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6.02.11 16:59

2016-2-12-재의 수요일 다음 금(마태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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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다음 금(마태9,14-15)

 

 

하루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질문을 하는 요한의 제자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함을 엿볼 수 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스승인 요한보다 낫다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시샘이 발동하여 시빗조의 질문을 던진 것이다. 언젠가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하고 시비를 건 적도 있었다.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다 같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점에서 일치하므로 함께 합세하여 시비를 걸어온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정곡을 찔러 답을 하신다.

단식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들은 율법의 규정을 단순히 지키기 위한 단식일 뿐, 오늘 1독서의 이사야서의 지적처럼,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단식한다고 자랑하기 위한 형식적인 단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의 스승인 요한의 말로 답을 하신다. 요한은 삶의 모든 희망을 그리스도께 있다고 가르쳤다. 요한은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요한3,29)고 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로서의 인류의 희망이요 기쁨이 바로 앞에 계신 예수님임을 너희 스승인 요한이 너희에게 가르쳐왔지 않았느냐?’고 묻는 듯하다. ‘그런데 너희는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질문이 숨어있다.

단식의 참의미를 살펴보자. 단식은 자기 자신 안에서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 씨앗, 곧 교만과 허영심, 무절제한 애정과 욕망을 억제하고 하느님이 본래 품부하여주신 선성의 고결함과 균형잡힌 사랑을 되찾는 행위라 할 것이다.

창세기 3장에 사탄이 거짓말로 하와를 부추겨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느님처럼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된다고 유혹하자, 그 말을 듣고 하와가 바라보니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보였다.”고 하였다. 이미 하와의 마음 속에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욕망이 파도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욕망은 죄를 낳았고 죄가 장성하여 죽음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 죄성이 아담의 후예인 우리 인간 안에 유전인자로 전해지고 있다.

단식은 바로 이러한 사탄이 준 무절제한 욕망을 제어하고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품성을 회복하는데 있다. 단식은 물질적 단식만이 아니라, 영신적 단식도 포함된다. 즉 TV관람이나, 취미생활, 오락, 여행을 즐기는 것, 내 뜻대로 욕심 채워하는 일들을 주님을 위해 절제하고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훌륭한 영신적 단식이요 육신적 단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40일 광야에서의 단식 중에 마귀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3라운드 모두 KO승을 거두셨다.

우리도 육신적 단식만이 아니라 영신적 단식을 통해 사탄의 집요한 유혹과 맞서 싸워 이기도록 말씀을 실천할 용기를 내자.

...............................

 

 

<<그리스도의 내적 고통에 대하여>>

아직까지 교회에 2000년 동안 알려져 온 고통은 외적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외적 고통은 인간이 준 고통인데 반하여, 그리스도의 내적고통은 하느님이 주신 고통으로 힘줄 한 가닥까지 스며드는 고통이요 강생하신 순간부터 시작하여 생애동안 계속되었던 고통이다.

외적 고통은 성목요일 밤부터 성금요일 십자가에서 운명할 때까지 24시간동안 겪으신 고통일 뿐이다. 외적고통은 인간이 준 고통이므로 살 속까지 스며들거나 내부까지 파고들지 못했고, 외적고통의 가시는 뽑아낼 수도 있고 손발에 박힌 못을 뽑아낼 수도 있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내적고통은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살과 피가 되었고 내부 속속들이 스며있어 살아있는 한 제거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외적 고통은 내적고통에로 초대하는 역할을 하였다.

외적고통은 내적고통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 잔을 제게서 비켜지나가게 해주십시오.”하는 겟세마니의 기도에서 이 잔은 내적고통을 의미한다.

첫 인간으로부터 마지막 인간까지 모든 인류가 범하는 모든 죄가 차례로 예수님 앞에 다가오며 각각 “하느님께 죽음을!”하는 인장을 달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 모든 죄의 극단적인 흉악성을 사무치도록 절감하게 된 것이다. 모든 죄가 칼로 무장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다가오는 것이다.

죄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갈 때 예수님께 위로가 된 유일한 인물이 있었으니 마리아 어머니였다. 바로 이 어머니가 예수님을 죽음의 공포에서 지탱해주셨다. 엄마 안에 하느님의 뜻의 생명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넘어졌을 때 엄마와 시선이 마주치면서 엄마 안에 있는 하느님 뜻 생명이 도와주어 예수님은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수 있었다.

외적고통은 그리스도의 내적고통의 무한한 바다로 들어가는 문이다.

죄의 깊이와 몸서리치도록 흉악함을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서 아시고 고통스러워하셨다. 인간은 죄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므로 죄에 대해 겁을 내지 않는다.

멜 깁슨의 "Passion of Christ"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신적 고통을 이겨내려니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 번째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듭니다.”(묵시21,5)하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당신의 내적고통에로 초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오른 쪽에 엄마인 마리아가 계시고, 왼쪽에 루이사와 그를 따르는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영혼들의 대열이 서 있다.

묵시록의 두 올리브나무가 이를 두고 말하며, 두 증인도 이를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구원을 위해서는 외적고통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느님 뜻의 나라건설을 위해서는 내적고통 즉 하느님의 생명이 필요했다.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뜻의 나라가 이제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에 인간의 생명이 참여하기 위하여(초성은혜).

묵시록에 새 예루살렘이 이 땅위에 내려온다고 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건설되는 하느님 뜻의 나라에 새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뜻 안의 삶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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