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축일 강론
2022.10.02 06:38

2022년 10월 2일 연중 제 27주일(군인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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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을 가족같이! 신자들 가정에 평화! 


오늘 독서와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주제는 믿음과 삶입니다. 믿음은 믿음으로되 삶이 없는 믿음은 믿음의 효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는 당연한 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인간적인 눈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삶의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깨닫고 참된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큰 힘을 지닙니다. 참된 믿음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줍니다. 


오늘 제1 독서는 ‘믿음’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또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그대가 받은 훌륭한 보화를 잘 간직하시오”라고 말하는 제2 독서의 말씀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 원칙으로 삼으시오”라는 2독서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내용은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을 강조하시며 믿음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보수를 요구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선의에 맡기는 참다운 삶을 일러주십니다. 참된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의 결실입니다.


신앙인의 참된 태도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는 믿음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믿음의 결실은 사랑과 진리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사랑과 진리를 떠나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결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처사입니다. 


믿음은 사랑과 진리를 그 내용으로 합니다. 사랑 없이 생명은 유지되지 못합니다. 신앙인은 타인의 억압으로 아니라 스스로 자원하여 사랑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드림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스스로 하느님의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 진리와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을 외면했을 때 겉만 신앙인이고 속으로는 신앙인이 못됩니다.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했다하여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은 참으로 자신의 신원을 확실히 파악하고 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증거는 진정한 마음에서부터 실천 생활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이 힘은 사랑과 진리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능력이기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과 진리 안에 삶이 아니고서도 세계의 평화는 가능할까요? 사랑과 진리의 삶이 아니고서도 우리 가정의 행복은 가능할까요? 믿음의 원천이신 사랑이시며 진리이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이 아니고서도 자신의 구원은 가능할까요? 


우리의 믿음은 형식이 아니고 겉치장이 아닙니다. 사랑이시고 진리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삶 자체입니다.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찬미와 영광을 가로채어 자신이 차지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어떤 찬사나 보수를 바라지 않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생활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전능의 힘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살기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믿음’과 ‘종의 신분’과 대조적인 말씀은 우리를 참다운 신앙인의 기본 인격으로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종의 신분’으로서의 참된 전환은 ‘자기 낮춤’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자기 낮춤’에서만 신앙의 명령에 순종이 가능해집니다. 


사랑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신앙인은 누구인가가 오늘 복음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 돌무화과나무를 바다에 심은 사람도 없고, 산을 바다에 던진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일은 하지 못하셨습니다. 돌무화과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는다는 오늘 복음의 표현이나, 산을 바다에 던진다는 복음서의 표현은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는 전달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금언대로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읍시다.


이번 한주간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며,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무상으로 내어 드릴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합시다. 믿음은 여기서부터 이루어질 것입니다.


                                                                                                                                   김형진 로무알도 신부(S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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