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0.04.04 06:10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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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

(이사 50,4-7; 필리 2,6-11; 마태 26,14-27,66)

 

성지주일 강론을 할 때에는 긴 수난기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첫 두 독서를 수난기의 들러리처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길에 들어서서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고모든 인간들의 모욕과 수모를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스스로를 비우시고” “낮추시어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어 모든 역사의 주님이 되게 하신다. 이 사건은 역사의 무대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만(“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는 이 사건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한 자락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증명한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비극을 한눈에 보여준다. 하느님은 얻어맞고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고 가장 낮은 지경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이제부터는 마태오수난기에서 핵심주제들을 모아보자.

 

1. 최후만찬. 예수님이 맞게 될 성체성사적인 희생제사는 자기를 팔아넘길 배신자를 지목한(26,25)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즉 예수님은 수난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3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는 여기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가장 먼저 여기에 해당한다(26,30-35). 예수님은 홀로 고독하게 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가장 아끼던 제자들조차 죽음을 앞둔 스승이 괴로워할 때 잠이 들었겠는가. 이 수난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스승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없다(“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요한 13,36). 세상의 죄를 뒤집어쓰고 성부와 단절된 고독함 속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까?(여기서 잔이란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 진노의 표상이다.) 그러나 이미 최후만찬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은 이는 성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서기꺼이 그 잔을 받아들인 것이다.

 

2. 배신과 사형선고. 첫 번째 배신은 조직 내부에서 일어났다. 스승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차 교회의 반석이 되고 교회의 대변인이 될 제자가 대놓고 스승을 부인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체제를 향해 독설을 날리기를 서슴지 않고 종교지도자들을 심심치 않게 도발하던 젊은 예언자가 과연 이스라엘이 수천 년 기다려온 메시아인가 하는 의구심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두 번째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겁이 났던 것이다. 두 번째 배신은 동족으로부터 온다. 그들의 생각에는 자신을 메시아요 세상의 심판관이라고 자처한(26,63-64) 이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정치적인 메시아 상과 부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막판에 예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무참히 깨트렸기 때문이다. 유다스가 유다인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예수님을 배신한 것처럼, 유다인은 이방인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그를 로마체제에 넘겨주었다. 이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배반하여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넘긴 것이다. 이방인이었던 빌라도 앞에서 벌인 규탄대회는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중재(성서적 계시를 통한)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었던 예수님은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는 질문에 입을 다문 것이다. 자신의 운명의 물꼬를 멈추게 할 수도, 다른 데로 틀게 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수난이 완성되기를 바랐던 성부가 그를 떠나간 후”, 세상의 조롱에 둘러싸인채 그는 마지막 절규를 내뱉은 후 죽음의 잠으로 빠져든다.

 

 

 

 

 

 

3. 최후심판. 오로지 마태오복음사가만이 십자가사건을 기술하면서 다양한 종말론적 색채로 단장한다. 어둠, 지진,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남(그러나 오로지 예수의 부활 이후에야 무덤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희생제사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성전 휘장의 찢김 등등. 십자가는 세속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세상의 끝을 고한다. 모든 민족들이 십자가를 보러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30; 묵시 1,7). 바로 이 자리가 최후심판의 자리이다(“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요한 12,31). 마태오수난기는 이 최후심판을 단순히 종말론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죽음과 저승의 문이 활짝 열리고(묵시 1,18) 그를 믿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결국에는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에페 2,6).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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