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6.03.11 08:51

2016-3-12-사순4주 토(요한7,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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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4주 토(요한7,40-53)

 

 

예수님을 두고 군중들은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예언자” 혹은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수는 없지 않는가?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고 주장한다.

사실은 그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출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하느님의 때(kairos)가 된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때와 하느님의 장소가 있다. 그리스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춤형 메시아로 오신 분이다. 이제 그 때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 등장하는 인물들은 엑스트라들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을 바로 알게되면 인생이 달라진다. 인생 최대의 중요한 질문이 “예수님은 누구신가?”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게되면 나를 바로 알게되고, 인생이 달라진다. 복음이 복된 소식인 이유가 복음복음에 나오는 인물 들 중 대부분이 인생 낙제생들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고 영생을 얻었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가장 기쁜 소식인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고 파견한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고 문책한다. 그들은 그 이유를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그들의 변명은 그저 말하는 솜씨에 놀란 정도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신앙대상인 그분을 그 정도로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의회의원 중의 하나인 니코데모는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고 유다인들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그런데 니코데모는 의회의원으로서 요한3,5에 밤중에 예수님을 살짝 찾아와 동문서답을 했던 ‘밤의 사람’이다. 그의 변호는 예수님께 우호적이기는 하나 믿음의 태도는 아직 아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는 나의 과거를 알아맞춘 예언자를 만났소.”하고 용감하게 복음을 증거한 ‘낮의 사람’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니코데모와 같은 신앙은 박해의 회오리바람이 불 때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숨는 밤의 신앙이다.

유다인들은 니코데모에게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요?”하고 당치 않다는 듯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하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갈릴래아는 과거 솔로몬 시절에 티로의 히람왕이 예루살렘성전 짓는 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므로 고마움의 표시로 당시에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갈릴래아 땅의 20개 성읍을 선물하였다. 그때 히람왕은 쓸모없는 땅이라하여 ‘카불의 땅’이라고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 후로 갈릴래아는 이민족의 갈릴래아로 천대받는 땅이 되어 국경지역인 그곳 주민들이 세금은 양쪽에서 착취해가고 혜택은 서로 미루는 천대받는 지역이 되어왔다.

그런데“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9,1; 마태4,15-16)라는 메시아 예언이 선포되고 드디어 예수님이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심으로써 메시아의 고향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낮은 데로 임하신다.

오늘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고난과 역경 중에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영혼들이여, 이민족의 갈릴래아처럼, 언젠가는“쨍하고 볕들 날 돌아온단다.” 힘내세요.

 

 

 

.........................

사순절에 읽혀지는 복음은 마치 사냥꾼들이 목표물을 미리 앞에 처놓은 그물망으로 몰아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공생활 초기에, 당시 타락한 대사제를 비롯한 사두가이파들의 성전문화를 정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시자, 사두가이파와 대사제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께 복수를 칼을 갈게 되었고, 사두가이와 반대세력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추이를 관망하면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같고 살피다가, 예수님이 안식일법 위반과 손씻는 예절 등의 형식적인 율법을 위반하면서 자기들의 가식적인 율법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시자 그들도 등을 돌려 마치 이이제이원칙처럼 예수님을 반대하는 데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코너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때로 위험할 때 자리를 피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제 바야흐로 예수님은 적들에게 드러나게 행동하신다. 그것은 이제 하느님이 정하신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죽을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때에 그리고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을 수 없다고 하신다. 그것은 당신이 예루살렘 성전에 인류죄를 위해 어린양의 번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이다.(히브리서참조)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저들은 독성죄라고 하면서 죽이려고 한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자 유다인들의 최고의회인 산헤드린 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내리면서 대사제인 카야파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논리를 편다. 그의 악의가 숨겨진 말이지만 예수님이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예언한 셈이다. 이는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끌어내시는 하느님이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예루살렘이 이렇게 험악한 죽음의 소굴임을 뻔히 아시는 예수님이 스스로 찾아 들어가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환호하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지상왕국을 꿈꾸며 어깨가 으쓱했겠지만 예수님은 지금 죽으러 들어가시는 것이다. 이렇게 동상이몽하였기에 예수님의 겟세마니동산에서의 체포 후에 제자들은 모두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광야에서 40일 엄재수난하실 때 마귀는 예수님께 돌이 빵이 되게하는 기적으로 유혹하였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봐라. 하느님이 천사를 시켜 네발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고 했지 않으냐?’며 유혹하였었다.

말하자면 마귀는 예수님께 십자가 없는 구원을 하라고 유혹한 것이다. 예수님은 돌들로도 빵을 만드실 수 있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는 분이기에 마귀의 유혹은 더욱 큰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요구하셨기에 마귀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아버지 뜻에 따라 죽음의 소굴 예루살렘을 향해 스스로 찾아 걸어가시고 있다.

우리도 자주 십자가 없는 편한 수도생활의 길과 십자가를 통한 수도생활의 길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가 종종 있다. 어느 길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인가를 먼저 기도하고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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