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0.07.25 15:40

발타사르 강론집 (가해) 연중 제1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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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이사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23)

 

1.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는 이해될 수밖에 없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배에 앉으신 채로) 군중들에게 비유 하나를 들려주신다. 농부가 뿌린 씨가 4분의 1만 좋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렸지만, 매우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왜 저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비교적 장황하게 대답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적어도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단초(Anfang)가 반드시 심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 단초를)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진다.”(12) 하느님을 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징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음이 무디어진 이나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22), 혹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이해하는 사람은 상징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심오한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면 뿌려진 씨는 말라버리고,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마저 앗아가 버린다(19).

반면에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은총의 덕분으로 이해의 단서(Ansatz)가 심어져있다. 과거에는 예수님의 설명으로 제자들이 이해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교회의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명하여 우리를 이해시키신다.

 

2. 이해하는 자는 복된 자다. 그러나 교회의 이해는 어디까지나 파스카 이후에나 가능하다. 물론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비유의 의미를 물어보았지만, 정작 그 참된 의미는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요 성령만이 그들에게 상징을 통해서 현실을 보는 법을 가르치실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런 이해 능력을 가진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들어있고 해산의 진통을 겪고 있지만 그 결실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심지어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탄식하고 있다고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속에 이해의 단초가 심겨있는 사람들 축에 속하지만, 명료한 진리를 희미하기만 한 상징 안에서 찾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우리는 세상 만물을 늘 보고 느끼고 늘 거기에 정신이 팔리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이 행여나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돌밭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면 어쩌나하고 언제나 마음을 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3. 나의 말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 비유의 말미에 보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의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체적으로 볼 때 수확은 풍성하게 얻어진다는 무조건적인 약속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질이 별로 좋지 않는 토양에서도 이윤을 내신다. 하느님에게 성인 하나는 믿음이 없고 미온적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든든한 일당백이다. 1독서는 이 사실을 매우 의기양양하게 전하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은 마치 비와 같아서 땅에서 씨가 움트고 뿌리를 내리게 하고, 농부에게 씨앗을 주고 먹을 양식을 마련해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만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애초에 계획하셨던 것 만큼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 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자의 십자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이 승전보와도 같은 달콤한 말에 심취만 해서는 안 된다. 그의 구원업적이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에 의해서 마치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들 마음속에 심어진 그분의 십자가는 메마른 이 땅에 충분히 비를 뿌릴 것이다.

 

역자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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