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마치 하느님과 인간이 경쟁상태에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서 하느님을 만유위에 공경하게되면 사람이 평가절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을 긍정하는 것은 곧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다.”(사르뜨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의해 인문주의 즉 휴매니즘은 오로지 인간을 긍정하기 위해 하느님을 배제하고 인간끼리 잘 살아보려고 현대판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하느님의 그늘에 사는 것을 자유에 대한 구속으로 여기고 하느님으로부터 해방되고자 아버지께 떼를 써서 얻어낸 자기 몫의 유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등지고 방탕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인간은 하느님의 신권에 도전하여 시험관 아기를 만들어내고,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고, 인간생명을 실험실에서 마음대로 만들어 체세포를 떼어 내어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사용하려 하고 있다. 산 사람이 살기 위해 태아의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생명보호에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는 태아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현대는 하느님의 신권을 무시한채 살아있는 인간만을 추켜 세우고 있다. 과연 하느님을 도외시한 인간존중이 가능할까? 오늘의 말씀전례는 하느님을 외면한 인간존중은 허구이며 하느님을 만유위에 공경할 때 인간의 존엄성도 되살아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어느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네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하시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권고사항이 아니라 명령이다. 하느님을 사랑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어떻게 드러내야하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지시하시는 법규정과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항상 첫 자리에 하느님을 모셔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품위와 위대성의 근거도 바로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더 중요하다는 구실로 인간이 잊혀지거나 옆으로 밀려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비록 두 사랑이 서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식으로 – 두 사랑은 서로간에 교차되며 서로를 요청한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 종교이다. 또 오로지 이웃만을 사랑한다는 것도 –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 그것은또 다른 의미에서의 우상숭배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꼐서 가져오신 ‘새로운’ 크리스찬적 가르침이다. 이 두 계명은 최상의 계명이요 모든 예언서와 율법서의 골자이다.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훨씬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희생제물보다 당신 말씀을 따르는 것을 더 즐겨하시기 때문이다. 즉 보다 참된 예배는 하느님과 인간을 다 같이 사랑할 때 이루어 진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떨어지기 쉬운 잘못은 종교적 행위를 마치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그 행위를 하느님께만 국한시키려 하는 데에 있다. 즉 이웃사랑과는 별도로 하느님께만 충실하면 옆에서 이웃이 굶어 죽어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간에 의무적 사랑은 무시한채 하느님께 대한 경건성과 경배행위에만 몰두하는 것 등도 균형잃은 신심행위이다. 율법학자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들었고, 예수께서는 그 율법학자의 자세를 받아들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하신다. 가까이 와있지만 아직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남아있다. 그것은 알고 있는 바를 실행하는 것이다. 신앙은 아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제 2독서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제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봉헌하신 당신 희생을 통하여 무엇이 ‘참된 예배”이며 사랑인지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다. 즉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심으로써 영원한 대사제요,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써 완전하고도 흠없는 제사를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동물의 피로서 바친 제사라서 반복적 제사가 필요하였지만 신약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바치는 흠없는 제사이므로 단 한번의 제사로써 완전한 제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즉 십자가의 세로대는 하느님께 대한 수직적 사랑이요, 가로대는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데 하느님과 인간의 수직적 사랑이 바로 서야만 이웃간의 수평적 사랑도 그 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거꾸로 인간끼리의 수평적 사랑만 강조하다보면 수직적 사랑의 세로대가 쓰러지게 되어 따라서 수평적 사랑의 가로대도 제자리를 잃게 된다. 그런 경우는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심단체가 친목단체로 변하다 보면 하느님을 소홀히 하게 되고 그렇게 인간끼리의 친목을 도모하다보면 오래가지 못하고 성거워져 그 단체는 소멸되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하느님 사랑의 첫 계명이 올바로 지켜질 때 인간세상의 질서도 바로 잡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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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3-22-사순 2주간-토-미카7,14-20; 루카15,1-32 Stephanus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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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주일, (대)축일 강론 3월 19일 -성요셉대축일-천주성삼수도회 창립기념일 Stephanus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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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3-17--사순2주 월(루카6,36-38) Stephanus 2014.03.12
751 주일, (대)축일 강론 2014-3-16-사순 2주일(창세12,1-4; 2디모1,8-10; 마태17,1-9) Stephanus 2014.03.12
750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3-15-사순1주 토(마태5,43-48) Stephanus 2014.03.12
749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3-14-사순1주 금(마태5,20-26-성시간 Stephanus 2014.03.12
748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14-3-13-사순1주 목(마태7,7-12) Stephanus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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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3-11-사순1주 화(마태6,7-15) Stephanus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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