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04.26 20:21

부활2주간-수(사도5,17-26;요한3,16-21)

조회 수 2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 3,16은 소 복음이라고 할 만큼 복음의 핵심 요약문이라 할 것이다.

하느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을 찾아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인간을 위해 죄 없는 그분을 희생제물로 받으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무죄한 예수님의 피로써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게 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이토록 크시다는 내용이다.

하느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다라는 본문에서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죽어야할 우리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 오신 목적은 죄인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구원과 멸망의 두 갈래 길로 갈리게 된다. 구원의 문제는 행위로서 의인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다. 죄가 무엇인가? 원천적인 죄는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구원을 위한 기준은 도덕적인 의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서 먼저 판가름 난다.

미국비자를 발급받으려면 미국대사관에 가서 면접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미국 대통령을 인정하고 시민법을 지킬 것인가를 묻는다.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비자를 준다. 천국도 천국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천국법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킬 것을 서약하여야 천국에 입장시켜줄 것이다.

천국 왕이신 예수님을 받아드리지 않고 믿지 않으면 아무리 도덕군자요 억만금을 가진 부자라도 천국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 10억원을 가진 부자여야 한다거나 공자나 맹자나 부처님처럼 도덕군자로 명망이 있는 자라야만 된다면 진작에 포기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다만 하느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여야한다는 단순한 조건만 제시하신다.

믿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 자요, 이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격리되어 떨어져 나간 것과 같다. 분리되어 나가는 것 자체가 심판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데서 오는 소외감, 분리감이 곧 심판이다. 하느님의 심판을 면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행동은 묻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공경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함축적인 동의와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분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2,17)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현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선택한다. 빛으로 인해 자신의 악이 드러날 가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참된 진리와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빛으로 환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사탄의 거짓이 드러나게 되었고 악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악에 묻혀 살던 사람들은 빛을 꺼려하여 어둠을 찾아 빛을 피한다. 선과 악은 이질적이며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과거의 죄상이 드러나니까 이를 은폐하기 위해 빛을 치워버리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이다.

진리를 좇아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진리요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성인군자나 도덕가라도 예수님의 구원의 옷을 입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성화은총 없이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화의 과정에서 완덕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주변에 아직도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도덕군자라도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을 믿도록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그들의 영혼을 구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물론 불가승적 무지(不可勝的 無知)나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교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접할 수 없는 한계상황(예를 들면 이슬람교 국가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나 과거 그리스도교전래 이전의 우리 선조들처럼 예수님을 전해주는 선교사가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다가 죽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지 일반화시킬 수 없는 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너무 남용하여서도 안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이 없다.”(사도4,12)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이 불가능함을 하느님이 아시고 성자를 파견하시어 성자로 하여금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를 배상하도록 십자가의 모진 죽음을 허락하셨다.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감옥에 갇힌 사형수가 자기대신 죽어주러 친구가 왔다면 그것을 싫다고 거절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을까? 고맙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빌면서 그가 부탁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할 것 아닌가? 더구나 내대신 사형수가 되어 죽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 재산을 상속받으라고까지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아버지의 양자로 입양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부잣집 아들이 내대신 죽어주고 자기 집에 양자로 입양되어 재산까지 상속을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2중의 횡재가 아닌가.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미련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

하느님이 성자를 파견하시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다. “내가 보내는 아들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사형수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것은 곧 무죄석방이요 죽지 않는다는 특별사면이다. 또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하늘 아버지의 양자로 입양시켜 아버지 집에 거처하기 위한 예복을 입혀주는 것, 곧 성화은총을 거저 주신다는 것이다.

요한15장에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느님이 성자를 파견하시어 우리에게 죽음을 안겨준 사탄의 머리를 밟게 하셨으니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승리의 비결이요, 영원히 사는 비결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3가지가 있으니-(세례성사), (성체성사), 성령(진리)이 그것이다.

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체성사로 양육되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다. 이를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다. 따라서 무신론자, 불신자는 참으로 계신 하느님을 없다고 하니까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신 존재를 아주 쉽게 증명한 학자가 있다. 사막에 시계가 떨어져 있다. 이를 보고 누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으랴!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우주는 시계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렇다면 우주도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인정해야할 것 아닌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J.P. 사르뜨르가 폐부종으로 죽으면서 의사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죽었다. 아마도 그가 돌아갈 고향이 없게되자 저주하고 절망하며 죽었을 것이다.

석가, 공자는 예수님 이전에 태어나 하느님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얼마나 부러워할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체를 영하고 영생을 약속받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를 깨닫고 감사해야한다.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와 많은 예언자들이 우리를 얼마나 부러워할까? 그들이 그렇게 보고자 원했던 주님을 우리는 뵙고 그분의 살과 피를 영할 수 있으니까!

비신자들 특히 선의의 비신자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전하지 않아서 하느님을 모르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애덕을 그르치는 가장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해주지 않아서 주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에 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주님 심판대전에 가서 그가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아무개가 예수님을 알려주지 않아서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을 칠 일인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은 잠시 살다갈 육신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생의 4가지 고통을 사색하다가 고집멸도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생로병사의 원인은 욕심으로 이를 멸하는 방법을 8정도로 제시한다. 욕심을 버리고 비우면 공()이 되는데 이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그 안에 묘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眞空妙有)

그 묘한 것이 하느님이심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불교는 자력종교이므로 계시진리인 영적 세계를 깨닫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요 타력종교로서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는 종교인 것이다.

사도행전4,12에서 베드로 사도는그리스도의 이름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설교하였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를 상대주의화하여 구원의 길이 여러 길이 있는데 그리스도교는 그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인들에게 전교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론이 나온다. 그러나 참 진리의 종교는 그리스도교밖에 없고, 다른 종교의 창시자는 피조물인 인간일 뿐이다. 그리스도만이 참 하느님이시오 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고,“나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871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12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운영자 2022.05.12
870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11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운영자 2022.05.11
869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10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운영자 2022.05.10
868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9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운영자 2022.05.09
86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7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미사 운영자 2022.05.07
86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6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운영자 2022.05.06
865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 3주 금-(사도9,1-20; 요한6,52-59)-성시간 Stephanus 2022.05.05
864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5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운영자 2022.05.05
86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5월 4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운영자 2022.05.04
86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3주간-수(요한6,35-40) Stephanus 2022.05.03
861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3주간-월(사도6,8-15;요한6,22-29) Stephanus 2022.05.01
860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4월 30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운영자 2022.04.30
859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 2주간-토-(사도6,1-7; 요한6,16-21) Stephanus 2022.04.30
858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4월 29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운영자 2022.04.29
857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2주간-금-(사도5,34-42; 요한6,1-15)-성시간 Stephanus 2022.04.28
856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 2주간-목-(사도5,27-33; 요한3,31-36) Stephanus 2022.04.27
855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년 4월 27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운영자 2022.04.27
»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2주간-수(사도5,17-26;요한3,16-21) Stephanus 2022.04.26
853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 2주간-화-(사도4,32-37; 요한3,7-15) Stephanus 2022.04.26
852 오늘의 복음묵상(평일) 부활8부내-토(사도4,13-21; 마르16,9-15) Stephanus 2022.04.22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72 Next
/ 72
XE Login