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14.02.15 14:42

2014-2-16-연중 6주일-집회15,15-20; 1고린2,6-10; 마태5,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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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일-집회15,15-20; 1고린2,6-10; 마태5,20-37

 

오늘 독서들 간에 율법과 그 율법을 표현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계명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지 않으시고 완성하러 오셨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질문이 제기된다. 복음과 율법은 서로 대립하는가? 아니면 상응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는 사사건건 율법학자들과 대립하는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은 율법에 관한 개념들(, 증거, 계명, 규정, 언약, 말씀, 판단, )로 구성되어 신적계시에 대한 감동적인 찬양으로 가득차 있다.

하느님의 법은 그러나 통속적인 도덕적 가르침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금욕주의적 스토아철학도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 요구하는 지혜의 법이요, 그래서 시편작가는 하느님의 묘한 법을 깨닫고 성실히 지킬 수 있는 의지를 청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1독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한 윤리성의 근원 자체에 대한 집회서의 사상을 전해준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내놓으셨다. 자유를 가진 인간은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

생명의 길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주는 하느님의 법을 받아들여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요, 죽음의 길은 그 하느님의 계획을 거절함으로써 멸망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법은 인간 내면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인식 없이는 외적형식에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계명을 형식적 계율화한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관념을 고쳐주어 율법과 계명을 주신 하느님의 본래의 입법취지를 재해석해 주신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이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 속으로 형제를 죽이기를 계속할 수 있다.

즉 행동으로 살인을 금할 뿐이라고 해석하고, 마음 속의 미운 감정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뀌지 않은 채 남아있다면 그는 마음으로 형제를 여전히 살해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행동으로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말로써도 행해지지 않는가?

여기서 나열한 복음의 율법조항은 그 조문의 문자해석에 연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정신과 입법취지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의 생명력을 되찾을 때 그 법은 시편 1편의 찬양처럼, “당신의 법은 생기를 도와주고 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 냇가에 심어진 나무같아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제 때에 열매를 푸지게 맺으리라.” 그러므로 이미 이 법은 복음이요, 은총이요, 생명의 말씀이 된다. 그리스도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흔히는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율법을 무시한다고 오해하였지만, 반대로 그리스도는 율법을 없애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언급하신다.

율법의 완성은 완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법의 뜻을 충만하게 채워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율법과 예언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구약 전체를 종합하고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 이루어질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이 단지 그저 구약 율법의 단순한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느님의 법안에 감추어진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것이 예수님의 재해석의 의도가 있다.

모세는 하느님의 대변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데 그쳤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장엄한 말씀형식으로 새로운 입법자요 계시자,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신다.

산상수훈전체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이 장엄한 말씀 형식은 곧 그분의 메시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율법의 의미를 얄팍한 궤변술로 약화시켰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외면성과 내면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율법의 원초적 의미를 되살려냄으로써 율법이 인간의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생명력을 부여하는데 입법자이신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드러내주신다.

외적행동과 속마음이 갈라짐 없이 한결같아야함을 강조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정의의 법은 이중적 인간성을 거부하고 내면에 성실한 꾸밈없는 새 인간 창조 즉 밤낮으로 주님의 법 묵상하고.... 이 마음 다하여 지키리이다.” 하는 천명을 마음을 다해 지키려는 성지자(誠之者)의 자세로 참된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복음이다.

이어 나오는 예들은 계명 준수는 마음에 근거하여 뿌리를 내릴 때만 참다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 외적 살인행위 못지 않게 인간내심의 미움, 증오, 악담이 또한 완전한 살인이 될 수 있다.

혹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는 율법을 약화시켰다고 오해하기 쉬우나, 그러나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한 재해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히려 더 엄격하고 근원적이다.

2독서에서는 복음은 하느님께서 천지창조이전부터 미리 마련해 감추어 두셨던 지혜라고 바오로 사도는 감탄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새로이 부과한 율법을 성취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율법을 가르칠 때 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은총으로 가르치시며,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깨닫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성실히 실행할 마음을 주시고 또한 실제로 실행하도록 해주신다. 즉 그분의 가르침은 하고자하는 본성적 능력만이 아니라 원의 그 자체와 원의의 활동까지도 도와준다.”(LPL44,359)고 하였다.

하느님의 법 준수가 어렵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 의탁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허느님의 성령께서 은총의 힘으로 악에 대한 경향성을 이길 힘도 주시고 선을 완성하도록 이끌어주신다. 다만 우리에겐 誠之者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화답송 시편에도,

당신의 규정을 지키기 위하여 제 걸음이 꿋꿋하게 하여 주소서. 은혜를 내리시와 당신 종을 살리시고, 당신의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제 눈을 열어주소서. 당신 법의 묘함을 저는 보리이다. 주님, 계명의 길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저는 그대로 끝까지 따르리이다.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의 법을 지키게 하소서. 이 마음 다하여 지키리이다.”라는 자세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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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옛사람들에게서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형식으로 말씀을 하신다. 이렇게 권위있게 말씀하실 분이 에수님 말고 누가 있는가?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바로 그분임을 증명한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간의 계약조건이었다.

즉 그들이 하느님이 제시한 율법을 지키면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 된다는 계약조건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일종의 한시적인 입법조치였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임시조치법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사회 규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법자이신 예수님이 오시자 율법은 당연히 예수님께 자리를 양보해야하는 것이다. 즉 입법의 정당한 해석권자인 예수님은 율법의 근본취지를 가르치실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율법의 형식적 조항들을 들이대며 안식일법을 위반하였느니, 정결예식(손씻는 예절)을 위반했느니 하며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은 다분히 본래의 율법취지를 망각한 채 형식적인 조항만을 고집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올가미로 악용하였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혹세무민하는 악폐를 날카롭게 지적하시고 일부러 안식일법을 형식적으로 위반하는 실례를 범하면서 그들에게 안식일법의 근본취지를 가르쳐주시고 계시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율법을 위반한다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설명하신다.

그런데 바오로사도는 율법의 한계성과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음을 탄식하며(로마7) “오 참으로 나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함정에서 건져낼 수 있으리오?”하며 탄식하였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공로로 우리 인간의 죄성에 기우는 나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속죄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의 은혜로 성화의 길이 열렸음을 감사하며 로마8(1)에서는 승리의 개선가가 울려퍼진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주로 외적인 범죄를 다루었으나 예수님은 내면적인 죄를 중요시한다. 살인하지 마라는 율법규정을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조차 살인죄의 가능서을 시사하며, 간음의 결과만이 중요했던 구약의 율법과 달리, 내적으로 음란한 생각자체가 벌써 간음죄를 범했음을 경고하신다.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듯이 예수님은 보다 완전한 마음의 성결함을 요구하시고 하느님처럼 거룩함을 지향하여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써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완전한 천국시민이 되는 길로 안내하고 게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예수님의 내적 법정의 그림자요, 미완성 교향곡이며 그리스도야말로 구약 율법의 실체요, 완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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