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0.07.25 15:36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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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

(2열왕 4,8-11.14-16; 로마 6,3-4.8-11; 마태 10,37-42)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살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고(37-39. 이는 또한 제2독서와도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이 자기에게 준 가장 작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면, 그 안에는 이미 값진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다(40-42. 1독서 참조).

 

1.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각오해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일하면서도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바로 유일하면서도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신다. “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길도 분명히 포함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는 분명 모든 위험을 각오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의 의미를 지시한다. 이것은 생과 사의 계속적인 순환을 암시하는 어떤 자연법칙을 의미하지 않는다(가령 윤회설 따위). 예수께서도 명료하게 표현하셨듯이 나 때문에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잃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나 숨겨진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2. 하느님을 위하여 살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2독서에서 바오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힐 때 거기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위하여 부활한 삶을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희망은 어차피 다시 얻을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 이기적이고 얄팍한 계산을 거부한다. 이런 얄팍한 계산은 노회한 사람”(alte Mensch)이나 하는 법이고, 이런 이기적인 생각이 곧 죽음에 해당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뜻이고, 거기에서 죽음은 아무런 힘을 못 쓴다. 그리스도는 죄와 관련하여죽음으로써 세상에 대한 죄의 권세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죄의 권능을 단 한 번에 쳐부수셨다. 그분은 하느님을 위하여살고 있고, 세상을 모두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에 맞게 자신을 하느님께 전부 봉헌하신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살아야 하고, 세상을 모두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에 우리도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의 태도를 닮으려는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우리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자유롭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진정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3.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받아들임. 만일 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란 예언자일 수도 있고 의인일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잘것없는 제자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중에 보잘것없는사람 아닌 사람이 있을 것인가?) 받아들이거나 친절을 베풀게 되면, 그 사람이 받을 상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신선하게 들린다. 이 사실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나 이를 받는 사람 모두 알아야 할 사항이다. 친절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명의 은총을 어디에서나 베풀 기회와 능력이 있다.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제1독서에서 소개되고 있다. 한 수넴 여인이 엘리사 예언자에게 언제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 하나를 제공하였는데, 그 여인은 감히 바랄 수 없었던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데에도 아들 하나를 얻은 것이다. 구약에서 받은 물리적 보상이 이렇게 컸다면, 신약에 약속된 영적인 보상의 풍요로움은 얼마나 더할 것인가?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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