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도 그가 목수의 아들이며 그들이 잘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무시하며 오히려 언짢아 하였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을 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그 고을을 떠나신다.
예수님은 33년의 지상 생애동안 유다인들이 당신을 배척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모욕을 드린 죄 보속을 당신의 인성으로 다 기워 갚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주님은 아직도 모욕당하시고 계시다. 그 보속을 누가 할 것인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출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4,19)고 하였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1,24)고 하였다.
지금도 끊임 없이 하느님 아버지께 온갖 죄로 모욕을 드리는 인류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주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희생을 바쳐 줄 거룩한 산 제물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로마서에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할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12,1)라고 하여 예수님을 대신하여 인류가 아버지를 거스려 범하는 온갖 죄를 배상하기 위한 거룩한 산 제물의 제사를 받칠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우선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이에 간택되어 불림 받은 사람들이고 평신도 들 중에도 열심한 영혼들이 그 희생제사를 바치고 있기에 오늘날 이와같은 죄악 세상에도 하느님의 진노의 손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봉헌하고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당신 인성이 합일하여 우리를 통하여 희생제사를 성부께 바치시는 것이다.
수도자의 삶은 곧 주님께 봉헌된 산제물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