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03.08.16 09:44

연중 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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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1주일(여호 24,1-18; 에페 5, 21-32; 요한 6,61-70), 오늘 복음에서 연 5주째 계속되는 성체신비에 대한 말씀의 결론부분이 선포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군중들은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 들을 수 있겠는가?” 하고 주님을 떠나간다. 주님의 기적을 눈으로 지켜보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곁을 떠나니 주님의 모든 일이 실패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이것 큰일 났구나. 방법을 바꾸어야 되겠다’ 하고 당신 말씀을 취소하신 것이 아니라, “내 말이 귀에 거슬리느냐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시며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때부터 많은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으며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보시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단호하게 물으셨다. 이는 소위 ‘갈릴래아의 위기’라 할 만하다. 다 떠나고 나면 주님의 일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감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안다는것’보다 앞서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앎을 생기게 해준다. 그래서 성 안셀모도 “알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다. 베드로는 이미 마태오16,17에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에게 그것을 깨우쳐 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인식의 기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믿음임을 알 수 있다. 성체도리는 이와 같이 군중들이 알아 듣지 못하고 떠나갔고 제자들 마져도 떠나 갈만큼 알아듣기 어려운 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알아듣기 힘든 성체도리를 외둘러 표현하거나 취소하지 않으시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단호하게 표현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이 한때는 식인종으로 오해 받고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도 주님은 이 주장을 포기하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성체도리야말로 우리 가톨릭 신앙의 핵심부분이요, 우리 구원의 갈림길이 되기 때문이다. 미사 중에 우리는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먼저 발한 다음에 성체를 영한다.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못 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알아듣기 힘든 성체성사를 세우셨을까? 구약의 제사는 제관인 사제가 돌 제대에서 짐승의 피로써 바친 속죄의 제사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신약에 와서 바친 십자가의 제사인 성체성사는 그리스도 자신이 제관이 되시고 제단이 되시고 짐승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살과 피를 제물로 하여 바친 최상의 제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성체성사는 그 효과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속량하는 효과에 지나지 않으나, 신약의 성체성사의 효과는 속죄와 아울러 永生의 효과를 얻는 지성한 성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를 통해 소극적으로는 인간구원과 죄에서의 해방,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하느님과의 일치, 즉 우리가 성체를 배령함으로써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즉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음식은 체내에 들어가면 우리 살과 피로 변하지만, 그리스도의 성체는 우리 몸에 들어오면 거꾸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매일 성체를 모실까? 천국행 인생여정에는 때로 힘들고 지칠 때에 보약이 필요하다. 인간 오욕의 불을 끄고 7죄종(교오, 간인, 미색, 탐도, 질투, 나태)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체의 치료약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성체를 영한 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성자가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되셨듯이 우리가 영성체 할 때 성자가 우리 몸에 잉태되는 것이니 성모님처럼 우리도 세상에 그리스도를 낳아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즉 말씀을 육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성체의 은혜는 무한하나 받는 사람의 신덕의 그릇 준비 여하에 따라 받는 은총의 양도 다르다. 우리는 성체를 영한 후 먼저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성체성사를 감사라는 뜻을 지닌 Eucharistia 라고 한다. 또한 성체를 영한 다음에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빵이 그리스도로 변하듯, 우리도 그리스도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민족통일이 한 발짝 다가온 느낌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민족통일은 어떻게 실현될까? 총칼로써 민족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지극히 막연하고 어려운 일이다. 다만 성체의 삶이 곧 민족통일의 지름길이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가톨릭에로의 개종기에 보면, “가톨릭정신이야말로 이 나라 이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개종한다.” 고 밝히고 있다. 통일로 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은 그리스도정신뿐, 그 핵심인 성체의 삶인 것이다. 우리 모두 성체를 닮아 사랑이 되어 빻아지기를 원하고 남을 위해 먹히우는 빵이 되기를 원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부모가 자녀원망 자녀가 부모 원망하는 풍조도 사라지게 될 것이요, 남의 탓을 부르짓던 세상풍조가 바뀌어 조용한 가운데 내 탓임을 뉘우치는 자기혁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제자들에게 하셨던 질문을 새롭게 던지신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이질문은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서에서 백성들을 향해 야훼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어떤 신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요구한 질문과 흡사하다. 이에 대해 백성들은, “우리가 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우리도 야훼를 섬기겠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4, 16-18)고 외친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또한 베드로와 같이 용기있고 신념에 찬 신앙고백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고 고백하자. 제 2독서에서 남녀간의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로 상호헌신과 예속의 신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그저 단순히 본받아야 할 모델로서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특히 남편과 아내가 상호 신뢰심을 가지고 기쁨과 순교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폐쇄적 태도와 또한 남자 여자 모두의 마음에 항상 뿌리박고 있는 이기주의적인 모든 태도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힘을 항상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 제시된다. 오직 이와 같은 성체의 삶으로 서로 봉사할 때, 크리스찬적 혼인은 오늘날과 같은 위기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고 사회와 교회를 쇄신 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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