리스도교는 기초를 두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 믿음은 사도들의 목격증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뵈었고 부활하신 그 분의 말씀을 들었고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했으며, 토마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늑방에 직접 손을 넣어보기까지 한 목격증인인 것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마지막 순간에 도망쳤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듣고 다시 모였고 다시 모인 그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단순한 환시가 아니라 육신 부활의 뚜렷한 증거였으니, 사도들은 이렇게 체험한 사실을 피로써 용감히 증거하였던 것이다. 목격증인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신빙성이 있고 권위있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들은 그 이후의 수많은 학자, 성인성녀들이 따를 수 없는 사도단의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40일 동안 밤낮을 기리지 않고 도시와 시골에서 집안 혹은 바깥에서 때로는 호수 기슭에서 또 때로는 산 위에서 개인에게 또는 500명의 군중 앞에서 나타나셨다. 이로써 그 분의 부활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일 먼저 그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다음으로 제자들에 앞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여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을까? 어머니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는 자리 곧 성체성사를 세우시는 자리에는 성모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부활하신 주님은 어머니에게 먼저 나타나셨음도 주목해야 한다. 성체성사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인 주교 및 사제들에게 주시는 성사인데 반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는 은혜는 그 분께 대한 신덕과 사랑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님 부활을 끝까지 의심없이 믿으셨던 분은 오직 성모 마리아 한 분뿐이었으니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뵈올 수 있는 특권은 성모님께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주님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죄녀로서 가장 주님의 죄사함의 은총을 많이 받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주님께 대한 은혜에 감사한 나머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채로 닦아드리며 사랑을 표현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까지 찾아와 울며 통곡하여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 목격증인들인 여인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예수님은 먼저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그 여인들의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은, “주님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여인들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내형제들”은 물론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다. 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실까? 갈릴래아, 그곳은 고기잡던 어부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유서깊은 곳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 낚는 어부”로 다시 부르시는 것이다. 오늘 독서는 구약의 7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거대한 구원경륜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복음이 결정적으로 구원사건의 절정에 우뚝 솟아 있고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간이 그리스도의 부활신학으로 종합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에집트 종살이에서 가나안 복지로 향한 행진은,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 구원에 이르는 파스카 행진이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사건으로 절정에 달한다. 이 희망은 장차 우리의 썩을 육신도 그리스도처럼 불사불멸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보증을 제시한다. 부활을 체험한 여인들의 비법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 발아래 동참했음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현장 도처에 드리워진 십자가의 수난의 현장에 동참하여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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